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의 모순에 맞선
    과학자 사회운동의 역사
    [책소개] 『과학....좌파』(게리 워스키/ 이매진)
        2014년 01월 18일 01: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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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으로 가는 과학자들의 20세기 사회운동사

    4대강, 핵 발전, 천안함, 황우석 등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좌우’로 나뉘어 지지하고 반대하고 의심하고 비판했다.

    그 의심과 비판의 논거를 제시하고 적극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사이에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개인의 ‘양심선언’에 그칠 뿐 일정한 흐름과 운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자본과 종북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 과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학은 정말 좌파와 이어질 수 없는 걸까?

    《과학……좌파》는 197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과학사가이자 급진 과학 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이기도 한 게리 워스키가 2007년에 발표한 긴 논문(“The Marxist Critique of Capitalist Science: A History of Three Movements?”)을 옮긴 책이다.

    게리 워스키는 자본주의 과학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역사와 전망을 바탕으로, 1930~40년대의 구 과학 좌파와 1968년 이후의 신 과학 좌파 운동이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고,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구성하려 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과학기술사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명진은 20세기 과학 좌파 운동을 향한 관심이 지나간 과거에 관한 호기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버널주의 대 급진 과학 ― 과학 좌파의 좌파 과학 소사

    게리 워스키는 고전 음악에서 쓰이는 용어를 빌려와 각 장의 제목으로 붙여 과학 좌파 운동의 분위기와 방법론을 설명한다. 먼저 1악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2차 대전 이후 과학자들이 동시대의 여러 사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참여한 사회운동의 역사를 영미권의 운동 조직들을 중심으로 살펴본 ‘옮긴이 해제’가 책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과학 좌파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빠르고 힘차게) ― 영국의 과학 좌파, 1931~1956’에서는 1차 대전 전후 시기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영국 자본주의의 상황을 살펴보고, 세계 대전의 격랑을 헤치며 과학 좌파가 그린 궤적과 성취, 승리와 비극을 개관한다.

    1차 대전을 계기로 과학기술의 군사화는 속도를 더했고, 대공황을 지나며 과학이 인류의 복지 증진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낙관은 과학 노동자 세대에게 희망의 원천이 됐다. 그리고 소련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사상, 정치 실천, 과학 실천에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영국의 과학 좌파 운동에는 좌파 과학자 그룹인 ‘비저블 칼리지’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

    비저블 칼리지의 핵심 멤버이자 1930년대 과학 좌파의 대표격인 존 데스몬드 버널은 1939년에 발표한 《과학의 사회적 기능》에서 과학을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변혁의 원동력으로 보고 과학 노동자를 새로운 사회의 핵심이자 권력의 중심으로 그려내면서, 이런 과학의 잠재력은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만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2차 대전과 냉전,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가져온 장기 호황처럼 시대를 가르는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 양상들은 구 과학 좌파의 행보에 큰 영향을 끼쳤고, 새로운 과학 좌파가 도래하는 계기가 됐다.

    2악장 ‘알레그레토 스케르잔도(조금 빠르고 익살스럽게) ― 급진 과학, 1968~1988’에서는 영국 급진 과학 운동에 영향을 끼친 미국 과학 좌파의 흐름을 다룬 뒤 1968년이 과학 노동자와 과학기술학(STS) 학자들의 급진화에서 촉매 구실을 한 과정을 살펴보고, 급진 과학 운동의 궤적과 성취를 개관한다.

    2차 대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든 미국 과학 좌파의 주축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미국과학자연맹’, 《원자과학자회보》, ‘과학과 세계 문제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 ‘민중을 위한 과학’ 등이었다.

    영국의 급진 과학 운동은 이런 미국 과학자 단체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시작됐다. 1969년 창립된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영국 협회’는 작업장 보건 문제 개입, 인종주의 비판, 과학과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 통계학의 오용에 관한 폭로, 기술이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억압에 기여하고 있는 현실에 관한 문제 제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로버트 영이 이끌어 1971년에 결성된 ‘급진 과학 동인’은 1974년부터 《급진 과학 저널》을 발간하며 급진 과학 운동의 추축이 됐다. 그러나 급진 과학 운동은 1980년대 들어 대처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변화에 휩쓸려 큰 혼란 속으로 내던져지고 만다.

    3악장 ‘론도, 테마 콘 바리아찌오네(론도 형식으로 주제에 다양한 변주를 곁들임) ― 다시 한 번 연주해줘, 샘?’에서는 먼저 두 차례의 운동에 관한 이야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을 개관한다. 그리고 제3의 과학 좌파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묻는다.

    세계화를 향한 불신과 불만, 특히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재구조화와 성장에 따라 더욱 깊어지고 있는 전지구적 기후변화 문제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학 좌파의 유령이 떠도는 시대

    우리는 이상적인 과학자의 상으로 세상을 등지고 연구실과 야외에 틀어박혀 자연을 탐구하고 관찰하며 실험하는 데 몰두하는 고지식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과학자와 좌파의 ‘과격함’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핵무기, 성차별, 인종차별, 환경오염, 제3세계의 저개발 등 20세기의 모순과 과학기술의 폐해에 맞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책은 그런 좌파 과학자들의 고민, 활동, 역경, 좌절과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과학 좌파 운동을 통해 한눈에 보여준다. ‘종북몰이’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 좌파는 좌파 과학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짧은 전성기를 맞은 뒤 199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쇠퇴한 한국의 과학기술(자) 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좌파》는 흥미로운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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