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혹한 세계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또 하나의 약속>, 자본 독재에 맞서는 용기를 주는 영화
        2014년 02월 05일 05: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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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가

    용산CGV에서의 시사회. 극중 상구 역을 맡은 배우 박철민의 뒷모습을 끝으로 영화가 끝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의 투쟁 사진들이 화면 사이로 지나갈 때, 그리고 이 영화의 제작두레에 참여한 1만명의 시민들의 이름이 올라갈 때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영화란 결국 그 형식이 어떠하건 간에 현실세계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빛난다는 사실. 그리고 한동안 내가 얼마나 영화에 대해 냉소적이었던가를.

    첫번째 사실에 대해서는 결국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질문’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요청하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즉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또 하나의 약속>은 그 요청에 충실한 영화다.

    대개 이런 영화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형식의 과잉으로 인해 현실과의 ‘긴장감’이 사라져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신파 혹은 난해한 실험극이 되어 정작 그 영화를 마주해야 하는 대중과 멀어지거나, 현실의 엄중함에 극적인 요소가 녹아버리거나.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을 만든 ‘영화 노동자들’(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영화가 마주한 ‘현실’의 어떤 풍경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나길 원했고, 이 영화는 무조건 ‘대중적인’, ‘재밌는’ 영화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 드라마를 만들어 현실을 곡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대상의 괴물적인 면모를 어느 정도는 ‘소화’ 가능한 것으로 조형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거대 자본 ‘진성’은 현실의 ‘삼성’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 않다.

    삼성이 노동자를 대하는 자세

    삼성은 처음부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죽어간 노동자들의 목숨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왔다. <또 하나의 약속>은 여전히도 진행 중인 현실의 그 전쟁에 대해 다루며 지금 우리의 위치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이는 비단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다른 희귀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AS노동자들은 지난해 두 명의 동료를 잃었다.

    한 명은 ‘전태일 열사’를 언급하며 삼성에서의 민주노조를 반드시 지키자는 간절한 메시지를 남기고 동료들 곁을 떠난 최종범 열사이고, 다른 한 명은 칠곡센터에서 일했던 고 임현우 씨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어느날 지친 몸으로 출근을 준비하다 갑자기 귀와 눈, 입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과로로 인한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몸이 피곤하니 병가를 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요청을 회사는 험한 말과 함께 뿌리쳤다. 여름 성수기 내내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해온 그에게 삼성이 돌려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칠곡센터 협력사 사장은 고인의 유족에게 “노조에게 장례절차 위임을 하지 않고 자기와 합의하면 근재보험 1억5천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마저도 번복했다.

    영화에서도 극중 ‘윤미’의 가족들은 ‘진성전자’에서 온 인사담당자로부터 끈질긴 회유와 협박을 받는다. 미행과 협박, 불리해질 때에는 액수를 천문학적으로 늘리며 회유하는 것까지 한다. 이는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 시도했던 노동자들도 똑같이 겪는 일이다.

    불과 열흘 쯤 전인 지난 1월 23일 주목해야할 ‘판결’이 나왔다. 서울 행정법원은 삼성에버랜드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조장희 삼성지회 부지회장에 대한 삼성 에버랜드 측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취소하고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에버랜드에서 삼성그룹 최초 ‘민주노조’를 만든 조장희 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회사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고, 말도 안되는 모함으로 여러 소송에서 휘말렸었다.

    지난해 노동조합을 설립해 삼성 자본 하에서 최초로 대규모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AS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조합 초기 표적감사와 해고 협박에 시달리며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고, 지금도 무책임하게 교섭을 회피하고 있는 삼성 자본과 경총에 맞서 게릴라 파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JTBC 뉴스9에서 심상정 의원에 의해 공개되어 파장을 일으켰던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나오는 노조파괴 전략 그대로였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기적이었던 영화

    오는 2월 6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전국에서 개봉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노동재해로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와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 씨, 반올림 활동가들이 겪은 실화를 영화화해 제작이 들어가던 당시부터 화제였던 작품이 무수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개봉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과연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배급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폭력과 살육의 현장, 동시에 불굴의 용기로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이들의 위대한 드라마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나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 ‘불가능한 꿈’이 이루어지게 했다.

    1만명의 사람들이 이 영화의 ‘제작두레’에 참여했다. 감독과 프로듀서는 그들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였다고 말한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영화 속 위대한 드라마를 일구고 있는 다윗들의 정신과 닮아 있다.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했고, 수익금 역시 반올림(반도체노동자 건강권·인권단체) 등을 후원하기로 했다. 영화를 온전히 대중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또 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에 경의를 표한다.

    현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영화의 촬영은 <도둑들>과 <베를린> 등 긴박감 넘치는 작품들에서 액티브한 카메라를 잡았던 최영환 촬영감독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현란하지도, 기교 넘치지도 않는다. 관객이 드라마와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카메라는 최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감춘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을 조용히 따라가며 벌어지고 있는 ‘현실’ 앞에 선 목격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어쩌면 그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목격자가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각자는 얼마든지 스스로에게 비뚤어진 현실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변화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절망적 현실을 다루고 있는 최근의 여러 영화들은 ‘주체’에게 아름다움을 허용치 않는다. ‘주체’들은 <화이>에서처럼 현실을 닮아 ‘괴물’이 되어버리거나, <더 테러 라이브>나 <화차>에서처럼 처절하게 싸우다가 외롭게 죽어버리거나, 히스테리 혹은 ‘망각’을 택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은 여러 난곡들 속에서도 어떤 태도를 고수하고, 그것이 ‘현재진행형’인 채로 마무리되는데 이런 ‘교훈’이 갖는 함정을 드라마적으로 잘 극복하고 있다. 현실의 드라마가 지닌 위대한 힘 때문이 아닐까?

    (사진 설명) “그 사람들이 우리를 또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었어요.” – 난주

    <또 하나의 약속>의 주인공 상구는 강원도의 평범한 택시운전사다. 그는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투쟁을 끈끈하게 이어가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 다짐은 자기 가족의 문제였던 것을 모두의 문제, 앞으로도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를 미래의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스크린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초일류’ 자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개봉관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전쟁인 지금의 상황이 이 영화가 마주한 마지막 벽이다.

    자본이 쳐놓은 냉엄하고 높은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스스로 다시 ‘기적’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영화의 성공 여부가 많은 것을 결정짓진 않을지라도 최소한 우리 사회가 ‘삼성공화국’이 아닌 ‘다른 미래’를 택하고 나아갈 수 있는데 있어서 상징적이고 대중적인 계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민주주의, 정치 등을 소재로 하는 이른바 ‘정치영화’들은 늘어났지만, 정작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독재’에 대해 다루는 영화들은 전무하다. 그것이 실제 우리 삶의 대부분인 ‘노동’과 ‘삶’을 지배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삼성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그 삼성 자본의 독재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싸우는 것, 더 이상 ‘삶’을 저들의 이윤놀음에 내주지 않게 하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자본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 모든 이들, 이 땅의 삼성 및 삼성하청 노동자들에게 작은 용기를 주는 영화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냉소와 패배감을 떨치게 해준 이 영화에게 감사하다.

    개봉이 되면 다시 영화를 보고 나와 이렇게 외치고 싶다. “삼성을 바꾸고 삶을 바꾸자!” 이 구호는 최근 전국 곳곳에서 삼성 자본에 맞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이 외치는 구호다.

    필자소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육선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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