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도 거리로 나서는 이유
    [기고] 시간은 흘렀으나 민주주의의 시계는 멈추었다
        2014년 01월 06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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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유신의 부활이라고 하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시대가 변하였으므로 유신독재가 다시 이루어질 수는 없고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의 그림자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였고 국정을 잘 운영해 줄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재의 방식이 달라질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점점 갖게 됩니다. 그리고 두 명의 박대통령에 대해서 어색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아버지가 있던 자리에 딸이 있으니 어색하지만 아버지가 하던 방식대로 딸이 하니 비슷합니다.

    시대와 환경이 바뀐 만큼 어색하지만 권력의 자리에 그 때 그 사람들이 들어와 앉아있으니 비슷합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납치와 고문이 없는 점은 다르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보니 대단히 닮았습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순간, 그 선거의 공정성이 상실된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그래서 1972년 유신헌법 개정 당시 군부대가 투표소 근처에 상주하고 중앙정보부의 ‘95% 득표 공작’ 명령이 하달되어 국민들을 선동하는 장면과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가 여론을 조작하는 장면은 다르면서 같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선거 사건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하여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규명하여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최상의 입증방법은 이명박 전대통령을 수사하여 과연 이명박 전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지시하였는지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원세훈 전국정원장을 수사하던 검찰총장을 임명 5개월만에 내쫓고 수사실무자인 검사를 징계하여 수사를 방해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비리를 감추려는 권력의 관행은 변하지 않았고, 국가기관에 의해 민주주의가 침해되는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선거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거나 33년만에 내란음모사건을 터트리면서 정국 전환을 도모하였습니다. 심지어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여 소수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권력에 대한 합리적 문제제기에 대하여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메카시즘적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종북몰이가 아니라 불법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는 방법을 통해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입니다.

    종북몰이와 공안탄압은 한 몸처럼 나타납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던 1970년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자는 아무런 항의도 못하고 일만 해야 했던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란 말만 꺼내도 불순분자로 낙인찍힌 채 해고를 당하는 것은 물론 경찰에 끌려가거나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는 탄압의 대상입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바친 투쟁의 결실로 지금에 이르렀지만, 권력은 기회만 되면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구속합니다. 전교조를 노동조합이 아니라 하고, 전국공무원노조의 노조설립신고를 반려한 것은 노조 결성을 어떻게든 저지하려는 박정희 정권의 행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현행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대규모 경찰병력이 민주노총 건물을 침탈한 것은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위법한 공안탄압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민행복시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경제민주화를 하여 민생을 챙기겠다,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 사회적 합의 없이 철도를 민영화하지 않겠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하여 국정조사를 하겠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남북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 등 구체적인 내용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변질되었고 민생은 어려워졌으며 재벌들의 경제적 권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기초노령연금 공약은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파기되었습니다. 사회적 논의도 없이 철도민영화를 위한 수서발KTX 주식회사가 설립되었으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는 거론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남북관계는 신뢰구축은커녕 긴장과 대결로 일관되었습니다.

    대통령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지만, 이와 같은 대통령의 선서는 단순한 말에 그치고 말았고, 공약은 공약에 불과하다는 경험칙은 증명되었으며, 국민들은 또다시 기망을 당하였습니다.

    변칙적인 3선 개헌 후 1971년 마지막 출마라며 공약하였던 박정희 전대통령이 그 이듬해 종신대통령이 가능한 유신헌법을 만들어 스스로의 말을 뒤집었던 것과 기묘한 일치를 이룹니다.

    현행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이 간단한 두 문장은 헌정사상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공화국이었던 것인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된 적은 있었던 것인지 의문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하여 우리의 후손들이 무엇이라 평가할 것인지 두렵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후대의 평가가 두려운 나머지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근현대사교과서를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닉슨 사임-뉴욕타임즈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알리는 뉴욕타임즈의 당시 보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40여년전인 1974년 8월 9일 탄핵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대통령직을 스스로 사퇴해야 했습니다. 도청을 해서 탄핵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도청 사실과 무관하다며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탄핵되었던 것입니다.

    닉슨대통령 역시 자신은 몰랐다면서 보좌관을 해임하여 꼬리를 자르고, 특별검사를 해임하여 수사를 방해하였으며, 베트남전을 내세워 안보를 강조하였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하여 자신과 무관하다면서 수사를 방해하고 종북몰이로 안보를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민주주의의 시계는 멈추어 버린 채 독재의 시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은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의지와 열망에 의해 돌아간다는 역사적 진리를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려는 이유입니다.

    필자소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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