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사민주의, 변화의 궤적
    [책소개] 『경제성장과 사회보장 사이에서』(안데르손/ 책세상)
        2014년 02월 08일 1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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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은 상호 의존하는 선순환 관계이다 vs. 사회보장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 주범으로 양자는 충돌하는 목표다 vs. 경제성장은 사회보장을 위한 수단일 뿐 성장이 최상위 정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과 사회보장, 성장과 복지를 둘러싼 서로 다른 시각들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면 진보와 보수가 첫 번째와 두 번째 견해를 둘러싸고 논쟁하고 있으며, 보다 급진적 진영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성장 자체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며 세 번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하고 경합하는 것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일이 아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이룬 성공적인 복지국가 모델로 평가받는 스웨덴에서도 사회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 조화와 타협의 역사가 있었다.

    이 책은 서구 사민주의 국가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간주되는 스웨덴 사민주의와 복지국가 모델, 더 구체적으로는 193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이루어진 스웨덴 사민당의 사회정책 담론의 변화 과정, 즉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을 둘러싼 조화와 모순의 역사를 분석한 스웨덴 경제사학자의 저작이다.

    저자는 스웨덴 사민주의가 추구해온 핵심 정책 목표인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의 잠재적 긴장 관계를 드러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양자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즉 1930년대에 본격적인 복지국가 모델을 출범시킨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에 ‘강한 사회’ 이념을 표방하며 사회정책의 생산적 역할을 강조하던 스웨덴 사민당의 경제·사회 정책 담론이 어떻게 1980년대 초에 ‘제3의 길’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는지를 사민당과 노동조합총연맹LO의 정책보고서와 회의록 등 1차 자료들을 활용해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스웨덴 연구가 긍정과 찬사 일변도의 외부 시각이라면, 스웨덴 내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책은 스웨덴 복지 담론 내의 긴장과 갈등에 분석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이상화하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복지 강화의 필요성이 절실하면서도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성장과 복지의 우선순위 및 복지의 실현 방안을 두고 논쟁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이 책의 분석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해줄 것이다.

    스웨덴

    사회정책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이다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은 전 세계에서 자유와 평등, 혹은 성장과 분배를 가장 조화롭게 실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32년 첫 집권 이후 스웨덴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해온 스웨덴 사민당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성장을 이루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취해 조화롭게 작동하는 산업사회의 모범적 사례를 이루었다.

    스웨덴 사민주의 이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복지국가 담론의 핵심이 바로 “사회정책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군나르 뮈르달)라는 시각이다.

    2차 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사회보장제도의 밑바탕에는 삶의 안정성과 사회적 시민권이 효율적인 사회의 기초이고, 나아가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한 진정한 전제 조건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국민경제에서 사회정책이 차지하는 역할에 관한 스웨덴 사민당의 시각은 “사회보장이 곧 경제성장”이라는 명제에 기초해 있었다.

    이처럼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의 조화를 사회 개혁의 핵심 신조로 정립시킨 역량을 바탕으로 전후 스웨덴 사회에서 사민당과 사민주의 이념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복지국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사회보장과 경제성장의 융합은 복지국가를 방어하는 핵심 담론 전략이기도 했다.

    사민주의는 이러한 기조 위에서 좌우의 경쟁 담론에 맞섰다. 즉 한편으로는 성장을 사회적 추동력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사회 개혁의 가치를 방어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도 개인 삶의 안정성을 창출하고 좀 더 평등하고 통합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민당의 능력을 보임으로써 좌파 진영의 담론에 대응한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정책의 확대가 경제적 투자임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정책을 비용으로 간주하는 자유주의 세력에 대응했다. 사회정의와 경제 효율성을 동전의 양면으로 정의하고, 그 전략적 가치를 잘 활용한 것이다.

    경제의 진보와 사회의 진보는 서로 의존한다

    2차 대전 이후 스웨덴은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사회복지제도를 거의 완비했다.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사민당은 무엇을 더 추구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제기되었을 때 등장한 것이 ‘강한 사회’ 담론이다.

    경제발전 수준이 높아질수록 사회의 역할이 더 늘어난다는 것, 즉 ‘강한 사회’가 더 요구된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수준이 높아져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사람들의 욕구수준은 높아진다. 그리고 이 욕구의 큰 부분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부문을 통해 채워져야 한다. 또한 고도 경제성장과 산업구조전환 과정에서 뒤처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통합해내기 위해서도 사회보장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사회’ 이념을 간단히 요약하면, 경제의 진보와 사회의 진보는 서로 의존하며 사회보장의 확대는 산업 팽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사민주의 세계관이다. 경제성장은 사회보장을 구현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을 제공해주며 사회보장은 노동공급 증대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뒷받침한다.

    ‘강한 사회’ 담론이 지배했던 1950년대와 60년대는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이 현실과 담론 모두에서 서로를 잘 지원해주는 관계에 있었고, 경제성장과 사회보장 모두를 중단 없이 강화해갈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이 지배했던 시기다.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다 ― 1960년대 말의 급진적 비판 담론

    그러나 ‘강한 사회’ 담론에는 중요한 긴장관계가 내재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사민주의세력이 사회보장 강화를 위해 경제성장과 생산을 조정, 규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의 근본적 우선성을 인정하고 산업자본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관계였다.

    사회보장과 경제성장의 상호의존성이 강조되었지만 근본적 차원에서 사회보장은 경제성장이라는 더 상위의 목표에 종속되었던 것이다. 스웨덴의 사회정책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생산주의적 지향은 한편으로는 사회정책을 방어해주는 기능을 수행했지만, 동시에 사회정책과 시민의 사회적 권리의 발전수준에 대한 근본적 제약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1960년대 말에 사회복지사들을 중심으로 사민당의 사회정책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들은 ‘강한 사회’의 발전에 대한 낙관론을 뒤집고 스웨덴 복지국가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했다. 성장이 사회보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불안정, 소외, 사회적 배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경제성장의 성격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경제구조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이 더 이상 심각한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자본주의 경제구조 자체에 대한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민당 지도부는 이러한 비판에 공감하기도 했으나 경제성장 자체가 다양한 사회악의 근원이라는 시각은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적 탈락자들을 체제 내의 정상적 시민으로 포용해내려면 경제성장의 지속이 불가결하다는 시각을 견지했다.

    그러나 사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과 불안정성 문제들이 사회 개혁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 1980년대 ‘제3의 길’

    1970년대의 경제침체를 겪으며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의 관계에 대한 사민당의 시각은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겪는다. 1960년대의 급진적 담론과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양자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 입장으로 대두된 것이다.

    1980년대 사민당 내 우파 정치인과 경제관료, 사민주의 계열의 경제학자들은 복지 지출과 공공부문을 경제에 부담을 주는 비용 요소로 간주하는 우파적 입장을 수용했다. 그래서 경제정책의 우선 목표를 민간 경제부문의 활성화로 설정했고 공공부문도 민간부문의 경영방식을 표준으로 삼아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1980년대에 사민당이 표방한 ‘제3의 길’은 이후 영국 신노동당이 표방한 ‘제3의 길’에 비해서는 전통적인 사민주의의 가치를 많이 유지한 것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장의 효율성과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대조시키는 우파 담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1960년대 말의 급진적 사회복지사들의 복지담론과 1980년대 ‘제3의 길’의 복지담론 사이에는 큰 유사성이 있다.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의 우선순위와 관련해선 양자의 시각이 정반대이지만,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의 관계를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지원적인 것으로 보는 전통적 사민당의 시각과는 달리 양자를 분리해서 바라보며 양자 간의 대립성에 더 주목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 사민당이 영국 신노동당처럼 완전히 우경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사민당은 어느 정도 전통적인 복지 강화 노선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강한 사회’ 담론이 지배했던 시기와는 달리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이 선순환관계에 있다는 믿음은 약화된 것처럼 보이며 ‘제3의 길’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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