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神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
    "평화를 가져다 준 그 순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
        2014년 01월 03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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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초컬릿(blood chocolate)’

    굳이 축덕이 아니더라도 축구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드록바(Didier Drogba)라는 이름을 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챌시에서 2004-05시즌부터 뛰기 시작하면서 2011-12시즌까지 리그에서만 221경기 출전 100골의 기록을 세웠던 선수. 해결사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던 결정력과 그라운드를 바람처럼 가로지르던 야생의 피지컬은 그의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는 드록바를 신에 비유해 ‘드록신’이라고 추앙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였고, 심한 경우 그의 모국은 코트디부아르를 아예 ‘드록국(國)’이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다. 일부 축덕들은 아예 ‘드록복음’과 ‘드록신경’을 만들어 찬양을 하기도 한다. 물론 ‘드록교’가 발흥하고 신흥교단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드록신경

    전능하사 첼시를 만드신 로만 아브라히모비치를 내가 믿사오며, 그 에이스인 우리 주 디디에 드록신을 내가 믿사오니, 이는 프리미어 리그로 잉태하사 조제 무리뉴에게 나시고, 에르난 크레스포에게 골을 먹히사 1-2로 패배하여 조별리그 탈락하시고, 탈락한 지 6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시며 유럽축구 정점에 오르사, 명장 로베르토 디 마테오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골 넣은 자와 골 먹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챔스를 믿사오며, 거룩한 시합과 선수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골을 넣어 주시는 것과 승부차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개쳐바르는 것과 다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첼시가 우승하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드멘!

    드록바가 세인들에게 축구 외적인 면모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모국이었던 코트디부아르의 내전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축덕들 사이에는 ‘신’급으로 추대되는 선수들이 꽤 되는데, 예컨대 내 경우는 ‘만일 신이 있다면 그의 형상은 마라도나와 같을 것이다’라고 설을 풀고 다니는 식이다. 그런데 드록바는 그의 ‘전능’으로 전쟁을 멈추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 식민지에서 해방된 코트디부아르의 주요 산물은 코코아였다. 전 세계 수요의 40%에 달하는 코코아를 생산하는 세계 제3위 생산국이자 최대 수출국이다.

    그런데 코트디부아르의 북부는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등 주변국에서 유입된 가난한 이민자들이 유입되었고 이들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넘는 수준이었다. 특히 이들은 주로 이슬람이었다.

    2002년부터 드록국, 아니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유혈낭자한 내란이 벌어졌다. 남부 기독교 세력이 중심인 정부가 국가의 주요 산물인 코코아 수출의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고 하면서 북부 이슬람 반군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결국 내전으로 비화된 것이다.

    ‘드록神’의 강림

    쿠데타 반군의 명분은 코코넛이었지만 실제로는 남부의 기득권 세력이 이 북부인들에게 정치활동의 자유를 박탈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벌어지게 된 이 내전은 그래서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피해도 막심했다. 5년 동안 이어진 내전으로 인해 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생겼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총기류가 유포되면서(추정 약 300만 정 이상) 민간인의 피해가 더욱 극심해졌다는 점이다. 드록바와 관련된 한 영상을 보면 의족을 한 어린이가 즐겁게 공을 차는 모습이 나오는데 코트디부아르의 참담한 상황을 이것만큼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없을 것이다.

    내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2005년에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전으로 들썩였다. 코트디부아르 역시 월드컵 진출을 위해 예선리그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 최전방에는 드록바가 있었다.

    수단과 진행된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드록바의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은 마침내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최초로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을 따냈다. 2005년 10월 8일이었다. 드라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터뷰를 하던 도중 드록바는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드록바

    드록神(Didier Drogbq)의 위엄. (출처) 갈라타사라이 SK 홈페이지

    “우리는 무릎을 끊고, 서로 용서할 것을 간구합니다! 풍성한 자원의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인해 어두워 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부탁입니다. 무기를 놓으십시오. 그리고 선거를 준비합시다.”

    그리곤 ‘드록신’의 선언은 현실이 되었다. 내전의 총성이 멈췄다. 증오와 광란의 카니발이 멈춘 것이다. 물론 ‘드록신’이 한정한 일주일이 지난 후 속세의 인간들은 또다시 총질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2년이 더 흐른 2007년 7월에 내전이 종료되지만.

    그러나 드록바의 호소가 동인이 되었던 이 일주일간의 평화는 코트디부아르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울렸다. 마치 1차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의 병사들이 크리스마스에 총을 내려놓고 축구를 했던 ‘크리스마스 휴전’의 기적같은 이야기처럼.

    세월이 지난 후 드록바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 준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다.”

    1달만 전쟁정쟁을 멈춰라?

    신년 초에 뜬금없이 드록바가 생각난 것은 안철수 의원이 광야에서 외롭게 외친 한마디 때문이다.

    “한 달 만이라도 막말 없는 정치의 모습을 여야 지도부가 국민에게 약속하자.”

    드록바가 전쟁을 멈출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가 잘나가는 축구선수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출생하고 자랐던 그곳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있었고, 음으로 양으로 모국을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 했으며, 축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고, 월드컵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무릎을 꿇었다.

    만일 그가 제 태어난 곳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저 의무방어전으로 국대경기에 참가하는 정도에서 멈췄거나 ‘신’급 반열에 등극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의 호소는 그냥 안타까운 해프닝으로 그쳤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드록바는 뭔가를 했고, 뭔가를 제시했다. 프리미어리그 입성 초기에만 해도 드록바는 요새 아랍 축구팀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소위 ‘침대축구’의 달인이었다. 콧김만 스쳐도 목덜미와 발목을 붙잡고 쓰러지는 헐리우드 액션으로 일관했다면, 아마도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드록바의 행위 역시 신뢰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변신했고, 그 변신을 통해 몸과 입으로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먹혔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정치인이 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박근혜고 다른 하나는 안철수다. 이 두 사람은 개인적 캐릭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을 공유하는데 그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두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뉴스가 되지만 입을 열면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두 사람이 입을 열지 않고 있는 동안에는 영문 모를 고공 지지율을 유지한다.

    ‘안철수’ 하면 그를 상징하는 정치적 기호로 ‘새정치’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가 정계에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그가 말하는 ‘새정치’는 도저히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항간에 한국사회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세 가지 테마가 있는데, 하나는 박근혜의 ‘창조경제’, 두 번째는 안철수의 ‘새정치’, 마지막으로는 김정은의 ‘속마음’이라는 우습지 않은 우스개가 돌 지경이다. 농담이 아니라 그의 ‘새정치’는 정치철학적으로도 또는 실행의 양태라는 측면에서도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 상황에서 더 희한한 현상은 안철수의 ‘새정치’가 도통 그 윤곽조차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안철수 자신이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 우물거리며 이야기는 하는데 그것이 그래서 새정치라는 이야긴지 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더 기가 막히는 현상은 안철수가 그렇게 눙치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뉴스가 되고, 뭔지 모르지만 뉴스가 된 그 상황이 지지율을 올려주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가 “유명한 사람은 그 사람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유명하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의 경우가 딱 그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달 만이라도 정쟁을 멈추자는 그의 제안인지 호소인지 모를 외침이 드록바의 그것처럼 현실이 될 가능성은 아마 제로일 것이다.

    정쟁의 당사자들이 감동을 받기 위해선 제안자의 호소가 공명을 일으켜야 한다. 공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만연한 정치혐오 내지 정치 무관심 때문이다.

    탈정치의 상황에서 가능한 정치적 행동은 오히려 정치적이지 않은 사안들을 정치적인 것처럼 떠들며 소요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탈정치의 시대에 정치인들은 살아남는다. 이러한 사실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기성 정치인들은 결코 ‘정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정쟁’은 실제로는 정쟁이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타협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심각한 문제는 안철수가 ‘정쟁’의 중단을 요구하면서 내세우는 대안이라는 것은 원래 그것이 ‘정쟁’의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민생문제는 협력하고 정치개혁은 경쟁”하는 것이 바로 ‘정쟁’의 내용이며 원인이다.

    돌려 말하면 안철수는 ‘정쟁’의 성격은 고사하고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안철수는 “진영이나 정략, 막말, 증오, 배제, 무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새정치’의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싶은가보다.

    그러나 오히려 정치와 정쟁은 바로 그 “진영이나 정략, 막말, 증오, 배제, 무책임”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는 과정이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그래서 정치 자체를 없애자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안철수가 자신의 말이 먹히는 상황을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간보기는 이제 그만 하고 ‘새정치’의 속살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새정치’가 어떤 틀거리를 갖추고 있고,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드록바는 ‘드록신’이 될 수 있지만 안철수가 ‘God철수’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 한 달이라는 기간에 “진영이나 정략, 막말, 증오, 배제, 무책임”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1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은 서로 “진영이나 정략, 막말, 증오, 배제, 무책임” 없이 국회의원들이 쉴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노동당 정책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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