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 공공성 발목잡는 한미FTA
        2013년 12월 25일 1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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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24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철도파업과 관련한 관계장관회의에서 민영화 금지 자체를 법제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국가 외의 투자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한미FTA에 위배된다”며 거듭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한미FTA협정, 2005년 6월 30일 이전 철도공사 독점권 인정
    수서발 KTX, 2005년 6월 30일 이전 건설 노선과 섞여있어 ‘문제’

    한미FTA 부속서의 철도운송 서비스 유보 내용을 살펴보면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한 노선’에 대해서는 한국철도공사의 독점권을 인정한다. 그 이후의 건설된 노선에 대해서는 “경제적 수요 심사에 따라 건설교통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철도노선의 철도 운송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문제는 수서발 KTX는 2005년 6월 30일 이후에 완공되기는 했지만, 기존에 건설한 노선이 섞여 있기 때문에 철도공사가 운영독점권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수서-부산 구간의 경우 수서~평택, 동대구~부산은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신규 구간이지만, 평택~동대구 구간은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됐다.

    수서-목포 구간의 경우에도 수서~평택, 오송~목포 구간은 2005년 이후에 건설된 구간이며, 평택~오송 구간은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됐다.

    즉, 출발지가 서울이냐, 수서냐의 차이만 있는 것이지 수서발 KTX가 별도의 회사로 설립한다하더라도 경부선, 호남선 등의 경우 이미 기존에 건설한 노선을 이용하는 비중이 더 많다.

    이 때문에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소한 기존 건설 노선에 대해서는 철도공사만이 운영공급할 수 있다는 제도적 장치를 구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관련기사 링크)

    만약 수서발 KTX가 이용하는 모든 노선을 ‘신규 노선’으로 해석할 경우 ‘자유화 후퇴방지 조항’에 따라 2005년 6월 30일 이전 노선들 역시 민간 기업의 참여를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며, 미국 기업의 진출도 허용해야 한다.

    철도파업 지지 집회 자료사진

    철도파업 지지 집회 자료사진(사진=언론노조)

    철도민영화 금지법은 한미FTA 위반, 헌법보다 FTA가 상위규정?

    이런 와중에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철도사업 면허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법인의 소유권을 공공기관만이 갖도록 하는 골자의 <철도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내외 민간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정부는 이것이 한미FTA협정 위반이라며 수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변재일 의원실 이동우 비서관(민변 변호사)은 “한미FTA 철도운송사업과 관련해 ‘경제적 수요심사(ENT)’에 따른 제한을 허용하고 있는데, 제한 방식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즉 ENT에 따른 제한은 물론 그 방식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기업의 ISD 제소 가능성을 이유로 법 개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만약 미국 기업이 이같은 법 규정이 외국 기업의 진입을 제한하는 차별적 규정이라고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홍기빈 박사는 “ISD 제소는 이미 미국기업이 투자를 한 상태에서 투자를 제한하는 경우 등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제소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한미FTA협정 위반 자체에 대해 미국기업이 미국에 제기해 WTO에 제소할 가능성 자체는 있다”는 지적이다. WTO는 세계무역 분쟁조정권을 갖고 각종 규제와 구속력을 갖고 있어, <철도사업법> 개정안 자체가 WTO에 제소될 가능성 낮지만,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민변의 김종보 변호사도 WTO 제소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의견이다. 현재 철도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의 국적이 프랑스이며, 미국은 철도산업이 쇠퇴한 상태인데다 당분간 수서발 KTX 주식이 양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특히 김 변호사는 “철도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철도민영화를 금지하는 입법을 반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며 “정부가 한미FTA를 핑계로 철도공공성 강화를 외면하는 것은 치졸한 꼼수”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한미FTA는 단순히 국제통상 및 관세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의 경제질서를 미국 자본에 종속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으며, 한국의 입법권을 제약하는 또 하나의 전례를 남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우 비서관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는 국토부가 해당 법안에 대해 ‘ENT에 대한 재량이 국토부 장관에게 있는 것으로 한미FTA에 명시되어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국토부의 그러한 발언은 국회의 입법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40조에 반하는 것이자, 한미FTA가 헌법보다 상위 규정이라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미FTA 폐기 이외에는 국내외 민간기업 진입 원천 봉쇄 못해

    정부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 정관에 공적자금의 지분을 민간자본에 매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어 민영화를 차단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관 자체가 위법적 조항이어서 무효화될 수 있다.

    특히 주식회사의 정관은 대주주와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고, 주식회사 수서발 KTX의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 그 주식이 미국자본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2007년 한미FTA 반대 집회 자료사진

    2007년 한미FTA 반대 집회 자료사진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기존/신규 노선에 대한 한미FTA 유보 내용의 적용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탓에 주식회사 수서발 KTX에 투자한 국내외 민간기업이 기존 노선에 대한 영업권을 주장할 수 있고, 기존노선에 대한 운영권 역시 민간기업으로 귀속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경우 자유화 후퇴 방지 조항에 따라 이를 되돌리기란 대단히 어렵다.

    철도민영화와 한미FTA 사이의 논란 가운데 최선의 방법은 코레일 이사회의 주식회사 수서발 KTX 설립 결정을 취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 뒤로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

    국토부는 <철도사업법> 5조에 따라 철도산업의 철도공사 독점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기본적으로 민간 자본을 배제한 채 철도공사의 독점 운영권을 보장하고 있으니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도 민간 진입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국토부가 이미 ‘열린 해석’을 둔 덕에 이같은 법률 충돌을 근거로 미국 기업이 면허권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수서발 KTX 설립 취소가 불가능하다면 기존/신규 노선의 법적 정리를 명확하게 해 향후 국내 기업을 포함한 미국 기업이 기존 노선의 영업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알짜배기 기존 노선이라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한미FTA협정이 존재하는 한 철도산업 뿐만 아니라 다른 공공산업 또한 지금과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될 우려가 높다. 한미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재협상을 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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