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자치의 건강성
그리고 지역권력의 생태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조중연의 <탐라의 사생활>
    2014년 01월 13일 1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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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새해 한국의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전미개오(轉迷開悟)’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으로, 얼핏 불교적 깨우침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 사자성어가 불가(佛家)에 기반한 것은 맞되,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사자성어가 한국사회에서 함의하는 사회적 맥락이다.

지난해를 래디컬하게 반성하면서 새해를 향한 전망을 냉철히 가다듬을 때,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가 단적으로 웅변하듯 우리 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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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지난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과 군 사이버 기관의 국가권력의 남용, 식민지 근대를 미화하고 무차별적 매카시즘의 굴레를 씌우려는 역사교과서의 파행적 검열사태, 좀처럼 해빙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문제,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구조적 고착화의 가중, 점차 팽배해지는 사회적 약소자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 취업학원으로 전락해가는 대학가의 움울한 자화상, 각종 선행 학습에 찌들어 있는 우리 교육의 과열된 경쟁주의 풍토 등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심한 중병을 앓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지속적 비판이 끊이질 않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비판의 대상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도리어 생산적 비판의 목소리를 호도하는가 하면, 외면하고, 심지어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미명 아래 억압하기도 하였다.

제발, 새해에는 비판의 대상들이 이러한 미망에서 돌아나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진실된 깨달음에 이르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예의주시할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다면, 난마처럼 뒤엉킨 이와 같은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질수록 국가권력의 중앙집중적 형태가 아닌, 지역자치의 분권화된 형태를 통해 말 그대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적 권력의 생성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풀뿌리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국가주의의 맹목으로 치우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방통행식 국민되기를 강요하는 국민주의도 아울러 비판할 수 있는 ‘민중의 힘’이 새롭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역의 차이를 생산적으로 궁리하고 그 차이들의 힘을 배가시키는 이 모든 과정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착근시키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 지역자치의 건강성을 훼손시키는 온갖 부정한 것들이 호심탐탐 기회를 노린다.

지역주의의 폐단과 악습을 공고히 구축시키는 지역의 부패한 토호 세력, 그리고 이러한 지역주의를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히 활용하는 중앙권력, 무엇보다 이러한 부패한 권력들의 공모에 무관심하거나 으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역민들의 타성 등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착근에 몹시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다. 때문에 지역자치의 건강성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예의 부정한 것들과의 치열한 투쟁이나 다름이 없다.

올해는 한국사회의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중요한 시기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다. 따라서 지역자치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으레 터져나오는 사회적 분노와 허탈감의 자조적(自嘲的) 외침으로 반향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작게나마 작금 퇴행하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실천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즉 우리의 생산적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올해 치러질 지방선거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역의 현안들에 무심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이 현안들과 관계 맺는 지역의 유무형의 권력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현하는 과정 그 자체이며,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중앙집중적 권력에 대한 대항권력, 즉 ‘민중의 힘’을 역사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이러한 상념 속에서 한 소설을 주목해본다.

3.

‘탐라의 사생활’?

조중연의 장편소설 <탐라의 사생활>(삶창, 2013)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고개가 치켜든 물음이었다. 그동안 제주를 소재로 한 소설이 한국문학사에서 적지 않게 제출된 바 <탐라의 사생활>은 어떠한 흥미로운 서사를 펼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겼다.

<탐라의 사생활>은 요즘 문화계 안팎에서 유행하는 일종의 ‘혼종성’의 서사를 만끽하고 있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추리소설의 외양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추리소설의 세부를 촘촘히 이루고 있는 것은 제주의 중세와 현대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어내고 있는, 말하자면 제주에 관련한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을 한 추리소설, 즉 팩션(faction)의 장르문학적 요소를 두루 갖고 있다.

그래서 <탐라의 사생활>은 대중적 서사를 골격으로 하면서 역사적 상상력과의 긴장을 통해 제주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작가의 예리한 성찰로 파헤치고 있는 문제작이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만덕 관련 역사를 작가가 전복적 시선으로 해체하는데, 그의 해체적 시선은 지금, 이곳 제주의 첨예한 정치적 사안들을 에돌아가지 않고 단박에 꿰뚫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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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의 사생활>

4.

<탐라의 사생활>은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서사가 간섭하면서 전개된다. 하나는 김만덕과 관련한 새롭고 충격적 서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도정(道政)을 이끌어나가는 지역 관료의 음습한 부정과 관련한 서사다.

이 두 개의 서사는 작가의 주도면밀한 서사전략에 의해 유기적으로 배치되면서 <탐라의 사생활>의 가독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높인다.

제주도의 기관지 <제주도지>의 특집 면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김만덕과 관련한 새로운 역사적 진실의 베일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조생전>에 실린 <만덕전>이 그동안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김만덕 관련 이야기와 다른 면을 들려준다.

그것의 핵심은 만덕이 중심이 된 ‘상찬계’의 존재이고, 이 ‘상찬계’가 만덕의 치부(致富)를 위해, 말하자면 제주지역의 정치경제적 권력과 유착하는 핵심적 노릇을 다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특히 김만덕이 김시구 제주목사를 파직시킬 때 제주 향리와 한양의 관리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점이 충격”인 바, “그로부터 10여 년 후 상찬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금고를 관리하는 물주”(197쪽)의 역할을 김만덕이 수행한 것이다. 곧 김만덕은 상찬계의 수장으로서 제주의 실질적인 권력자였던 셈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김만덕은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제주의 지정학적 요건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제주 지역의 토호, 즉 제주의 토착 향리와 긴밀한 권력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상찬계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높이면서 자신의 치부를 함께 도모한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상찬계의 존재는 “상찬계의 힘으로 제주도 안에서 해결이 안 될 문제는 없”(278쪽)을 정도로 막강한 제주지역의 막후권력으로 부상한다. <조생전>에 실린 <만덕전>은 바로 이러한 김만덕 관련 새로운 서사가 기록돼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새로운 <만덕전>에는 김만덕이 자신이 중심이 돼 조직한 상찬계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상찬계를 해체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견고히 뿌리내린 지역의 토착 권력은 그리 쉽게 해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작가 조중연의 예각적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와 닿아 있다.

이러한 상찬계의 존재를 새롭게 밝히는 <만덕전>이 <제주도지>에 실리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으려는 사람들의 전모가 드러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무엇 때문에 집요하게 기존 김만덕 서사를 전복적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헤아릴 수 있다.

그것은 “김만덕이 만든 상찬계가 현재까지 이어져 제주도의 행정, 경제, 경찰 등 여러 분야에 암세포처럼 퍼져 있다는 사실”(366쪽)을 묵과할 수 없다는 비판적 성찰과 조응한다.

이 비판적 성찰은 제주의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제주의 시민단체에 의해 주도된 도지사 주민소환운동을 무력화시키는 데 작동한 상찬계의 음험한 권력 작용을 겨냥한다. 어디 이 뿐인가. 상찬계의 지역 권력은 제주 지역 곳곳에서 그들의 오랫동안 축적된 지역 권력의 공고함을 구축하고 있는바, 작가는 바로 이 지역 권력의 음습한 부정을 응시한다.

사실, 작가 조중연의 이 같은 예각적인 문제의식을 접하면서 우리가 숙고해보아야 할 것은 상찬계로 드러난 제주의 토착 권력의 부정이 자칫 지역주의의 폐단으로만 연결짓기 십상이다. 그래서 제주 지역의 유별난 배타성과 향토성의 특수성이 지닌 병폐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지역주의는 애초 상찬계의 태동에서 근인(根因)으로 자리하고 있듯, 중앙권력으로부터 극심한 소외와 차별적 지배의 시선 또한 묵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이후 상찬계는 제주 지역 나름대로의 정치경제적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때로는 중앙권력과 대치하고 때로는 중앙권력과 야합하는 등 특유의 생존 논리에 기반한 지역권력의 생태계를 유지해왔던 것이다. 다시 말해 상찬계의 존재와 그 기능은 중앙권력과의 밀접한 연관을 통해 이해하는 게 온당하다.

사실, 제주 지역의 상찬계 이외에 다른 지역 역시 상찬계와 유사한 지역 토착 권력의 존재 여부가 엄연한 사실이듯, 이를 보편화시키면, 예로부터 지역의 토착 권력은 중앙권력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그 존립을 유지 ․ 발전시켜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김만덕'

드라마 ‘김만덕’

그런데, 문제는 <탐라의 사생활>에서 묘파되고 있듯, 제주의 도정(道政)을 책임지고 있는 지역 권력들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들의 권력을 지탱 ․ 유지 ․ 발전시키는 데 총력을 쏟는 과정에서 근대의 중앙권력과 그 운명을 함께 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근대의 국민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지역의 토착권력들이 기꺼이 공모해온 것이다.

하여, 지역의 토착권력은 어떻게 해서든지 중앙권력의 이해관계에 동참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지역의 건강성은 휘발된 채 특히 근대 국민국가의 국가주의에 귀착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동안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만던전은 모두 한양의 고위관료나 문장가가 쓴 만덕전뿐”(126쪽)으로, <조생전>의 <만덕전>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찬계와 관련한 ‘김만덕의 사생활’은 전혀 부각되지 않은 것이다. 철저히 왕도정치가 지배적인 중세의 성리학적 질서에 의해 씌어진 ‘만덕전’을 통해 제주를 중세의 국가주의로 흡수했던 것이다.

이처럼 국가주의에 철저히 흡수된 기존 만덕전은 그 이면에 음험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제주의 토착권력의 비호 아래 점점 신화적 위상으로 부각된다. 중세로부터 현대로 명맥이 유지된 상찬계는 이 신화적 위상을 한층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유무형의 토착권력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 과정에서 토착권력은 중앙권력의 지배력인 국가주의와 공모하면서 비밀스런 지역권력의 생태계를 더욱 촘촘히 다진다.

5.

조중연의 <탐라의 사생활>은 “인간적인 갈등이 없는 초인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그리고 있는”(128쪽) 김만덕 이야기의 또 다른 측면을 해당 시기의 사료에 기반한, 이른바 문헌학적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팩션(faction)의 특장(特長)을 잘 보여준다.

비록 이 소설의 주요한 무대가 제주에 한정되지만 작가의 예각적 문제의식은 제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제주를 비롯한 어느 지역에서나 그 지역 특유의 토착권력이 존재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 토착권력이 자신의 지역 기반에서 그 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앙권력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매우 밀착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가주의와 긴밀히 연동되고, 지역의 토착권력은 지역의 건강성을 국가주의란 미명 아래 훼손시킨다.

이제 지역의 현안은 매우 중요하다. 특정 지역의 문제가 특수성을 갖는 것은 분명하되, 그 특수성은 해당 지역의 협소한 문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좁게는 다른 지역, 넓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안들과 밀접한 맥락이 닿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의 문제는 국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와 포개진다는 사유가 절실하다.

<탐라의 사생활>에 뒤 이은 조중연의 후속작이 기대된다. 뚝심 있는 문장과 정치(精緻)한 문제의식, 무엇보다 전체 서사의 장악력은 신예 작가 조중연의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제주의 또 다른 문제를 통해 한국소설의 한계를 전복시킬 새로운 서사의 지평을 모색하는 작가의 원대한 꿈의 실현을 나는 기대해본다. (끝)

필자소개
문학평론가, 광운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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