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 사망
    '베이루트의 학살자' 혹은 '이스라엘의 수호자'로 불렸던 사람
        2014년 01월 12일 02:04 오후

    Print Friendly

    어제 1월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전 총리 아리엘 샤론이 8년간의 식물인간 상태에서 수도 텔아이브 인근의 병원에서 85세로 사망했다.

    1928년 태어난 샤론은 이스라엘 국가 성립 선포를 낳았던 1948년 전쟁에 육군장교로 참전했다. 또한 그는 1967년과 73년 중동전쟁에서도 뛰어난 역할을 해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영웅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의 사망으로 마치 남아공의 만델라 사망으로 아파르트헤티트와 맞선 남아공 ANC 1세대가 끝난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도 이제 1948년 전쟁 참전 세대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1948년 전쟁 세대는 아리엘 사론과 90대인 현재의 페레스 대통령이 있다. 페레스는 노동당 출신이고 샤론은 리쿠르당-카디마당의 우파이지만, 둘 다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이었던 벤-구리온의 양아들같은 이들이었다. 다만 페레스는 군인 출신이 아니고 샤론은 군인 출신의 정치가였다.

    사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으로 대표되는 중동 분쟁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시리아 국경의 골란고원을 무단 점령한 1967년 6일 전쟁이나 1973년 전쟁이 아니라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선포 전쟁에서 기원한다.

    샤론

    1998년의 아리엘 샤론(위키피디아)

    또 샤론은 국방부 장관으로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이끌었으며 당시 레바논 기독교민병대에 의한 2000여명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막지 않고 오히려 방조하고 도모했다는 이유로 ‘베이루트의 도살자’로 불리기도 했다.

    반대파들에게 샤론은 도살자, 학살자로 불리웠지만 지지자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수호자, 불도저라고 불리며 칭송을 받기도 했다.

    또한 샤론은 중동 분쟁의 화약고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정착촌’ 건설을 주도한 사람이고 정착촌 건설 운동의 후견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말년인 2004년 총리 재임 시기에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정착촌 철수를 추진하여 묘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2005년에는 그가 몸 담았던 극우파 정당 ‘리쿠드당’을 탈당하고 온건 보수정당인 ‘카디마당’을 창당했고 그의 당은 2006년 1월 그가 쓰러진 이후 3월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그는 2006년 1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지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오바마 미 대통령과 카메론 영국 총리 등은 이스라엘인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전 생애를 이스라엘에 헌신했던 가장 훌륭한 지도자의 한 명를 잃은 것에 대해 애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팔레스타인 저항단체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샤론은 팔레스타인에 재앙을 안긴 인물”이라며 “우리는 그의 죽음에 행복을 느낀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