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촉법',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일자리 창출은 과대포장, 본질은 재벌에게 특혜
        2014년 01월 03일 12: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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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안이 진통 끝에 새해를 넘겨 1월 1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254명에 찬성 168명, 반대 66명, 기권 20명으로 압도적 찬성율로 통과됐다.

    전날인 12월 31일, 민주당에서는 법사위원장인 박영선 의원이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예산안을 새해를 넘겨 처리할 수 없었던 민주당 지도부는 외촉법을 예산안 등과 일괄 처리를 새누리당과 합의했다.

    이 때문에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외촉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여야 합의에 대해 30일 “밀실 야합”이라고 강력 비난하기도 했다.

    국정원 개혁법 내주고 외촉법 받은 새누리당

    외촉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조속한 통과를 요구한 법안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박 대통령의 의중을 받아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국정원 개혁과 관련한 법안과 함께 처리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들의 반발이 컸다. 일부 보수언론은 국정원 개혁법이 통과되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등의 격양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기면 준예산 편성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여야 모두 빅딜을 한 것이지만 서로 잃은 게 더 크다는 반응이다. 특히 외촉법의 경우 국회 주요 쟁점 대상이 아니었지만 예산안을 급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복병이 됐었다.

    외촉법 개정안,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배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또다시 계열사(증손자회사)를 만들 때에는 지분 100%를 보유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손자회사가 외국 회사와 합작투자로 자회사(증손자회사)를 설립할 수 없었다.

    통과된 외촉법 개정안은 이러한 제한에 대해 예외적으로 지분율 규제를 10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 토론에 나선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지적했듯 “재벌기업들이 아들, 손자에게 자기 재산을 대물림하는 합법적 창구로도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검은 머리 외국인의 돈인지, 재벌이 해외로 빼돌렸던 돈인지, 외국 시민권자의 재벌 증손자의 돈이 들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GS칼텍스, SK종합화학의 전방위적 로비 의혹 제기
    재벌, 일단 공장 지어놓고 투자활성화 빌미로 국회 겁박

    특히 이러한 법개정으로 혜택을 받는 기업도 일부 대기업만에게 돌아간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이미 외국회사와 합작해 증손회사를 설립하려고 했던 대기업들이 이를 합법화시키기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일 새벽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외촉법 개정안 반대 토론을 통해 “이번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의 문제는 SK종합화학, GS칼텍스 손자회사가 합작 증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이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로비를 통해 합법화하려는 시도에 면죄부를 부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외촉법 통과를 촉구하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여야 원내대표(방송화면)

    외촉법 통과를 촉구하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여야 원내대표(방송화면)

    2일 오전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외촉법에 대해 “GS와 SK가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부와 국회, 언론사 곳곳에 엄청난 로비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도 누구로부터 어떤 (정보를) 입력을 받았는지 법이 통과되면 투자와 일자리가 엄청 늘어날 것처럼 국회에서 연설을 했고,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2조3천억원의 외국인 투자가 이뤄진다며 처리를 부탁하고 다녔다”며 “국회가 2조3천억원에 지주회사법을 팔아먹은 것”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에서도 드물게 이혜훈 최고위원이 외촉법 통과에 쓴소리를 냈다. 이 최고위원은 2일 TBS라디오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에서 “S기업은 지금 공장을 짓고 있고 올 초에 공장이 완공되는데 외촉법이 통과가 안 되면 공장을 지어 놓고 뭐하란 말이냐며 국회와 국민을 겁박하는 수준으로 나왔다. 어떻게 보면 투자 활성화라는 인질”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외촉법 통과로 2조3천억원 규모의 투자사업으로 1만4천여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의 경우 2011년부터 추진해온 울산 파라자일렌 공장 증설비용 9,600억원 중 4,800억원을 일본의 JX에너지로부터 투자 유치를 할 수 있게 됐다. GS칼텍스의 경우 2012년부터 일본 업체들로부터 1조원 규모의 여수공장 합작증설계약을 체결하고도 진행하지 못했는데 외촉법 개정안 통과로 드디어 추진하게 됐다.

    결국 정부가 법안 통과 전부터 불법적으로 투자유치를 해온 일부 기업들의 투자유치 계획을 토대로 투자규모와 일자리 수를 파악한 뒤, 투자활성화라는 이유로 법안 통과를 독려했다는 것이다.

    현재 법 개정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업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 549곳이고, 이 중 대기업은 290여곳, 중견 및 중소기업은 25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자리 창출 1만4천? 넉달만에 14배로 부풀린 것

    하지만 외촉법 통과로 인해 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은 불투명하다.

    법안 통과 전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성명을 통해 졸속 처리를 우려하며 “합작회사의 당사자인 SK종합화학이 상임위 공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울산 파라자일렌 합작공장의 설립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직접고용이 54명, 간접고용 511명에 불과”하다며 특히 “정부가 주장하는 3곳의 합작공장을 만든다 해도 실제 일자리는 직간접 고용을 다 합쳐 1만4천개가 아니라 1,500개도 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11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경제 부처 질의에서도 홍의락 민주당 의원이 “최근 정홍원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에 포함된 외촉법 개정시 발생되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의도적으로 부풀려졌다”며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가 SK, GS 등 관련업계의 보고와 잘못된 취업유발계수를 적용해 많게는 6배까지 일자리 수를 뻥튀기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산업부는 지난 6월 산업위 법안소위 보고 당시 외촉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직접고용 100명, 간접고용 1000명이라고 밝혔는데, 넉달만에 직접고용 1000명, 간접고용 1만4천명으로 늘렸다.

    정무위에서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 산자위에서는 외촉법 통과

    이같은 외촉법 개정안에는 또다른 꼼수도 있다. 기존의 지주회사가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100%이상의 지분을 보유토록 하는 규정은 공정거래법으로 국회 소관 상임위는 정무위원이다.

    그런데 외촉법은 국회 정무위원회 대신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다뤄졌다.

    특히 정무위는 지난 12월 23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새로운 순환출자 금지를 핵심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 개정안은 31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같은 소식에 참여연대는 당시 “순환출자 기업에 대한 공시 의무 부과는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으로는 한참 부족하지만, 기존 순환출자 역시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지주회사제도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었다.

    그러나 불과 하루만에 외촉법 통과 소식에 참여연대는 2일 논평을 통해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 며칠 만에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지주회사제도 규제완화가 공정거래법이 아닌 외촉법을 통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제도 규제 강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타 다른 상임위에서는 본래의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며 다른 법률을 통해 이를 완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여야 정치권은 더 이상 경제민주화를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말고, 조속히 자회사 지분보유 비율 강화를 포함한 지주회사제도 개혁안을 처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3일 <연합>에 따르면 외촉법에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은 127명 가운데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장병완 정책위의장, 변재일 민주정책연구원, 김관영 수석대변인 등 지도부와 김성곤, 김영환, 백군기, 부좌현, 이낙연, 이원욱, 이윤석, 이찬열, 주승용, 추미애, 황주원 의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승조 최고위원과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반대표를 던졌고, 조경자, 박혜자 최고위원,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 정호준 원내대변인은 기권했으며, 신경민, 우원식 최고위원과 박기춘 사무총장은 불참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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