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적 '기본소득'을 생각하다
    [에정칼럼] 기본소득과 사회적 경제의 연결 실험 필요
        2014년 02월 06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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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데, 신좌파,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에서 이론적, 실천적 작업이 이어져오고 있다.

    2013년 하반기부터 생태진영에서도 이 대열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생태적 기본소득 포럼>이 그것인데, 여기에 녹색전환연구소와 한신대학교 지역발전센터, 대화문화아카데미 바람과물연구소 그리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기본소득의 현황과 쟁점”과 “복지국가와 생태적 기본소득”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포럼이 개최됐고, 올해에도 연속 포럼과 기획 사업이 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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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적 기본소득 포럼 모습(사진=한신대 지역발전센터)

    생태적 기본소득 포럼은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으로 최소 정의되는 기본소득에 대해 “과거의 고도성장 시기에 복지 국가들이 추구했던 임금 노동형 완전 고용 패러다임을 사회적 필요 노동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선별적, 시혜적 복지 패러다임을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의 결과물”로 이해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국내외 논쟁은, 기본소득에 대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복잡한 양상을 띤다. 지방선거 국면에 접어든 시점에서 생태적 기본소득 1차 포럼의 토론자로 참석해 나눈 내용을 다시 생각해볼 요량으로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먼저 기본소득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다만 ‘잠정적’ 혹은 ‘리얼’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접근은 정책적 계기와 전환적 계기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파악해야 한다. 실천적으로 우파적 버전과 좌파적 버전으로 나눌 수도 있다. 그만큼 기본소득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다양한 계보가 있으며 몇몇 형식으로 논의되고 실험돼 왔다.

    이러한 ‘기본소득의 다양성’은 기본소득의 액수, 재원조달 방식 그리고 다른 사회보장제도와의 관계 설정 등 세부적인 제도 설계에서도 입장 차이가 나타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 목적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보수주의나 신자유주의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낮은 기본소득, 혹은 마이너스 소득세를 통해 저임금 일자리에서 노동 유인을 제공하고 임금 부대비용을 낮추는 것에 초점을 두곤 한다.

    반면 개혁주의, 사회주의, 생태주의, 자율주의 진영에서는 (임금)노동자와 시민의 독립성을 확대하고 일자리의 재분배를 촉진하기 위해 훨씬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이 ‘해방적 기본소득’을 통해 (임금)노동자와 시민이 강력한 권한을 보유하는 사회 전체적인 시간제 고용 모델 혹은 자율․협동사회가 시장 원리의 힘으로부터 사회의 해방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다른 모델들은 이 양극단 사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기본소득 개념의 단순성과 달리 어느 선에 위치하는 가에 따라, 종래의 사회보장, 조세, 경제, 노동 시장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은 자본(임금노동)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동시에 사회적 필요를 추구하고 자율적 삶을 지향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보편적이고 포괄적이고 충분한 복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보편)기본소득과 (차등)소득보장은 자율이냐 타율이냐, 전체냐 부분이냐, 그리고 충분하냐 충분하지 않냐, 이런 차이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철학적, 정치사상적, 정치경제적, 사회복지적 분기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기본소득이 다양한 이론적, 실천적 배경과 목적에서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태적 기본소득 포럼은 무엇보다도 자율 확대, 민주주의의 발전 및 공고화, 공정한 자원분배, 그리고 (자연적, 세대간, 지구적) 생태적 한계 측면에서 정당화되는 규범적 전망을 갖는다. 이런 전망 속에서 자연 사용의 한계 설정의 요소, 노동의 상품화 제한 요소, 국가의 시민의 관계 재설정(시민의 자율성 확대)의 요소, 시민권의 발전의 요소, 젠더 정의 실현의 요소, 시장에 대한 공정성 실현 요소가 강조된다.

    이렇게 기본소득이 추구하는 여러 전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서는 녹색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생태-사회적 측면은 부차적으로 취급되곤 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기본소득은 생태적 기원을 갖는다. ‘자연 공유 원칙’,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원칙’은 기본소득의 핵심적인 정당화 논리이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복지의 녹색화, 복지국가의 녹색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본소득 자체가 생태적 한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본소득의 실천적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 않는다. 이는 기본소득이 현 체제에서 출발한다는 태생적 규정력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부분 기본소득으로 생태기본소득이 제기되고 있지만, 기본소득 전체 프레임에서 성장 한계와 생태 한계에 대한 해결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선험적인 논리 구조가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른 한편 박근혜 정부는 저성장 시대에 대비한다면서도 고성장 시대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창조경제’가 그것이고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들고 나온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생태적 기본소득 담론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자율적-연대적 생활과 노동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기본소득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또한 생태적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기본소득의 생태화와 병행해 생태기본소득이 기획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발전과 성장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 노동 중독, 생산 중독, 소비 중독, 에너지 중독을 극복할 전망 없이, 자본주의적 문화가 지속될 경우, 기본소득의 의미는 퇴색하거나 지속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기본소득의 당위성이나 제도 설계를 넘어서 전환적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역 거점을 정해서 기본소득을 시민과 공동체가 스스로가 해석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대한 전환’은 국가만을 대상으로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도 자치 역량이 뛰어난 공간이 존재한다. 예컨대 홍성에서 원주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또한 기본소득과 함께 반자본주의적, 비자본주의적 생산-유통-소비 관계를 확대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제임스 미드(James Meade)의 아가싸토피아(Agathatopia)의 아이디어처럼, 기본소득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과 같은 사회적 경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은 어떻게 작동될지 연구가 되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도는 지방선거라는 제도정치를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구정치와 새정치는 투표 행위로 국한될 수 없다. 비정상과 정상의 구분은 우리 스스로가 전환하는 자가 되는 변용의 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을 제안하는 녹색당과 진보정당이 의회 밖에서 할 일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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