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의 역사해석에서 버전업 안돼
    [NL 30년-③] 영향력은 커져도 담론과 행동양식 21세기와 엇나가
        2012년 06월 18일 06: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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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강한 현재적, 실천적 관점을 갖는다. NL 운동진영이 80~90년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중반 급진적 역사 해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족주의적 색채는 4.19 이후 학생운동 진영의 보편적인 흐름이었다. 4.19 직후의 통일운동이나 한일협정 반대 투쟁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70년대에도 탈춤이나 민요 등에 관심을 통해 민족적 지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80년대 이전의 민족적 지향은 다소 추상적인 반외세나 당위적인 조국통일이라는 수준에 묶여 있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80년대 중반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사진=한길사)

    80년대 중반 새로운 역사인식을 전파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약칭 해전사)이었다. 해전사의 핵심은 전두환 정권은 제3세계에 산재한 일반적인 군부독재가 아니라 친일파 후손이며 미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육성된 정치집단이라는 점이었다.

    민주화투쟁과 민족해방운동은 차원이 다른 운동이다. 민주화 투쟁은 정치 권력의 향배를 둘러 싼 사회적 갈등의 성격을 띠지만, 민족해방운동은 민족이라는 운명 공동체와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속성을 갖는다. 해전사의 시각은 광주항쟁 이후 조성된 대학가의 급진적인 분위기와 잘 맞았고 학생운동의 각오 정도와 헌신성을 비약적으로 제고한 기폭제였다.

    역사 해석은 특정 집단의 실천적 요구에 의해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당시 학생운동이 반군부 투쟁을 독립운동 수준으로 격상시킨 것은 학생운동의 성과이다. 이를 통해 학생운동은 전투성을 제고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이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친일-미국의 개입-분단-군부독재’라는 도식이 성립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독립운동-미완의 통일-자주와 통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경로가 가능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이 경로의 등장인물은 주로 김구나 조봉암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학생운동은 금기에 가까운 영역으로 문제를 확대된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과 당시 북한의 지도부로까지 독립운동의 계보를 확대하고 이를 ‘항일-친일’이라는 도식으로 정식화했다.

    여기서부터 무수한 신화와 전설이 등장한다. 1930년대 만주의 경험들이 소개되고 비전향 장기수의 전설적인 감옥 생활이 회자되었다. 매해 연말 또는 연초 지리산에는 수십년 전의 정취를 회고하는 운동가들로 북적였다.

    이것 또한 역사적 진실과 해석의 지평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실천적 현실’로까지 확대하여 ‘항일-친일’이라는 실천적 함의 속에 가두어 버린 점이다.

    본 연재의 앞선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80년대 한국은 구태의연한 전근대적인 잔재와 현대적인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초현대적인 조류가 상황을 주도했다.

    반면 NL의 역사해석은 현재적 관점에서 또다른 역사를 발굴하고 개척하기보다는 80년대 중반의 유산에 묶여 버렸다. 덕분에 인터넷과 정보통신문명이 보급되는 초현대적인 상황이 밀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농촌과 농민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 1900년대 초반의 역사를 하나의 지표로 삼게 된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간극은 확대되었다. 여전히 누가 친일파였고 누가 항일독립운동을 했는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문제설정의 유효성은 약화되었다. 대신 민생문제를 둘러싼 의제들이 의미 있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남북관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항일-친일’이라는 프리즘 대신 핵무기, 3대 세습에 대한 문제가 보다 의미 있는 쟁점으로 등장했다.

    이로부터 NL은 자신을 소개하고 설명할 핵심적인 컨텐츠를 잃어 버렸다. 막연히 남아 있던 역사적 잔재는 남아 있지만 그것은 레토릭 또는 자신들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동질성을 확인하는 문화적 지표로만 남았다.

    역사는 자신의 시원을 설명하고 자신의 현 위치를 설파하는 실천적이고 현재적인 문제이다. 만약 어떤 정치집단이 자신만의 역사적 스토리를 갖지 못한다면 그 집단은 뿌리 없는 부평초에 지나지 않는다.

    NL의 비극은 80년대 중반 반전두환 투쟁의 과정에서 획득한 역사 해석을 너무 오랫동안 버전업하지 않은 점이다. 이로 인해 NL의 정치적 영향력은 커졌어도 담론과 행동양식은 21세기와 어울리지 않은 기형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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