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의 자유를 위해
    만인의 자유가 희생된 시대
    [책소개] 『유신』(한홍구/ 한겨레출판)
        2014년 01월 18일 01:41 오후

    Print Friendly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국민의 반은 산업화를 이끈 영웅으로, 국민의 반은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로 그를 기억한다. 그의 딸이 후보로 나온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팽팽했던 결과는 그러한 국민들의 마음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킨다. 1963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그는 1967년 재선에 성공한 후 1969년 ‘3선개헌’을 통해 1971년 선거에 출마할 자격을 얻고, 1971년 가까스로 3선에 성공한다.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부탁하지 않겠다던 그는 1972년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유신헌법을 만들어 국민들로부터 투표권을 빼앗은 뒤 영구집권의 길에 들어선다. 하지만 결국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박정희의 집권 18년 중 후반 9년을 통해 벌어진 일들을 살펴본다. 유신시대가 탄생한 배경에서 붕괴해가는 모습까지, 그가 어떻게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였는지, 유신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해갔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던 시대

    ‘제1부 헌정의 파괴’에서는 우선 1970년대 초반의 풍경을 통해 1972년 비상계엄이 얼마나 부조리한 일이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수구논객 조갑제마저도 “소요사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군이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국회 해산”이라니 “그야말로 느닷없는 느낌”을 받는다며 시인한, 박정희의 종신집권 야욕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유신의 원인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유신

    ‘제2부 헌법 위의 한 사람’에서는 법과 인권, 민주주의를 유린한 유신시대의 주요 사건을 소개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임명하게 했던 유정회와 같은 제도에서부터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장준하 의문사 사건, 민청학련 사건과 초유의 사법살인을 자행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박정희 오직 한 사람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무리수가 자행되었으며, 이러한 사건들이 결국은 어떻게 박정희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살펴본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진정한 영웅, 공순이

    ‘제3부 금기, 저항, 상처’에서는 그 시대 민초들의 삶을 조명한다. 특히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자, 세칭 ‘공순이’들의 눈물겨운 삶과 투쟁의 역사를 복원한다.

    그들은 장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맨 밑바닥에서 산업화를 이룬 역군이다.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고자 꽃다운 나이에 도시로 나와 최소한의 인권마저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저임금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게 그들이다.

    또한 그들은 1970년대 내내 노동운동을 책임졌다. 대학생들조차 변변히 데모를 하지 못했던 유신의 마지막 순간 YH 사건을 통해 철옹성 같던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는 단초를 연 것도 그들이다.

    3부에서는 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과 동일방직 노조, 반도상사 노조의 상황 등을 통해 당시 노동운동의 모습을 전한다. 더불어 언론운동의 흐름도 살펴본다. 농성 중인 대학가에 ‘개와 기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을 정도로 신뢰를 잃은 언론인들도 부끄러움을 종식하기 위해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나선다. 유신체제의 탄생 이후 숨죽였던 저항의 불길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제4부 유신의 사회사’는 1970년대의 사회상을 전한다. 조국 ‘군대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 사회가 병영화되는 가운데 벌어진 베트남 파병, 새마을운동, 기지촌 정화운동, 강남 개발 등의 모습을 통해 미시적 영역에까지 드리운 독재의 그늘을 확인한다.

    급격히 붕괴된 유신체제, 갑자기 찾아온 봄

    ‘제5부 유신체제의 붕괴’는 YH사건에서부터 10.26까지를 다룬다. 가발 수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YH무역의 폐업에, 이를 막아달라며 YH 노동자들이 당시 김영삼이 총재로 있던 신민당사에 들어간 일이 유신정권의 몰락을 향한 신호탄이 될 줄은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1979년 8월 9일 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9월 8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 직무정지 판결, 10월 4일 김영삼 의원 국회에서 제명, 10월 16일 부산대 유신반대 시위 시작, 10월 18일 부산에 비상계엄 선포, 10월 26일 김재규의 박정희 사살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그간 곪아온 유신체제의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봄은 오래 가지 않았다. 10.26 이후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를 이어가고자 했던 전두환의 야욕에 김재규는 ‘국부를 죽인 패륜아’가 되었으며, 죄 없는 광주시민들은 ‘폭도’가 되었다. 여전히 유신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역사를 잊었을 때, 그 역사는 반복된다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교수는 여는 말을 통해 “우리의 누림이 무임승차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 책을 통해 유신의 야만을 제대로 깨닫고 민주주의를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유신의 부활’을 막고자 집필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유신의 폐해와 그 실체를 목도하고 분노하게도 되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1970~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세력을 유신의 몸과 광주의 마음을 가진 세대라고 일컫는 저자는 정작 그들이 민주주의가 몸에 밸 기회를 갖지 못한 불행한 세대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그 세대에 속하는 역사학도로서 유신시대를 제대로 장송하지 못하고, 보다 나은 세대를 누려야 할 젊은 세대에게 안녕하지 못한 시대를 물려주게 되어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역사를 잊었을 때, 그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비극이 두 번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