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평화주의' 없는 나라
        2014년 01월 02일 01: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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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세계”의 축소판입니다. 그 세계에 있는 것이라면, 보통 대한민국에도 있습니다. 비록 약간 축소된 모습으로라도, 일단 있긴 있습니다.

    예컨대 영향력의 차원에서야 남유럽이나 남미와는 비교하기 어렵긴 하지만, 대한민국에도 전투력이 강하고 정치적 개입을 하려면 할 수도 있는 노조들이 있는 것입니다.

    역시 규모상 유럽과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사회주의/사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들도 있는 것이고, 작지만 목소리를 꽤나 잘 낼 줄 아는 트로츠키주의자그룹마저도 있습니다. 희랍이나 러시아 등 준부변부의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게 “계급”보다 “반외세”를 우선시하는 “민족좌파”도 있고요.

    이런 “민족좌파”를 “순수한 국산”(?)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실은 이건 “서방 콤플렉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세계의 광범위한 주변부/준주변부의 거의 필연적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연방공산당의 강령 (관련 링크)을 보시면, 거의 당장 “자주파” 냄새를 맡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쏘련식) 사회주의의 (수정된 모습으로의) 복구를 “구국”, “나토세력에 의한 잠식, 위협으로부터의 방어”, “러시아 민족이 쏘련 망국으로 인해 겪게 된 분단적 상황” (독립된 공화국마다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거주하는데, 이를 두고 공산당이 “민족 분단”을 이야기합니다)의 해결 차원에서 갈망하는 것이지, 단순히 “계급투쟁” 차원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을 위시한 러시아의 대다수 공산주의적 조직들이 북조선에 매우 친근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자주성 우선시”라는 사상적 유사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좌우간, “한국적 현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보편적 현상임을 쉽게 알 수 있죠.

    그런데도 이런 복잡, 다양한 대한민국에 없는 몇가지들, 그리고 그 부재의 이유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겐 지금 정치, 사회, 문화적 세력으로서의 아나키즘은 거의 없습니다. 박홍규 선생님 등 몇 분의 걸출한 “아카데미형 아나키스트”들이 계시지만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애당초에 자본보다 국가가 더 강한 힘을 가졌던, 소위 “시민사회”도 늘 국가권력을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들도 “애국” 코드를 벗어나지 않는 철저히 국가주의적 사회에서는 국가에 대한 정면도전이란 한 인간으로서는 너무나 힘든 일일 것입니다.

    또, 정치 테러리즘은 없습니다. 우파로서는 국가가 집행하는 좌파 탄압에 그냥 만족하면서 살아도 되는 셈이고, 좌파가 “직접 행동”에 나서기에는 너무나 철저히 “관리”되는 빅브라더형 사회입니다.

    급진적 페미니즘도 잘 없죠. “女權 신장을 위한 투쟁”까지는 가능하더라도, 레즈비언性을 (대개 남성의 패권을 전제로 하는) 이성 연애의 대안으로 공개적으로 추진하거나 “가부장제와의 급진적인 투쟁”을 주장하기에는 아무래도 “벽”이 많은 사회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부재”들보다 저로서는 가장 위험천만한 부재는 바로 정치, 사회적 의미에서의 평화세력의 부재입니다.

    왜냐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의 위험은, 미국이 중동에서의 신식민지적 전쟁을 대체로 마무리 준비하고 그 대신에 중국 포위 작전 (“아세아로의 회귀”)으로 이동한 몇년 전부터는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죠. 단, 우리가 이걸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평화세력”은 없어도 개개인으로서의 평화주의자 분들은 당연히 계십니다. 이미 10여년간 징병제와의 지난한 싸움을 벌여온 “전쟁없는 세상”의 고마운 분들이 계시고, 또 다른 크고 작은 반전평화 단체들이 각종 난관을 헤쳐가면서 맹활약을 합니다.

    그러나 보수정당은 그렇다 치고, 우리 진보정당들의 강령을 보더라도 “평화로의 길”은 전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고, “평화투쟁”의 문제에 대한 토론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유엔 앞

    1962년 쿠바 위기 당시 유엔 본부 앞에서 평화시위를 벌이고 있는 여성운동의 모습

    예컨대 제 소속정당이기도 한 노동당의 강령 (관련 링크)을 보시면, 올바르게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및 미국 등 열강 중심의 국제질서 극복 이야기 등이 대략적으로 제시돼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화는 아쉽게도 없습니다.

    “평화체제”로의 첩경은 군축인데, 우리가 어떻게 해서 남북한이 같이 동시에 10-20만 명의 규모로부터 시작하여 군력을 감축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영구적 평화체제라면 “전쟁”을 전제로 하는 한미동맹 대신에 영세중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통일된 한반도가 어떻게 해서 영세중립으로 갈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은 불충분하고, 아직도 합의가 제대로 굳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적으로 중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진보정당들은 많이 나은 편도 아닙니다. 지금 “문제”가 된 통진당 같으면 “남북한 공동 군축”과 “선제적 군비 동결”을 그나마 언급하기라도 하니까 다행이고, 또 “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명기한 점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투명한 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균형적 평화외교”는 언급돼도, “영세중립”에 대한 언급조차 없고, 또 “해외파병 금지”은 언급돼도, “평화유지군으로서의 파병”이 가능하다는 말은 돌연히 눈에 띕니다. “평화유지군”이란 제국주의적 침탈의 명분으로 통상 악용돼왔단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요? 또 “3군 균형 발전” 등 “안보 공약”이 있는 것으로 보니 “평화주의”와 “국민주의” 사이에 어렵게 줄타기하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은 지금까지의 우리 진보정치의 전체적 한계라고 하겠습니다.

    대중적인 “정치적 평화세력”이라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좌파당 강령을 보면 “나토 해체” (즉, 독일의 나토로부터의 탈퇴 등을 포함해서), 그리고 (소위 “평화유지군” 등을 포함한) 모든 해외 파병의 무조건적 금지, 독일군의 점차적 해체 등이 명기돼 있습니다 관련 링크).

    문제가 아주 많은 “국민” 정당이긴 하지만, 일본공산당의 강령에서는 여전히 “영세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문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관련 링크 ).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에는 미-일-한 침략 동맹의 완전한 해체, 그 어떤 명분으로라도 일체 (!) 해외 파병 금지, 그리고 결국 영세중립을 지킬 정도의 최소한의 군사력만을 남길 남북한 군사력의 점차적인 공동 감축, 그리고 중립화 통일로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정치세력이 왜 없을까 싶습니다.

    “안보”야말로 한국 정치의 최대의 성역이고, 이걸 건드리기만 하면 표 얻기가 힘들어진다는 정치인들의 계산이야 잘 알겠지만, 그래도 동북아에 전운이 심각하게 감도는 상황에서는 “평화”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야말로 가장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간을 – 미 제국의 지휘하에서 – 짓밟은 전범 국가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급진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우리 종범적 침략 행위의 피해자들에게 사과라도 드릴 수 있다는 것이죠.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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