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지성, 버트란드 러셀
[산하의 오역] 1970년 2월 2일 러셀 사망하다
    2014년 02월 03일 0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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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학창 시절 수학 선생님의 훈계 속에서였다. 워낙 수학과 만리장성을 쌓았던 사람으로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더불어 실컷 두들겨 맞은 뒤 “버트란드 러셀은 임마 응? 수학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살할라 카다가도 못했다 칸다. 임마들아. ” 라고 호령을 들었던 것이다.

자살하고 싶은데 수학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살을 못했다? 대체 어디서 뭐하는 시러베자식인가 싶었던 이름이 버트란드 러셀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수학을 미와 양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던 처지로 버트란드 러셀은 일종의 괴상한 인물로 머리 속에 각인됐다.

사실 이 사람은 괴상한 사람이다. 우선 이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될지 좀 애매하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이고 역사가이자 저술가이고 반전운동가와 여성참정권 운동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장담하는데 그가 자살하지 못한 것은 수학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자살할 틈도 없다.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바람이 난 아내를 쿨하게 수용했던 아버지를 둔 탓일까. 그는 연애도 잘했고 결혼도 네 번을 했고 이혼도 세 번을 했다. 그 결혼 상대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의 가정교사였으니 부전자전을 실현한 셈.

그의 고백을 들어봐도 그가 죽지 않은 건 수학 때문만이 아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세 가지다. 그를 죽음으로부터 구해 낸 것은.

그는 무신론자로서 서양의 근간을 이룬다 할 기독교에 대해 평생 증오를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독교인들은 야만적인 최면술과 기만 속에 있으면서, 자기들이야말로 진실한 종교의 파악자라고 자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기만적인 최면술에 사로잡힌 결과, 자기들에게 주입된 사이비종교를 진실하고 유일한 종교로 생각하고, 그 밖에는 어떤 종교도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대중들이 기독교도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그에게 가르친 출애굽기의 한 구절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간직했다. 그것은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이었다. 다수의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 옳은 것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그의 평생을 따라 흘렀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직 여성의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던 20세기 초, 그는 하원의원에 도전하면서 여성 참정권을 열정적으로 부르짖었다. 그런데 그에게 날아든 것은 썩은 계란과 쥐의 시체였다.

그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에 대한 열렬한 반대자들이 남자들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일부 여성들은 극악하게 그의 연설을 방해했고 마치 자신들의 행복을 깨뜨리려는 불한당인양 악다구니를 친 것이다.

아무리 머리 좋은 러셀도 그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남자들이 자기들의 지위를 잃을까봐 위협을 하는 야만적 행동은 이해할 수 있으나, 여자들이 모욕을 그대로 받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뭐 이런 일이 세계사에서 한 두 번인가. 생활수급자 처지에 부모님 잃은 박근혜 ‘양’ 불쌍하다고 그를 찍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위인전에 나오는 대부분의 위인이 그렇지만 러셀은 그런 실망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옳음을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바로 그랬기에 그에게 절대적인 진리란 헝겊 막대에 불과했고 지고의 권위 따위는 그의 정원의 돌멩이에도 미치지 못했다.

러셀 집회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러셀

온 유럽이 죽고 죽이고의 놀음으로 필사적이 됐던 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보수적인 결혼과 연애에도 반대했는데 그의 연애관과 결혼관은 오늘날 들어도 조금은 파격에 가깝다.

“계약결혼과 혼전동거는 정당하다. 사랑은 자유롭고 자발적일 때 생명력을 가지며 의무라고 생각하면 죽는다. 따라서 법률로 옭아매는 결혼은 실패하며 도덕이 엄격할수록 성매매는 성행하므로 남녀간 자유연애만이 답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직장을 잃었고 미국의 대학 교수로 갈 기회도 잃었다. 다른 문제는 둔감하면서도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에는 별안간 그들의 조상 청교도가 돼 버리는 미국 사회의 성향은 러셀 시대에도 비슷했던 것이다. 법정에까지 간 그에 대한 고발 내용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에 대한 절묘한 ‘반사’다.

“방탕하고 음탕하며 호색적이고 음란하고 에로틱하며 색정적이고 위엄이 없고 편협하고 허위이고 도덕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는 연애 지상주의자만은 아니었다. “아이를 포함하지 않은 모든 성관계는 순전히 사적인 일이며, 또 남녀가 아이 없이 함께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이 결정할 일이지 남이 간섭할 일은 못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에서 보듯, ‘아이’가 결부된 한 그는 무한책임을 주장했으니까.

그의 연애 열정은 나이 일흔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지만 진리의 추구,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 또한 가시지 않았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난 이후 냉전 시기에 인류의 핵 경쟁에 대한 가장 준엄한 경고자였다.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지금 당장 전면적 군비축소와 그것의 일환으로서 핵무기를 폐기하는 협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면서 그들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지식과 지혜가 지속적으로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가 결정된다”고 갈파했다.

그의 많은 저작 가운데 딱 한 권을 읽어 본 사람으로서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더 늘어놓는 것은 매우 참람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44주기를 기념하여 자서전에 등장하는 ‘자유주의자 10계명’ 을 늘어놓는 것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맺고자 한다. 오늘날에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다 성경의 언어로 패러디하여 옮기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도록.

제 일 계명이니라.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말지니라.

둘째. 어떤 옳은 것이든 증거를 은폐함으로서 증명하려고 생각하지 말지니라. 증거는 드러나게 마련이니라.

셋째. 필히 성공할 것이라고, 맞다고 확신한다면 그를 포기하지는 말지니라

넷째니라. 반대에 부딪칠 수도 있으리라. 설사 반대자가 당신의 아내나 자식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때는 절대로 권위가 아닌 논쟁을 통해 극복하도록 노력하라. 권위에 의존한 승리는 비현실적이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섯째니라. 다른 사람의 권위를 존중하지 말지니라. 그 반대의 권위들이 항상 발견되기 마련이니라.

여섯째.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견해들을 억누르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지 말지니라. 그렇게 하면 그 견해들이 너를 억누를 것이니라.

일곱째. 네 의견이 유별나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라. 지금 인정하고 있는 모든 견해들이 한 때는 유별나다는 취급을 받았느니라.

여덟째 수동적인 동의를 하기보다는 똑똑하게 반대하는 일을 즐길지니라. 현명한 지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지당하거니와 똑똑한 반대는 수동적인 동의보다 오히려 더 큰 동의이니라.

아홉번째 비록 진실 때문에 불편할지라도 철저하게 진실을 추구할지니라. 불편한 진실이 더 소중한 법이니라. .

열번째. 바보의 낙원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절대로 부러워하지 말지니라. 그를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바보들 뿐이니라.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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