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심기 - 운수 좋은 날(하)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
        2014년 01월 20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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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수 좋은 날 (상) 링크

    안경점, 꿈을 꾸다

    떡볶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단속이 부쩍 심해졌다. 우리 건물 앞에 마차를 두면서 알게 된 사실은 원래는 이 거리에 노점이 꽤 많았으나 디자인거리를 만들게 되면서부터 노점이 모두 사라졌고, 노점이 진입하려고 해도 민원이 많아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거리에서 장사를 하다가 단속으로 옆 골목에 작은 점포를 얻어 장사를 하시는 과일아저씨는 우리 건물 1층의 안경점이 민원을 넣은 거라고 했다. 실제 민원을 넣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안경점은 나의 의심 1순위였다.

    단속이 계속 나오자 이런 일에 당사자가 직접 나서면 좋을 게 없다며, 지역장님이 안경점을 방문했다. 말수가 적은 지역장님은 안경점을 다녀와서도 ‘잘 이야기했다’고만 할 뿐 이렇다 할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단속은 계속 나왔다.

    나는 전전긍긍했다. 꽤 큰 규모의 안경점에서 정문을 막거나 간판을 가린 것도 아닌데 왜 나를 자꾸 신고하는 걸까. 따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데 어떻게 이해를 구하면 좋을까. 안경점 분들이 밖으로 나오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했지만, 모든 신경은 안경점에게 쏠려 있었다.

    특히 사장으로 보이는 제일 나이가 많은 분은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담배를 피러 건물 현관, 즉 내 마차 앞쪽으로 나오신다. 그때마다 나는 안절부절이었다. 말을 걸어볼까. 음식을 좀 싸드릴까. 아예 피해버릴까. 손님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급기야 나는 꿈도 꾸었다. 안경점에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꿈이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의 품으로 들어가는 순간처럼 편안함이 안경점과 내 마차 사이에 감도는 그런 꿈. 하지만 그 꿈은 한번 뿐이었다. 그 후로부터는 내내 안경점에서 나를 단속하라고 다그치고 안경점이 점점 커져서 마차를 삼켜버리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내가 꿈 얘기를 했더니 지역장님은 보기와 다르게 소심하다며 신경쓰지 말라고 웃어넘기신다. 난 원래 심한 외강내유 형이다.

    사진 605

    자세히 보면 안경점과 내가 건 현수막이 보인다^^

    그래, 결심했어!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안경점에 찾아갔다…. 안경을 새로 하기 위해서였다.

    안경을 새로 하기 위해 그 안경점에 들어가기까지의 고민거리가 있었다. 안경을 새로 하기는 해야 하는데, 전에 쓰고 있던 안경이 꽤 비싼 안경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노점하면서 비싼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안경점 사람들에게 안 좋게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전에 쓰던 망가진 안경을 대충 쓰고 나와 안경점을 방문했다.

    안경점 분들은 대번에 나를 알아봤다. 멋쩍게 안경하러 왔다고 하니 사장으로 알았던 나이 드신 분이 안내를 해주신다. 이분은 사장이 아니고 실장이라고 한다.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을 고르는데 이분, 정말 저렴한 가격대로 추천을 해주신다. 꽤 만족스럽게도 저렴한 가격으로 잘 어울리는 안경을 그 많은 안경들 중에서 쏙쏙 뽑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안경테와 알까지 8만원 정도로 맞추고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안경점을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내게 떡볶이양념을 가르쳐준 언니와 함께 다시 안경점을 방문했다. 그 언니의 안경을 사기 위해서였다. 실장님이 언니에게 추천한 안경은 모두 테만 20만원이 넘는 것들이었다. 결국 언니는 40만원 가까이 하는 안경을 맞췄다. 그 언니가 안경을 하는 동안 나는 그제야 조금씩 안경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안경점을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 금천에 사는 친구. 정당에 있을 때 알게 된 금천위원장님 등등. 오가다가 내 마차를 이용하는 분들에게도 안경점이 좋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장사를 일찍 마치는 날에 튀김이 남으면, 새우튀김만 골라서 가져다주기도 했다. 갈 때마다 조금씩 안경점에 뭉개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안경점에는 4명이 일을 하고 있다. 나이 드신 분은 실장이고 사장은 젊은 사람이어서 약간 의외였다. 그 외에 오후와 주말에만 교대로 나오는 직원이 두 명 있다.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된 거지만, 사장은 대리사장이었고 인테리어를 다 해놓았는데 건물주가 악의적으로 계약조건을 걸어서 고생이라고 했다.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서 150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디자인 거리라 구청의 간판 단속 역시 매우 엄격해서 처음에는 상당한 과태료를 납부했다고 한다.

    내 노점마차가 있는 것이 안경점은 별 문제가 없으나, 안쪽 창문에 붙인 현수막을 조금 가리고 있으니 30센티 정도만 옮겨주면 고맙겠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마차를 살짝 옮겼다. 그 후로 안경점은 한가한 평일 오후나 아주 바쁜 주말 저녁엔 간식과 식사 대신 내 마차에서 음식을 사가기도 했다.

    안경점은 아니다. 한 달이 넘도록 안경점과 싸우거나 안경점과 화해하는 꿈을 꾸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단속은 계속 나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들

    우리 건물의 경비아저씨는 골목안의 순대국밥집 단골이다. 낮술이건 밤술이건 주로 순대국밥집에서 드신다.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경비아저씨 말로는 순대국밥집 주인이 내가 잉어빵에서 떡볶이로 종목을 바꾸면서 순대도 한다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물론 경비아저씨가 내게 말해준 건 비밀이다. 경비아저씨는 안경점이 아니면 순대국밥집일 수도 있다고 내게 귀띔을 해주셨다.

    옆 건물의 주차장 경비아저씨는 순대국밥집이 아니고 김밥천국일거라고 했다. 순대국밥집은 순대만 겹치지만, 김밥천국은 동종품목이나 마찬가지이고, 횡단보고 건너편까지 배달을 하는데 내 마차가 당연히 거슬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독산역에서 노점을 하는 노점총각은 과일가게 아저씨일 수도 있고, 오히려 안경점일 수도 있다고 했다. 사유지에서 노점을 하면서 토지주인 앞 건물과의 법정다툼까지 하고 있는 독산역 노점총각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건물에 있는 부동산에서 매일 인사도 하고 살갑게 대하기에 구청으로 들어가는 민원인이 그 부동산만은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그 부동산이 민원인이었다는 게 밝혀졌다고. 오히려 대놓고 치우라고 하거나 민원을 넣겠다는 사람보다 더 무섭다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안경점일 수도 있고, 안경점으로 떠넘긴 과일아저씨일수도 있다고 했다.

    매우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의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단속은 계속 되었다.

    일단, 순대국밥집은 경비아저씨가 맡아주시기로 했다. 민원인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으니 그냥 나와 내 마차에 대해 우호적인 이야기들을 계속 해주시는 걸로….

    그리고 나는 김밥천국에 가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러….

    오토바이 운전을 하지 않아 매일 무거운 통을 들고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걸어서 배달을 하시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큰 목소리로 인사도 했다.

    안경점과 과일아저씨는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안경점의 홍보는 계속 했고, 과일아저씨에게는 떡볶이 소스를 만들 때 쓸 과일을 멍이 들어 팔기 어려운 과일들을 사들이는 것으로 우호관계를 형성해보고자 노력했다.

    노래방 남자.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가게들에 대한 이전의 의심들을 한방에 날릴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마차를 정리한 후 바닥을 보니 떡볶이 양념 등이 떨어져 지저분한 상태였다. 바닥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건물 지하에 내려가서 물통에 물을 받아 올라왔다. 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바닥을 닦아내고 있는데, 노래방 남자가 올라오더니 대뜸 소리를 지른다.

    “누구 맘대로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가는거야?”

    “네? 그게 아니라 건물 앞을 청소하려고…….”

    “누구 맘대로 여기서 장사를 하는데!! 당신 때문에 노래방 간판이 안보이잖아! 내가 민원 넣을 거야! 다시는 아래층에 얼씬도 할 생각 말라고!!!”

    꽤 오랜 시간 이 남자는 바닥에 쭈그리고 청소를 하는 내 옆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지하에 노래방만 있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이 노래방 것도 아닌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꾸역꾸역 참았다. ‘노래방이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노래방은 내가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할 때 문을 열지 않았었다. 3개월 영업정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 영업을 다시 재개했을 때, 내 마차는 이미 떡볶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노래방 남자는 그 동안 월세며 까먹은 것과 장사하지 못한 열불까지 내 노점마차에 대고 화풀이를 했다.

    노래방과의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1차로는 나를 빼고 지역장님과 지역상인들을 꽤 안다는 분이 노래방 남자를 만나러 들어갔다. 노래방 남자는 경찰을 불렀다.

    2차로는 금천지역 노래방협회 회장이라는 분을 만나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다. 협회 회장은 아니지만 노래방업계에 입김 좀 있다는 분이 나섰다. 노래방 남자는 또 경찰을 불렀다.

    내 문제였기에 다른 분들이 나서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안경점이나 김밥천국이나 과일가게처럼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랐다.

    이 노래방은 평일에야 고만고만한 손님들이었고, 주로 주말에 대각선 건너편 웨딩홀에서 결혼식 피로연 이후 단체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 마차가 들어서면서 대각선에서 노래방 간판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웨딩홀 쪽으로 건너가 봤다. 웨딩홀 쪽에서도 홈플러스 쪽에서도 노래방 간판은 잘만 보였다. 노래방 남자는 무조건 마차를 옮기라는 것이었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현수막을 주문했다.

    의선120

    내가 주문한 현수막

    마차 뒤편에 노래방 현수막을 걸었다. 나름 간절한 화해의 손짓이었다.

    노래방 남자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마차를 당장 옮기라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나는 노래방 현수막을 건 지 이틀 만에 현수막 단속팀에게도 단속을 받았다. 노점은 가로정비반 담당이어서 마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현수막을 떼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현수막은 주말에만 걸었다. 그래도 노점단속은 계속 되었다.

    어떠한 노력도 효과가 없자 지역장님은 1차에 함께 갔던 지역상인들을 좀 아는 분을 노래방에 보내 최후통첩을 했다. 노점이 불법이어서 민원을 넣는 거라면, 법대로 하자고. 노래방이 합법적으로 장사하는지 밤새 지켜보겠다고.

    그 노래방은 1종 허가가 아니어서 도우미를 부르는 것은 불법이었다. 실제로 신고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협박이 먹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실 몇몇 과격한 분들은 노래방 남자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도우미를 불러달라고 하자는 의견까지 냈었다)

    그 다음날 노래방 남자는 밤늦게 내 마차로 왔다. 자기 핸드폰을 꺼내보이면서 자기가 민원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장은 부인이 하고 있고 자기는 사업을 하는데, 뭔가 법정 다툼이 있어서 엄청 머리가 아프다며 서류까지 주섬주섬 내게 보여주었다. 3개월 동안 영업정지를 받아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민원을 넣겠다고 했지만 실제 넣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놓는 노래방 남자는 내게 간절한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단속으로 인한 몸 고생은 잊고 노래방 남자가 안쓰러워졌다. 그 남자를 보면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미안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래도 마차를 옮길 수는 없는 문제라고 했다.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래방 남자는 이전까지 소리 지르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축 쳐진 어깨를 하고는 노래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몇 주 후 사람들과 그 노래방에 갔다. 노래 부르러.

    운수 좋은 날.

    모든 상점들과 평화롭게 지내게 된 이후로도 단속은 계속되었다. 여전히 민원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의심할 곳도 없었다.

    안경점도, 순대국밥집도, 김밥천국도, 과일아저씨도, 노래방 남자도 민원을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일 수 있으나 그렇게는 내가 살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냥 단속을 견디는 게 나았다.

    단속은 점점 더 심해지고 구청단속반 뿐 아니라 경찰까지 나오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민원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안경점분들도 과일아저씨도, 노래방 남자도, 경비아저씨도, 아쿠르트 아줌마도 궁금하게 된 그 민원인이 결국 그분들의 정보망으로 밝혀진 것이다.

    민원인은 약간 황당하게도 50미터는 떨어져 있는 건물의 1층 상가였다. 민원의 이유는 노점 하나가 생기면 여러 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민원은 계속되었지만, 나는 그 날 발을 뻗고 행복하게 잠을 잤다.

    의심의 마침표를 내가 먼저 찍어서였고,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아서였고, 조금은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것 같아서였다.

    필자소개
    전직 잉어빵 노점상. 반빈곤 사회단체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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