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 청소노동자와 민담 한 토막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조동일의 '동학 성립과 이야기'
        2014년 01월 28일 09:41 오전

    Print Friendly

    대부분의 교수가 그러하듯이, 나에게도 시간강사로 몇몇 대학을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앙대학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시간강사 신분으로 출강했던 여러 대학들 속에 중앙대학교를 포함시켜선 곤란할 듯도 하다. 거기는 내 모교이며, 그곳에서 걸어서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하숙집이 있었고, 심지어 연구공간도 그곳 대학원 건물 지하1층에 마련되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여 이 경우 ‘전전(轉轉)’이란 단어가 들어맞을 리 없겠다.

    내가 시간강사로 나섰던 시기는 2000년대 전반기와 중반기에 해당한다. 사회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어떤 것인지 절실하게 체험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다.

    IMF를 겪으면서 정리해고가 횡행하였고, 신용카드 발행이 남발된 데 따라 일단 카드를 긁어댔던 이들의 자살이 드물지 않게 벌어졌으며, 청년실업 또한 사회 문제로 심각하게 부각되었다. 비정규직이란 계급이 생겨 노-노 갈등이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대형마트에 밀려 동네 슈퍼는 거의 사라져갔고, 그 자리에 새로 생긴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가 이내 닫고 이번엔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 순환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앎과 삶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가 강의에 이를 반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근대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예감하며 그 즈음의 상황을 설명하곤 했던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들 수 있다. 몇 번 반복했던 탓에 지금도 쉽게 떠올리게 된다.

    어릴 적 이야기책에서 읽었던 내용입니다. 옛날 어느 선비가 하루 종일 글공부만 하더랍니다. 나무 한 짐 해 오는 일 없고, 양식 한 되 팔아오는 일도 없었다지요. 그러니 집은 얼마나 빈궁했겠습니까. 그래, 부인의 타박도 만만치 않았겠지요.

    어떻게든 살 도리를 마련해내라는 부인의 채근에 선비가 무슨 술수를 썼던지, 어느 날 마당에 쌀이 수북하게 쌓였답니다. 부인이 퍽 좋아했을 겁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 하늘을 날아다녀야 할 새가 땅에 떨어져 있고, 들판을 뛰어다녀야 할 짐승들이 빌빌거리더랍니다. 아내가 의아해서 물으니 선비가 그 까닭을 이리 말했답니다.

    “논바닥, 길바닥에 떨어진 쌀 한 톨까지도 저들의 먹이가 아니겠소. 그걸 내가 모두 거두어버렸으니 이제 저들이 곤란을 겪는 것은 자명한 일. 당신과 나는 저들에게 큰 죄를 지었소.”

    결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요. 예, 아내는 반성을 했고, 선비는 마당의 쌀알을 애초에 놓여 있던 곳, 즉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요즘 그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서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새도, 들판을 달리는 짐승도 우리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구나, 싶은 것이지요. 아니, 전래되는 이야기 하나 가지고 제가 의미를 과잉해서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자>를 보면 ‘자연(自然)’이란 단어가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연이란 말은 그 의미가 변모합니다. 개항기에 발간된 <서북학회월보>라든가 <한성순보>, <독립신문> 같은 책을 한번 보세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달리 자연은 개발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중요성은 이로써 개입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노자>에서 말하는 자연과 근대인인 우리가 말하는 자연은 같은 자연이 아닙니다. 그저 기표, 그러니까 시니피앙만 같을 따름입니다. <노자>의 자연 안에는 인간이 있으나, 근대인의 자연은 인간 바깥에 있습니다. 차이 아시겠지요?

    그런데 근대­체제가 한낱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 자연밖에 없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예컨대 ‘명퇴’라는 걸 보세요. 어제까지 한 가족이라고 했으나 오늘부터는 그저 남입니다. 왜? 이윤 창출에 도움이 안 되니까 쫓아냈잖아요. 그러니까 쫓겨난 그는 이윤 창출의 도구였던 겁니다. 온갖 수사를 걷어내고 본다면 말이지요.

    여러분들은 또 어떻습니까? 이른바 상대평가라는 게 적용되는 탓에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 하잖아요. 그렇지요? 누가 C, D를 깔아줘야 누군가는 그 위에서 A, B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요? 왜 그렇게 살아요? 참고적으로 덧붙이자면 저희 때는 절대평가였습니다. 대학이 아직 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되기 이전이었던 거죠.

    워낙 유행처럼 학자들이 떠들어대고 있으니 탈근대라고 들어봤을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내용이 서양 학자의 이론을 남들보다 빨리 소개하며 젠 체하는 수준인데요,

    어쨌든, 어떤 방향이 되었건 방금 제가 언급했던 선비의 사상을 잇지 않아서는 탈근대사상으로 우뚝 서기에 곤란할 겁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까지도 공존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탈근대에 값하리라는 말이지요.

    여러분더러 탈근대 사상가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인문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그러한 세계관을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옛 어른들은 체득(體得)이라고 표현했는데, 몸으로 끌어안고 살아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살아나가고자 노력해야 하지 않나,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가능한 여성주의 관점에서의 비판은 커다란 논의 맥락에서 벗어나니 생략합니다.

    동학성립과 이야기

    나중에 교수로 자리를 잡고 나서 시간강사 때 언급했던 선비의 이야기를 다시 책에서 접하게 되었다. 조동일 선생께서 지으신 <동학 성립과 이야기>(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1).

    최제우의 삼종숙인 최림과 관련된 민담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그 사실이 퍽 흥미롭게 다가왔다. 최림의 일화라고는 하나 그 내용을 사실이라 믿은 것도 아니고, 딱히 그 민담이 최림에게만 상관되는 것으로 수용한 것도 아니다. 민담이란 여기저기 떠도는 것이니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최림에게 갖다 붙였을 가능성이 클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흥미를 끌었던 까닭은 최림과 최제우의 관계가 배경에 깔리고 있어서이다.

    조동일 선생은 <동학 성립과 이야기>에서 최옥, 최림, 최제우의 관계를 살피고 있다. 그러니까 동학이 성립되는 맥락을 아버지 최옥과 아저씨 최림과의 연관 속에서 최제우의 사상으로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최옥의 도술과 관련된 민담에 내재한 세계관이 동학에도 녹아 들어가지 않았을까. 서학(西學), 즉 근대­체제의 사상에 맞섰던 동학(東學)의 면모가 여기서 불거지니 내가 흥미를 느꼈던 것이다.

    이 책은 구비자료를 채록하여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성격이 짙다. 그런 까닭에 흥미롭게 일독하였을 뿐 <동학 성립과 이야기>의 내용을 반복해서 되새기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동안 잊고 있던 민담을 다시 떠올릴 계기가 생겼다. 중앙대학교의 낯부끄러운 상황이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청소 노동자들은 ‘미화 관리 도급계약서’에 따라 작업 중 콧노래를 불러서도 안 되고, 의자에 앉아서도 안 된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이것만 해도 상식 밖의 일인데 해결 방안도 영 틀려먹었다. 중앙대학교에서 낸 가처분소송 건에 따르면 대자보를 한 장 붙이거나 구호를 외칠 경우 1인당 1백만 원을 학교 측에 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니 중앙대학교에서는 청소용역업체와 노조 사이의 문제라며 발을 빼려는 모양새지만, 이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용역업체 T&S개발의 대표이사인 고희권 씨는 두산건설 부장 출신, 이사 김경석 씨는 두산건설 상무 출신 등으로 두산재단과 용역업체의 관계가 미심쩍기 때문이다.

    이 정도에서만 그쳤어도 민담이 떠오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중앙대학교 학생회의 성명서 내용을 접하는 순간 한숨이 나오면서 민담이 떠올랐다.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로 구성된 중앙위원회에서 지난 1월 15일 발표했다는 성명서에는 “교섭대상은 중앙대가 아닌 용역업체인 T&S”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학교 측의 입장을 앵무새 모양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중앙대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밝히는 대목에서는 다른 모든 가치에 앞서서 아파트 가격 하락만을 걱정하는 속물적인 근대인의 면모가 겹쳐졌다.

    성명서에는 인권에 대한 배려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그러니 만약 과거 내가 그랬듯이 누군가가 자연과의 공존(共存)을 이야기한다면 이네들은 콧방귀를 뀌고 말리라.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을까. 십여 년 전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도 이런 사실을 접하고 있을까. 그네들은 지금 어찌 살고 있을까.

    이제 중앙대학교의 교훈은 “의에 죽고 참에 살자”를 “학교 브랜드에 살고 학교 브랜드에 죽자”로 고쳐도 무방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학교를 서열화하는 어떠한 평가에 대해서도 언제나 의연했던 나는, 요즈음 모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 학교 출신임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필자소개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