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의 잊혀진 이야기
    한진중공업 이전 대한조선공사
    [책소개]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남화숙/ 후마니타스)
        2014년 01월 11일 11: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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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늙은 노동자들의 잊혀진 이야기

    “오랜 세월 잊혀 온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한글판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말을 걸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옛날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지금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도 여전히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을 부여잡고, 희망버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운동 양식과 운동 주체 형성을 모색하는 싸움의 한복판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전하는 옛날 이야기가 오늘 어떤 기억이 되어 자리 잡을지 지켜볼 일이다.”_한국어판 서문 가운데

    “[1969년 파업 이후] 조공에서 노조 민주화운동의 서막은 1986년 초에 열린다. 연례 노조 대의원 선거가 다가오던 당시, 용접 공장의 나이 든 아저씨 노동자들이 젊은 여자 용접공 김진숙에게 선거에 나가 보라고 권유한다.

    1986년은 노조 대의원들이 3년 임기의 노조 위원장을 뽑는 해였기 때문에 그해의 선거는 여느 해보다도 노동자의 관심을 끌었다. 1969년 파업의 패배 이후 노조는 노조 활동에서 민주적 원칙을 지키는 데 열성을 보이지 않았고, 노조 대의원 자리는 직장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직장은 관리자와 더불어 고용, 근무 평가, 승진, 오버타임의 분배, 성과급 등 노동자의 생계가 달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나이 든 노동자들이 젊은 일반 조합원을 대의원 자리에 오르도록 민 것은 작업장의 권력 구조에 도전하는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순간은 조공 노조의 민주화로 치닫는 일련의 사건의 작은 시발점이었다.”_본문에서

    조공1

    이 책은 한반도 동남부의 항구도시인 부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때 국내 최대 조선소이기도 했던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들이 만들었던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살고 싶었으며, 만들고자 했던 어느 ‘국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이 책은 해고 노동자 김진숙이 처음엔 귓등으로 들어 넘겼다던, 그녀에게 노동조합 대의원 출마를 권했던 ‘용접 공장의 늙은 아저씨들’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날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전사(前史)이자, 김진숙, 박창수, 김주익을 중심으로 1980년대에 한진중공업에서 민주노조가 재등장하기까지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김진숙에게 대의원 출마를 권했던 용접 공장의 나이 든 아저씨 노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노동조합과 대의원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책은 부산 영도의 어느 조그만 사무실에 거의 1만 쪽에 가까운 문서들을 수십 년간 보관해 왔던, 그리하여 언젠가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기대하며 차곡차곡 문서들을 철해 보관하던 조합원들의 정성이 어린 자료들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저자인 남화숙은 이 자료를 토대로 박정희 시기(1961~79년) 동안 대한조선공사(조공)에서 전투적인 민주노조가 일어났다가 쇠망해 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조선소 중공업 남성 노동자들의 인식과 태도 및 그들의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그 투쟁성의 역사적이고 사회, 정치적인 원천을 분석한다.

    조공2

    대한조선공사 노조 문서 자료(한진중공업 노조 소장 자료).

    “1960년대 한국 노동운동은 ‘전반적으로 온순하고 미조직화되어 있으며 정치적으로 조용’했으며, ‘강한 집단적 정체성과 연대감이 뒷받침된 사례가 드물’었다.”_본문에서

    잊혀진 1960년대 민주노조 운동을 복원하다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1960년대는 대체로 잊혀져 있다. 늙은 아저씨들로 호명되고, 기억이 되듯 이 시기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운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노동운동사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해방 직후 뜨겁게 일어났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를 중심으로 한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을 잠시 다룬 다음, 곧바로 1970년대로 건너뛰면서 그 중간에 속한 기간 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 상례였다.

    찬란했던 1980년대 중후반의 노동운동과 이를 예비했던 1970년대,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침묵의 1960년대. 이런 서술들은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에 걸쳐 진행된 전평 계열 노조들을 비롯한 좌파 노동운동 세력의 괴멸, 한국전쟁이 각인시켰던 국가의 폭력적 힘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이를 정당화한다.

    그 결과 1950년대와 60년대는 노동운동의 침체와 고난의 시기이며, 이 시기 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무력한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과연 1960년대 한국 노동운동은 ‘전반적으로 온순하고 미조직화되어 있으며 정치적으로 조용’했으며, ‘강한 집단적 정체성과 연대감에 뒷받침된 사례가 드물’었는가?

    이 책은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이와 같은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해방 정국에서 일어났던 노동자와 농민의 대규모 운동이 비록 패배로 끝났을지라도 이후의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같은 영향이 1950년대 후반, 대한조선공사에서 전투적인 민주노조가 탄생하는 데, 나아가 1960년대에 걸쳐 그 같은 운동이 강력히 성장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하며, 이런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경험이 이후 1980년대 중반에 급격히 분출한 한국의 노동운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한다.

    노동운동사에 대한 이 같은 시각은 또한 박정희 시대와 한국의 경제성장 및 민주주의와 관련해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경제 기적은 ‘강한 국가’ vs ‘약한 노동’이라는 식민지 시대 이래의 한국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960년대에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과 같은 산업 노동자들이 그 스스로 실천했다.

    요구했던 민주적 전망들을 억압한 이후에야 비로소 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한국의 경제 발전 방식과 이를 통해 건설하고자 했던 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국가와 자본 그리고 노동자들이 서로 각축을 벌였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경제 발전은 노동자들이 꿈꾸었던 민주적 전망들이 억압된 이후에야 비로소 달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조공3

    1968년 현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조공 노조 간부들(박인상 소장 자료).

    “한국의 ‘경제 기적’은 조공 조선소 노동자와 같은 산업 노동자들이 지녔던 민주적 전망들이 억압된 후에야 비로소 달성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성장 우선’ 이데올로기는 1970년대에야 굳게 뿌리내렸고, 그 이데올로기는 산업 노동자들보다는 새로 성장하는 중산층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는 콜리의 주장처럼 ‘바퀴 자국’을 따라 쉽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기보다는 그의 근대화 전망에 대한 대중의 저항과 직면해야 했고, 따라서 1972년 본격적인 권위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고 이해된다.”_본문에서

    노동자들의 문서고 속에 나타난 1960년대 노동자들의 계급 문화와 정체성

    이 책은 지역 사업장 차원에서 산업 노동자를 관찰해 봄으로써, 다시 말해 노동 정치를 아래로부터 재해석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수행했던 역할과 그들의 심성에 대한 기존 지식에 도전하려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문서고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1960년대 노동자들의 심성과 세계관은 연대성과 민주주의로 집약된다 할 수 있으며, 이들은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하는 민주적인 국가에 대한 일관된 전망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당시 널리 수용되었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이상을 가져와 이를 효과적인 저항 담론으로 재생산해 냈는데, 그들이 만들어 낸 담론은 사회적 위상에서의 평등은 물론, 산업화의 과실을 공유할 권리를 주장하는 근거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이들은 작업장에 대한 경영진의 통제에 맞서, 노사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파트너로서 동등하게 기업 육성을 책임지며, 나아가 산업화의 결실까지 평등하게 향유하는 것이 민주 사회임을 명확히 주장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노조의 담론에 따르면, 경제 발전은 노동자의 노동과 헌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따라서 가족 생활급을 통해 건실한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는 것이 성공적인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노조는 노사 관계를 종속 관계로 파악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비협조적 태도를 견지하는 사측의 입장을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발상이라 비판하며, 바로 이것이 노사 불화의 씨를 태동케 하고 있다고 되받아쳤던 것이다.

    “노사 관계를 종속 관계로 결속시키려던 시대의 노사 간의 불화, 분규 내지 쟁의 등으로 말미암아 상호 손실이 큰 것이었음으로 …… 종업원 및 조합원의 정당한 불평 내지 불만의 집약 표시로 나타나는 노동자의 상설 대표 기관인 노동조합 …… 에 대한 경영자 측의 …… 질시와 비협조적인 태도[가] 노사 불화의 씨를 태동케 하여 노사 불화의 조성과 나아가선 대한조선공사 기업 육성에 위협을 초래할 우려가 있음.” _조공 문서철(1964년 12월 28일, 조공 사장에게 보내는 “협조 요망”)

    이 같은 노동자들의 세계관은 당시에 만연했던 신분에 기초한 육체노동에 대한 사회적 경시에 대한 강력한 저항에 기초한 것으로, 노조원들은 노사 관계에서 경영 측과 동등한 파트너 관계가 되도록 노조의 위상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고, 조금이라도 사측으로부터 계급이나 신분 차이에 기초한 차별이나 불손한 태도가 감지되는 경우 주인과 머슴의 수사를 퍼부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한편, 이들은 성차에 대한 당시의 지배적인 관념을 깊이 내면화하고 있는데, 이는 가장으로서의 노동자가 가지는 남성적 주체성에 대한 인식과 견고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들의 남성성과 존엄성에 대한 감각은, 협상 테이블에서 동등한 자격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일정 수준 이상의 가족 생활임금을 주장하는 주요한 논리로 작동했으며, 하나의 가족으로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 중요한 고리로 작동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중요한 성찰의 지점을 제공한다 할 수 있다.

    “우리 해상노동조합 대한조선공사 지부는 …… 이제는 어느 곳에도 지지않을리만치 굳센 조직체로서 성장하였으며 민주적인 노동조합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 우리들의 민주노동운동은 인간 존중의 정신을 기조로 한 운동이며 우리들은 인간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양으로 숭고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한 평생에 걸쳐서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_조공 문서철(1967년 정기 대의원회의 자료)

    “노동조합 운영의 지선의 목표는 민주적 노동운동에 있다. 따라서 조합원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계발하고 적극 참여시켜 이룩된 집약적 방안 설정에 의하여 강력히 추진 관철하는 데서 노동조합의 생명이 연면히 지속되는 것이다. …… 조합 운영을 조합원 중심으로 이끌 수 있는 각 부서 활동을 능률적으로 활용하여 실질적으로 조합과 조합원, 또 조합원 상호 간의 밀착을 기하고 조합의 민주적 방향 추동이 조직의 저변 확대에서 맹렬한 기세로 전진하는 상향식의 운영 지침을 거듭 확인한다.”_조공 문서철(1968년 11월 16일, 임시대의원대회 활동보고)

    노동자들의 존엄성, 연대성 그리고 민주주의

    “1960년대 조공 노조의 운동이 [민주주의에 대한] 대한노총 노조 지도자들의 수사적 입장과 구별되는 점은, 조공 노동자들이 근대적이고 민주적이며 존엄성을 지닌 산업 노동자로서의 페르소나를 공적 사적 무대 모두에서 의식적으로 수행했다는 사실이다.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퍼포먼스는 사측, 정부 당국, 경찰 또는 대중매체와의 상호 대면에 있어서나 내부 활동에 있어서나 일관성 있고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지도부를 갈아치운 조합원의 반란을 목격했고 항상 지도부에 대한 조합원의 비판에 노출되었던 1960년대 조공 노조의 간부들은, 민주적 원칙에 따라 노조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기탄없이 표명하는 것이 위험을 내재하고 있음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수사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민주적 원칙들을 강조하고 따름으로써, 노조 지도자들은 노조의 운동 방향을 제어하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태롭게 하는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다.”_본문에서

    그렇다고 이들이 노사 간의 관계에서만 평등과 노동자의 존엄성,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이 같은 원리들을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방편으로 노력을 했는데, 이는 하후상박, 연대성, 노동조합 민주주의로 활성화되었다.

    먼저 이들은 노사가 합의한 임금 인상분 총액이 하후상박의 원칙, 다시 말해 낮은 노동자에게 인상분이 더 많이 돌아가는 원칙에 의해 분배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만들어 냈는데, 일반 조합원들은 이와 같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기존의 지도부를 교체하기까지 하며 이를 강력히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민주노조의 운동 과정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광범위한 연대의 원칙 역시 수립했는데, 이를 통해 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임시공, 견습공, 파견공, 하청공 등의 비정규직까지 노동조합이 포괄 보호함으로써 연대의 범위를 확장했다.

    마지막으로,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민주주의를 특히 강조했는데, 그들은 회의에서 언제나 ‘현장 분위기’를 걱정했고, 각 현장에서 선출되어 온 집행위원들에게 현장에 가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와서 보고하라는 요청을 자주 내렸다. 또한 노조 집행부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간부들에게 현장들 돌아다니며,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 청취를 독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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