세계 좌파정당들의 이야기
[책소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장석준/ 개마고원)
    2014년 02월 08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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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좌파의 정치 공간이 협소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좌파정당이 집권을 한다든지, 유력한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믿기지 않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책은 지금 세계의 좌파정치를 주목해야 하며 한국에서 좌파정치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지금까지 세계사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저항-대안 세력이 강력히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대중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된 사례가 있는가? 이런 세력이 없는데도 기득권 세력이 먼저 개혁을 단행한 사례라도 있었는가? 답은 명확하다. 없었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안철수 신당이든 아래로부터의, 왼쪽으로부터의 도전이 없다면, 이들이 선택할 방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1987년 이후 지겹도록 경험한 가장 근본적인 교훈 아닌가.

우리 시대의 좌파정치, 변혁정치 없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거의 수학적인 법칙이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좌파와 변혁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306~307쪽

체제의 위기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선도해온 것은 언제나 좌파였다. 그동안 한국에서 제대로 된 개혁조차 변변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오른쪽으로 심각히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반대편 대안의 통로가 아예 막혀버린 까닭인 탓이 크다. 정치의 지평이 왼쪽으로 더 넓어질 때 한국의 정치는 더 건강해지고 활력을 찾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세계 곳곳 좌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다. 이 책은 오늘날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선봉에 서 있는 좌파의 이야기, 곧 ‘left side story’다.

레프트

우리가 모르는(그러나 중요한) 왼쪽 세계의 이야기

일찍부터 좌파의 활동이 얼어붙었던 한국과는 달리 세계의 여러 곳에서 좌파는 세상을 움직여왔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단적으로 현대사의 모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러시아혁명과 중화민국의 수립은 그평가가 어떻든 좌파들의 활동 결과물이 아니었던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복지국가의 건설과 식민지 해방도 전세계 좌파 세력들이 주도한 과업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다시 찾아온 전지구적 전환기에도 세계의 여러 좌파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이해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통로가 되어준다.

이 책은 영국·프랑스·독일 등과 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좌파는 물론, 멕시코·이집트·튀니지·우루과이 같은 나라의 이제껏 들어보지도 못한 좌파까지 전세계 좌파의 생생한 현황을 조망한다.

그들은 오늘날 저마다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을 저마다의 고민과 방식으로 헤쳐 나가고 있다. 그들의 치열한 고민과 과감한 시도들은 여러 정치·사회·경제 문제에 봉착해 있으면서도 혼미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세력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008년 경제위기의 파도를 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려 하는 전세계 좌파들로부터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하는 고민의 답도 일부 엿볼 수 있다.

세계의 좌파에게 닥친 문제들

이 책에 소개된 각국의 사정은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과제들이 있다. 그것은 현재 좌파만이 아니라 다른 정치세력 역시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중 첫번째는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2008년의 충격은 자본주의 세계의 모든 국가에 영향을 줬고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대규모 감축정책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봉기가 스페인과 그리스 등에서 일어났고, 그 결과 그리스에서는 급진좌파연합이 급성장해 제2당이 되기도 했다. 급진좌파연합은 유로존 탈퇴까지 고려하고 있다.

스페인 젊은이들은 마드리드의 중심 광장 푸에르타 델 솔을 점령하고 “우리는 정치인과 은행가들의 상품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인구 30만 명의 아이슬란드에서 수만 명이 국회의사당을 에워싸 국회를 해산시켰고, 새로 들어선 내각은 금융자본의 외채 상환 요구를 거절했다.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다각도로 전개되고 있다.

두번째로 정당정치의 재구성 문제다. 한국에서도 안철수의 ‘새정치’가 인기를 끌 듯,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기성 정당들은 신뢰를 많이 잃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정치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좌파정당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위세가 당당했던 각국의 공산당은 옛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함께 몰락했다. 그리고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회민주당 등 서구의 유력한 사민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제3의 길’ 노선을 택했는데 그로 인해 지금은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생태주의에 기반한 녹색 정당과 사민주의 정당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여러 좌파정당들이 출현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분화한 좌파정당들이 정당연합을 구성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의 좌파당과 공산당이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에 나왔으며, 덴마크의 적록연합, 포르투갈의 좌파블록, 우루과이의 확대전선 등도 여러 정당들의 연합체로서 선거와 정치 활동에 함께 대응한다.

중남미 신흥 좌파는 ‘상파울루 포럼’이라는 라틴아메리카 좌파만의 국제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전지구적 문제에 대처하려는 좌파들의 대응이 국내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번째로 기존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틀을 넘어 새로운 대중운동을 일궈내고 그것을 현실 변혁의 동력으로 이끄는 과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퀘벡의 대학생 등록금 투쟁은 퀘벡 주정부의 정권을 바꾸었고, 칠레의 학생 시위는 중도좌파인 바첼레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군사정권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만 있는 줄로 알았던 아랍 세계에서도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좌파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있다.

대중운동과 제도정치를 조화롭게 연결시키려는 이런 시도들은 촛불시위를 경험한 한국 좌파세력들이 특히 유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청년’ 정신 없이 ‘새 출발’은 없다

책에 소개된 다른 나라 좌파의 상황을 보자면, 한국의 열악한 좌파의 처지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좌파정치도 저렇게 활발히 융성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러기 위한 과제로 한국의 좌파 정치세력에게 과감한 단절과 새 출발을 주문한다. 먼저 자유주의(중도우파) 세력에 합류하려는 흐름과 단절하고 독자적인 발전과 집권-변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민주대연합 노선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져야만 좌파정치의 싹이 자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주체사상의 그림자를 넘어 남한의 자본주의 극복뿐만 아니라 북한의 민주화 혁명을 포함하는 한반도 전체의 변혁을 추구하는 비전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진정한 새 출발을 위해서 저자는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의 이십대가 장년으로 성숙해갈 정도의 시간을 내다보고 하나하나 토대를 쌓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의 좌파세력에게 필요한 진정한 ‘청년정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다른 곳의 좌파들도 겪어온 과정이기에 외롭지만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도 한 편의 멋진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가 펼쳐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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