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
    피트 시거를 위한 변명 혹은 추모
        2014년 02월 03일 09:40 오전

    Print Friendly

    2011년 싸늘한 뉴욕의 10월 밤 백발의 한 노인이 기타를 손에 들고 맨해튼의 무대에 올랐다. 무대 주위에는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거하여 ‘월가 점령’을 외치며 몰려든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 노인은 늙고 가녀린 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하지만 그의 노쇠한 성대는 이미 이전과 같은 강렬하고도 섬세한 진동을 밖으로 뿜어내지 못한 채, 금세 젊은이들의 노래 소리에 묻히고 만다.

    그래도, 힘찬 기타의 울림만은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무대에 서겠다는 노장의 의지를 뜨겁게 전하고 있다. 그의 노래 소리는 아마도 추운 밤, 앞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투쟁에 지쳐있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온기를 전했음이 틀림없다.

    이 할아버지는, 바로 며칠 전 길고 긴 인생길의 마지막을 접고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대표적 포크 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 1919-2014)이다.

    그의 길고 긴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노동운동, 공민권운동에서 베트남 반전운동, 환경운동을 거쳐 월가 점령 시위까지 현대 미국의 민중저항사는 그의 노래를 통해 기억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민요를 연구하고 이를 도시민들에게 소개하던 이 포크 가수는 왜 저항가요 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시거에 의해서 대중화된 오랜 가스펠송 <We Shall Overcome>은 왜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20세기 초두에 미국에서 개시되었고 이후 세계 각지의 민중가요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포크 리바이벌’ 운동 즉 민요 부흥 운동이 있었다.

    포크 리바이벌 운동은 본래 미국 북동부에 전해지는 영국에서 기원하는 민요 같은 전통가요를 발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전통가요의 레퍼토리나 스타일을 공민권운동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결합시키려는 운동이었다.

    운동 초기의 가수로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1912-1967)를 들 수 있고, 1950년대 후반 이후 운동의 고양기와 상업적인 성공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피트 시거나 존 바에즈(Joan Baez, 1941-), 혹은 나중에 록으로 전환하여 포크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밥 딜런(Bob Dylan, 1941-) 등이 있다.

    이들은 어쿠스틱 기타나 전통악기만을 사용하는 연주법을 고집하여 전자악기의 사용에 저항했으며, 민요를 발굴하고 연구하기도 했던 관계로,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체현하는 운동으로 오해되어, 특히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꺼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애국자’의 길을 걷지 않았으며, 그들의 운동도 민족이나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 형성을 목표로 ‘포클로어’(Folklore)에 주목한 19세기식 국민적 낭만주의 열풍과는 상당히 달랐다.

    우선 그들이 주로 소개한 민요들은 체제가 주목하지 않거나 혹은 체제가 억압했던, 정치적 권위에 저항하고 전쟁을 비판하고, 농촌의 피폐상을 노래한 곡들이었다. 그들은 권력에 대한 민중 저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림으로써 새로운 정치운동의 기점을 마련해 갔으며, 계급적 시각의 노동운동과도 연계하여 사회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급진적 노동운동 조직으로 유명한 세계산업노동조합(IWW)의 운동가요집 Little Red Songbook 수록곡들은 그들이 애창했던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iww 노래집

    IWW 노래모음집의 표지

    이렇게 민요의 주체로서 민중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전통성 못지않게 정치성을 부활시켰다는 점은, 이전의 국수주의적인 민요부흥운동과 이들의 음악운동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피트 시거 자신도 40년대에 미국공산당(CPUSA)의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로 인해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에 소환되기도 하여 오랫동안 미디어의 기피대상이 되었으며, 평생 반공세력으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국수주의적 민요부흥운동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레퍼토리에 왕성하게 추가되었던 것이 미국이나 영국 태생의 곡 못지않게 타문화권의 전통가요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2009년의 인터뷰에서 시거가 “내 직업은,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많이 있고 그것이 잘 활용된다면 세상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그들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 약자나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노래로 대변함으로써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존 바에즈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도나 도나(Donna Donna)>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의 운명을 노래한 동구 유대인들의 이디쉬(Yiddish) 노래에서 기원한 곡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시거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민요에는 쿠바의 농민가요인 <관타나메라(Guantanamera)>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자 쿠바 독립운동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의 시를 대입하여 호세이토 페르난데스(Joseíto Fernández, 1908-1979)가 편곡한 버전이다.

    가사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con los pobres de la tierra) 나는 나의 운명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다.

    시거가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1963년은 마침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 직후였으며,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쿠바혁명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섭에 대항하여 일체감을 추구하던 당시 지식인들의 지향은 마르티의 사상과 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거는 쿠바의 민중가요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적극적으로 추가하면서 반제, 반전평화 운동을 노래로써 확산시켰던 것이다.

    혹은 시거의 대표곡이자 대표적인 반전가라고 할 수 있는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1961)는, 소련 작가 숄로호프(Mikhail Sholokhov, 1905-1984)의 소설 [고요한 돈강]에 인용된 코사크 민요 “꽃은 다 어디로 갔나? 소녀들이 다 꺾었지/ 그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녀들은 다 결혼했지/ 그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들은 다 군대에 갔지”라는 가사에 촉발되어 만들어 진 것이다. 마침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어 “언제쯤이면 그들은, 우리들은 (전쟁의 어리석음을) 깨달을까”라는 메시지를 가진 반전가로 세계적으로 퍼져갔다.

    특히 독일어 버전이 유명했으며, 피트 시거의 영향은 독일의 68년 ‘성난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된 포크 리바이벌 운동에도 미쳤다. 피트 시거 자신도 동서독을 오가면서 음악가들과 교류했으며, 나치의 양심수 수용소에서 만들어진 저항가인 <늪지의 병사들(Die Moorsoldaten)>을 불러 국제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http://youtu.be/ptcY3sS6BO0

    그런데 특히 한국에서 피트 시거하면, <아리랑(Ariran)>(1953 혹은 1954)을 부른 서구의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포크가수가 <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에만 경탄하고 의미부여를 하지만, 정작 그가 부른 그 <아리랑>이 어떤 <아리랑>이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아니다. 그것은 3.1운동 직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공산당의 혁명운동과 조선 민족해방운동을 결합시키고자 진력하다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처형당한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이 님 웨일즈와 함께 작성한 자신의 회고록 [아리랑: 조선이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1941)의 서두에서 소개한 그 <아리랑>이다.

    시거는 이 책에 기초하여 <아리랑>이 조선 왕조의 폭정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죽음으로써 저항하는 희생정신의 노래라는 걸 소개하며 분단의 역사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김산의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김산과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 한국에서는 오래도록 금서로 있다가 1984년에 비로소 번역소개된 것을 떠올리면, 시거가 저항가요로서의 <아리랑>을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일부 국내 언론이 시거가 한국전쟁 참전시에 <아리랑>을 들었다고 한 것은 오보이다).

    이렇게 보면, 그가 추구한 ‘포크 리바이벌’이라는 것은, 다양성과 정치성을 추구하며 위로부터의 전통에 저항하는 ‘민중의 전통’ 구축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반제, 반전, 반자본적 계급 지향성이 뚜렷했으며, 시거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했던 노래”를 민중운동 속에서 계승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권력과의 긴장관계이며, 그것이 느슨해지는 순간, 그는 하염없이 ‘애국자’의 길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시거가 만년에 국가로부터의 각종 표창을 받고 오바마 대통령 취임 콘서트에서 노래했을 때, 그는 허드슨 강의 정화운동에 헌신하고 전통을 사랑하고 전쟁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에 항거한 ‘진정한 미국인’으로서 기억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를 국민의 역사 속으로 회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가 포크 리바이벌 운동을 탈환하고자 한다면, 시거가 일관되게 견지했던 탈국가적 계급 지향성을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환경적 정의는 경제적 정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 환경주의자 시거의 “말”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가 부른 <이 땅은 당신의 땅(This Land Is Your Land)>이 조국 찬미의 노래가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읊은 곡이었다는 그의 “노래 정신”이 묻히지 않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결국에 믿었던 것은 “노래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 했다”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진보신당 당원, [나는 사회주의자다: 동아시아 사회주의의 기원, 고토쿠 슈스이]의 역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