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라는 블랙박스를 열어라
[책소개] 『18세상』(김성윤/ 북인더갭)
    2014년 02월 08일 1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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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에서 노스페이스 열풍까지 우리가 잘 모르는, 또는 안다고 착각하는 10대들의 문화를 파헤친 본격 10대 인문서가 출간되었다. 왕따, 학교폭력, 게임중독, ADHD 등 연일 터져나오는 청소년 관련 뉴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대로 된 10대 인문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10대를 다룬 본격 인문서 <18세상>은 10대라는 블랙박스에 난마처럼 얽힌 사회적 의미와 한편으론 이 사회에서 구축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신들의 문화를 구축해나가는 10대들의 당당한 초상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18세상

중2병에서 노스패딩까지 10대의 초상

10대들을 두고 떠도는 전설 같은 괴담은 ‘중2’로 대표되는 듯하다. 그중 하나는 북한이 남침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많은 학부모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며 회자되는 ‘중2병’이라는 증상일 것이다.

다소 엉뚱한 상상세계 속에 사는 10대들을 향한 가벼운 농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괴담 속에는 이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막연한 두려움과 은근한 비아냥거림이 숨어 있다.

그러나 ‘중2병’이란 증세 속에서 ‘무한경쟁’에 처한 불황기 청소년의 불안한 내면을 읽어내는 어른은 없을까? 그래서 ‘중2병’이란 일종의 자기치유 과정이며 ‘공부 오타쿠’에 맞서 소리없는 전쟁을 치루는 10대들의 저항의식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사유하는 어른은 정말 없는 걸까?(10장)

이 책에서 저자의 관심은 10대들이 처한 현실을 뻔한 시각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10대는 흔히 꼰대들의 교훈적인 훈계를 받아들이는 대상이다.

뉴스 같은 매체에서 청소년문제가 다뤄지는 방식은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큼 어른들의 상식에 근거하고 있다. 문제의 선정적인 현상만 부각시켜 해당 청소년들을 환자나 사이코, 범죄자 따위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처벌과 대책을 강력하게 요청하며 서둘러 마무리된다.

문제의 본질이 사회적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회피함으로써 기성세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일탈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만 알려진 10대의 문화가 이 사회가 구축한(혹은 구축당한) 문화의 거울이며 그리하여 환자도, 사이코도, 범죄자도 아닌 10대의 초상을 당당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가령 저자는 노스페이스 공화국이 된 한국사회를 통해 10대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다.(1장) 왜 빙벽을 오를 때나 입는다는 고가의 방한 패딩이 그것도 유독 대한민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거의 교복이 되다시피 하는 사태가 벌어졌는가?

언론들이 지적하듯 거기에는 분명 소비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의 이면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10대를 제대로 바라보려면 그들의 입장에 선 더 강력한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노스 패딩에서 청소년들이 키워가는 내면적 근육, 즉 노스 패딩의 올록볼록한 알통에 담긴 남성성의 욕망을 읽어낸다. 이미 입시전쟁터로 변한 교실 생태계에서 성적만으로 먹이사슬의 위에 서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자기의 보호색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애초에 노스 패딩은 빈약한 몸매를 보정하기 위한 남성적 아이템으로 시작됐으며, 여기에 풍성한 상체를 부각시켜 상대적으로 각선미를 돋보이게 한다는 의외의 여성적 욕구까지 만족시킴으로써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다.

결국 노스-패딩은 단순히 부모의 경제를 위협하는 ‘등골 브레이커’가 아니라 과잉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매개로 ‘평등-자유’를 갈망하는 10대들의 모순적 욕망이 난해하게 얽힌 문화적 아이템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0대 문화라는 블랙박스와 어른들의 음모

이처럼 10대 문화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의 욕망과 10대 자신의 욕망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블랙박스에 가까워서 오랜 시간을 두고 공들여 해석해야 겨우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또한 그 블랙박스 안에는 우리가 몰랐던 10대의 창조성과 저항의식뿐 아니라 10대조차 모르게 파고든 기성문화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그런 이중성을 청소년 은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3장) ‘응사 닥본사’(응답하라 1994 닥치고 본방사수)니 ‘쌍수’(쌍커풀 수술)니 하는 말을 대하는 꼰대들의 자세는 늘 고압적이다. 한편에서는 국어의 파괴를 걱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10대언어의 저속함을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이 애써 외면하는 사실은 10대의 은어가 우리말의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창조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처럼 언제나 있어왔던 인간 캐릭터를 선명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처럼 인간관계를 싱싱하게 꾸며주는 말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10대 은어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에 숨겨진 어른들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쌍수’ 같은 언어에 스며든 외모지상주의의 패턴을 유념해야 하며 게임용어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10대들을 통해 그들의 협소해진 문화생활을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문제의 원인을 더이상 착각해선 안된다, 10대들은 미성숙하지 않으며 우울증 환자도 아니다.(12장) 모든 문제를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해석으로 변환시킨 뒤 기존의 병적인 가치체계와 제도에 이들을 계속 묶어두려는 어른들의 음모야말로 폭력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반문한다. ‘오로지 권리를 행사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권리가 아니라 의무’ 아닌가.(14장) 어른들이 그렇게 걱정하는 10대들의 건강권과 수면권, 학습권은 모두 위로부터 강제된 권리들이다.

꼰대들에 의하면 10대들은 모두 산만하고 자기를 절제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미성숙한 그들을 사회가 보호해야 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며, 그래서 그들은 치료받아야 하는 주변인으로 존재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역설의 시대를 향해 ‘복종하는 인간’으로서의 안타까운 타락을 개탄해마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개인의 문제 때문이라면 학교폭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의 양상이 사적이면서 비열할 정도의 착취관계로 변모하는 원인도 사실은 사회에 만행하는 착취경제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저자는 단언한다. ‘10대가 10대를 착취’하는 오늘의 폭력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13장) 그렇다면 정답은?

사회의 공적인 표적도 사라지고 나아갈 방향도 잃은 상태에서 도처에 위험신호만 난무하는 현시대는 분명 어떤 한계지점에 도달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이러한 한계상황 속에서 위장된 정답이나 해묵은 위로를 제시하기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10대에 대한 인식의 틀과 결을 재정비할 것을 권유한다. 또한 엄숙한 꼰대의 낡아빠진 잣대를 당장 내버릴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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