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생아, 그게 내 이름이었다"
    [책소개] 『캐롤라이나의 사생활』(도로시 엘리슨/ 이매진)
        2014년 01월 26일 1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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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어린 시절 이야기

    어린 시절은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까? 자신을 보호해야 할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한 아이에게 유년이란 어떤 것일까? 가난한 사람을 향한 세상의 멸시와 혐오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아이는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감추고만 싶은 가슴속 이야기를 용감하게 꺼내놓은 강렬한 소설이 있다. 아동 성폭력, 계급, 빈곤, 모성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다뤄 큰 반향을 일으킨 도로시 앨리슨의 첫 장편 소설 《캐롤라이나의 사생아》가 작가의 새로운 후기를 덧붙인 20주년 기념판으로 정식 출간됐다.

    1992년 발표돼 《호밀밭의 파수꾼》과 《앵무새 죽이기》에 비견될 소설이라는 찬사와 함께, 미국 사회 전역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오고 1996년 영화로 제작돼 〈돈 크라이 마미〉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캐롤라이나의 사생아》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줬다.

    루스 앤 ‘본’ 보트라이트는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가난한 집안 출신 십대인 어머니 밑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 애니는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에게 또 다른 아버지를 만들어주려고 글렌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글렌에게 본은 자신과 애니의 관계를 방해하는 눈엣가시다. 글렌은 여러 해에 걸쳐 본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끔찍하게 학대한다.

    《캐롤라이나의 사생아》는 엄마만 찾던 어린 아이 본이 빈곤과 학대에 맞서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세밀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 소설이다.

    캐롤라이

    ‘가난뱅이 동성애자’가 들려주는 신랄한 성장담

    “가난뱅이를 경멸하는 세상에 가난뱅이로 태어나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성애자.” 도로시 앨리슨이 자신을 표현하는 말이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 작가로 잘 알려진 도로시 앨리슨은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캐롤라이나의 사생아》를 썼다.

    앨리슨도 본처럼 고작 15세이던 가난한 여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어머니는 앨리슨이 한 살 때 결혼을 하지만, 그 남자는 앨리슨의 여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안 지나 세상을 떠났다.

    앨리슨이 다섯 살 때 어머니는 재혼을 하고, 새 의붓아버지는 앨리슨의 어머니가 유산을 하는 동안 병원 주차장에서 앨리슨을 처음 건드린 뒤 열세 살이 넘을 때까지 폭행을 계속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앨리슨은 회고록이 아니라 소설로 어린 시절 경험을 풀어냈다. “모든 면에서 본은 나하고는 다른 고유한 존재”라고 작가는 말한다. 용감하고 고집 세며 생명력이 강한 아이, 어린 여동생과 엄마를 보호하고 싶어하는 아이, 절망은 물론 희망으로 가득 찬 아이. 앨리슨은 본을 그런 아이로 다시 창조해냈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증오하는 소녀들, ‘나는 괴물이야’라고 말하는 소녀들이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 자신을 경멸과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자신이 경멸스러운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앨리슨은 본이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써나가면서도, 본은 혐오스러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설득한다. 어린 아이이던 본이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고 가스펠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소녀로 자라나는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학대의 생존자인 본이 품은 열정과 생명력에 매혹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아 분노한 기억에 정반대되는, 사랑받는 캐릭터를 창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욕망에서 출발한 ‘악명 높은’ 보트라이트 집안 사람들을 묘사하는 대목은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다.

    출간 무렵 한 매체는 이 소설을 두고 “‘백인 쓰레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가난, 폭력, 광기, 끈질긴 생명력을 생생하게 되살려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놀라울 만큼 사실적인 풍속화”라고 평하기도 했다.

    책을 읽어가며 우리는 본을 보살피고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가르쳐주는 강인한 이모들, 감방을 들락거리는 범죄자에 ‘백인 쓰레기’로 낙인 찍혔지만 본이 당한 일에 함께 분노하고 지켜주는 외삼촌들을 만나게 된다.

    노동자 계급 사람들은 자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으며 강간, 학대,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가슴 아플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살아 숨 쉬게 된 이 생동감 넘치는 가족 속에서, 본이 자신의 가난한 가족을 향한 애증을 극복하는 과정이 차근차근 그려진다.

    용감하고 고집 세고 생명력 강한 우리 친구 본

    《캐롤라이나의 사생아》는 아동 성폭력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다룬 점 때문에 검열이라는 벽에 부닥쳐야 했다. 학부모들은 이 책을 자기 아이에게 읽히고 싶지 않아했고, 지역 교육위원회는 교재 채택을 금지해달라는 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 판결이 난 뒤에 작가 스티븐 킹과 타비사 킹 부부는 이 책을 대량 구매해 각 도서관마다 한 권씩 기증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지지했다.

    도로시 앨리슨은 출간 무렵 일어난 파문을 돌이켜보며 “나는 언제나 의도적으로 독자를 분노하게 하는 결말을 썼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면서 결말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려면 그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자신의 아이도 책을 통해 진실을 용감하게 마주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앨리슨은 말한다.

    《캐롤라이나의 사생아》는 어른들에게는 세상을 더 너르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맞설 용기를 전해준다. 체로키 인디언의 눈을 가진 투지 넘치는 우리의 주인공, ‘본’이 건네는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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