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력 안전‧감시 기능 무력화
    [에정칼럼] 박근혜식 원전정책 ‘비정상의 정상화’ ??
        2014년 01월 21일 10: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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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2월 31일 새누리당이 「외국인투자촉진법」 동시처리를 요구하며 새해 예산과 국정원법 처리를 보이콧 하고 있을 때, 새누리당 정수성 의원은 「원자력발전사업자 등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이하 ‘원전사업자 관리감독법’)을 발의했다.

    이 법은 지난 2013년 5월, 신고리 1·2호기, 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제어케이블이 설치되어 촉발된 원전비리의 후속대책이다. 결국 정부법안을 새누리당 의원이 입법 발의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7월 9일 국무회의에서 “산업부를 중심으로 안전규제를 담당하는 원안위와 경영효율을 담당하는 기재부, 비리를 찾아내는 감사원 등이 협업체계를 구축해 더 이상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한다”며 산업부에게 원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2013년 8월, 10월의 원전비리 근절대책과 2013년 12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도 ‘원전사업자 관리감독법’을 통해 원전비리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구상이 이번 ‘원전사업자 관리감독법’을 통해 발의된 것이다.

    정부는 원전비리 사건의 원인이 독점적 공기업에 대한 견제ㆍ감시 장치 미비로 인한 사각지대 발생, 관리ㆍ감독체계 분절로 인한 책임관계 불명확, 효율성 위주 운영에 따른 안전경영 기반 부실 등이라는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안에는 한수원, 한전기술, 한전원자력연료, 한전KPS 등 원전 관련 기관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안전강화 및 비리예방 분야를 관리ㆍ감독하고, 위반할 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과징금 부과 및 벌칙을 부과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가중처벌 권한까지 갖도록 했다.

    언뜻 보면 원전비리의 원인과 그 해결방안을 법안에 잘 담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원전사업자 관리감독법’은 원전안전을 위해 진흥과 규제를 분리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원전마피아들의 일자리나누기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원안위

    원안위의 감시기능 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자료사진

    오늘날 전 세계적 원전정책 흐름에서와 같이 ‘원전의 진흥과 규제의 분리’는 원전의 안전운영을 위한 최선임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때문에 원자력 안전에 관한 국제규범인 원자력안전협약은 ‘규제기관의 기능을 원자력 이용 또는 증진과 관련된 기관의 기능과 효과적으로 분리’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프랑스 등 대다수의 국가들이 원자력 안전 규제와 원전산업 진흥 기관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 또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뒤늦게나마 안전규제와 진흥 업무를 이원화했다.

    우리나라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대통령 직속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설립되면서 원전의 안전규제와 진흥 및 운영을 분리해 운영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안위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위원회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가 논란 끝에 현재 국무총리 산하로 이관되었고, 원안위는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위상이 떨어졌다.

    규제기관인 원안위는 원전안전종합계획을 비롯하여 원전사업자에게 각종 인허가를 비롯한 안전전반의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원전사업자가 이를 위반시 벌칙을 통해 이를 강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원전사업자 관리감독법’이 통과되면 원안위의 규제권한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원전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과징금 부과 및 벌칙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관급인 원자력안전위원장이 벌칙권한을 행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원전사업자 관리감독법’은 ‘원안위 무력화법’일 수밖에 없다.

    또한, ‘원전사업자 관리감독법’에는 “원자력발전공공기관은 계획 또는 제도의 수립·운용과 그 계획 또는 제도의 점검·개선에 필요한 사항을 자문하기 위하여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설치·운영할 수 있”으며(제10조), “원자력발전사업자 등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하고 투명한 건설·운영을 위하여 원자력발전산업협의회(이하 “협의회”라 한다)를 운영하여야 한다”(제13조1항)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도 한수원과 두산중공업 등 원전사업자들은 한국원자력산업회의를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으며, 구성원 대부분은 대한전기협회에 가입해 있다. 대한전기협회는 민간협회임에도 불구하고 원전 부품 검증업체 인증 기능까지 맡고 있으며, 최근 원전비리 사건에서 소위 ‘원전마피아의 본부’라고까지 지칭되던 곳이다.

    결국 자문기구와 사업자들의 모임인 원자력발전산업협의회를 법적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예산지원까지 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수원의 고위직(2직급 이상)은 2년간 협력업체 취업제한 대신에 보다 나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되는 셈이다. 가히 박근혜식의 원전분야에서 “그들만의 ‘질’ 좋은 일자리창출”이라 할만하다.

    지금까지 원전의 안전을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원전비리는 원전을 관리 감독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원안위를 비롯한 규제기관의 권한과 독립성이 약화되고, 오히려 원전마피아들이 전문가라는 명목으로 진흥과 규제기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원전사업자 관리감독권’은 원전비리 근절은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욱 공고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그런 법이다. 과연 이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박근혜 정부는 국정목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세웠다. 이는 “과거로부터 지속되어 온 잘못된 관행과 비리, 부정부패를 바로 잡기위해 추진하는 정부의 개혁 작업”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원전안전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하겠다면, 최소한 진흥과 규제의 균형추를 맞춰야 한다.

    지금과 같이 진흥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원전의 관리감독의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는 것은 원전의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원자력산업 발전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난 1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에너지 최상위 계획인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원전비중을 현행 26.4%에서 2035년까지 29%로 높여 현재 운전중이 23기에 건설․ 계획중인 원전 11개, 여기에 추가로 최소한 5기의 신규 원전 건설해, 세계에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결국 지금까지 ‘원전의 안전을 최우선시 하겠다’, ‘안전제일주의’는 허울좋은 명분일 뿐 세계 각국이 탈핵, 원전축소, 원전안전을 강조해 원전비중을 줄여나가더라도 아버지가 시작한 원전산업을 더욱 확대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식 원전분야의 ‘비정상화의 정상화’인 셈이다.

    원전밀집도 세계 1위 대한민국.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원전과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미래가 있을까? 과연 이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할 자 누군가?

    필자소개
    김제남의원실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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