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가의 '자격지심'
    [이상엽의 시선] 14년전 위구르의 한 소녀 사진
        2014년 01월 28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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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격지심’을 표현한 사진이란 뭘까? 작은 잡지사에서 그런 주제를 던져주고는 사진 에세이를 부탁한다고 했다. 하여간 이 미묘한 주제로 연출사진을 찍은 일 없는 나는 그냥 일상을 찍은 사진 중에서 찾아봤다. 그리고 혹시나 자격지심을 느꼈을만한 사진을 골라본다.

    사진가가 자격지심을 느낄만한 대목은 ‘표절’이다. 요즘 영국 사진가 마이클 케나가 ‘표절’에 대한 고민을 듬뿍 안겨주고 가지 않았나. 솔섬이라는 대상이나 표절 대상으로 구설수에 오른 사진은 표절이라 할 수 없지만 그 사진가도 케나의 사진에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사진가인 나를 돌아본다. 나는 누구를 표절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있었다. 그 어떤 사진가를 철저하게 카피하고 싶었던 때가. 아주 오래 전에 태국의 난민이었던 몽족 취재가 불발했다. 정처없이 싱가포르까지 가는 오리엔탈 특급을 타고 가다가 동양의 쿠바라는 말레이시아 말라카를 발견하고는 작정을 했다. 데이비드 앨런 하베이를 카피하기로.

    그 기차 안에서 <내셔날지오그래픽>의 <쿠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아름다웠고 나를 자극했다. 아름다운 빛과 식민의 향기 가득한 해협의 항구 도시 말라카를 취재해 한국판 <지오>를 찾았다.

    그 때 편집기자였던 송수정씨의 소개로 편집장 에드워드 김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을 보여주며 한참을 설득했지만 결과는 거절. 쿠바와 말라카를 변주하며 완벽하게 카피했는데, 에드워드 김, 당신이 내 사진을 거절한다고?

    하지만 어찌되었던 그가 고수. 많은 세월이 흘러보니 당연 에드워드 김의 눈이 더 높았을 것이다. 물론 거절당한 청년은 열받았다. 아마도 그때가 1998년인가 보다. 나는 당시 데이비드 앨런 하베이의 카피캣이 되고 싶었다. 그 아름다운 코닥 크롬 필름의 찬란한 빛의 후계자를.

    하지만 힘들었다. 그 후로 많은 세상의 취재를 했지만 그를 능가하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물론 이제는 세월이 변해 변화무쌍한 색감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디지털이라 별로 경쟁하고 싶지 않지만.

    글과 함께 실은 이 사진이 내가 생각하는 하베이의 사진을 넘어서는 내 사진이다. 당시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도시 쿠차에서 반체제 대학생이라는 혐의를 받으며 현지 경찰에게 위협당했다.

    이 소녀는 취재할 때 나를 보호해주던 식당집 딸이다. 중국을 인정하지 않는 위구르인들은 그런 것이다. 그 경찰이 나를 구속하겠다는 위협에 몰래 쿠차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이 소녀의 포트레이트를 찍었다. 그런데 하필 사진의 프레임이 그리도 닮고자 했던 하베이의 그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현상해보고는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격지심’이 일었고, 또 많은 세월이 흘러 이렇게 오늘 다시 꺼내본다. 지금 다시 보니 잘 찍은 사진이다. 당당한 위구르 소녀다. 그리고 그 사진의 표면이 이야기 하지 못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 그 긴박했던 사연은 하베이도 경험하지 못했으리라. 한 때는 자격지심의 사진이었지만 당대 위구르인을 찍은 좋은 사진이라 이제야 이야기 한다. 이제는 이 사진 실어도 될 듯하다. 누구를 카피하는 사진, 그리 쉽지 않다.

    사진=쿠차 신강 위구르 자치구 중국 2001.

    이상엽128

    필자소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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