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능한 경찰이 필요한 사회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관리되는 살인범죄,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2013년 12월 24일 10: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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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어떤 범죄 드라마에서 본 것인데, 부패하고 무능한 고참 형사가 이제 갓 입경한 신참 형사에게 한 질문으로, 웃기고 바보 같은, 엉뚱한 질문이 하나 있다.

    “유능한 경찰과 무능한 경찰 중에서 사회(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경찰은 과연 누구일까?”

    답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무능한 경찰’이다. 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질문은 현대 사회에서의 경찰 역할에 대한 역설에서 비롯되는 바보 같지만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선 유능한 경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TV시리즈의 캐릭터이지만 유능한 경찰의 대명사인, CSI 호라시오 반장이나 길 그리썸 반장처럼 어떤 사회(도시)에 다양한 범죄의 범인을 효과적으로 잘 잡는 유능한 경찰이 많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전체적으로 해당 사회(도시)의 범죄율은 상당한 수준으로, 급격히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상당한 수준으로 범죄율이 낮아지게 되면, 문제는, 조금 극단적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런 유능한 경찰을 사회(도시)에서 고용할 필요(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근대국가(관료) 시스템이 심화되어 갈수록, 현대 국가 혹은 도시에는 항상적인 그리고 다양한 예산 적자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그렇게 될 경우 가장 필요 없는 부분인 경찰을 줄이려고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상당히 적은 수의 경찰만이 남을 것인데, 이렇게 남는 경찰의 경우에도 유능한 경찰보다는 무능한 경찰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는 뭐 증명도 필요 없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즉 유능한 경찰의 경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면, 부패하고 정치적인 경우가 거의 드물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내부투쟁(돈을 상납 받거나 상납하는 방법, 파벌을 만들어서 타 파벌을 찍어내는 방법, 마타도어를 동원해서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법 등을 의미함)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우선적으로 유능한 경찰이 정리되거나 좌천되는 것은 거의 필연이고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목도되는 현상일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해당 사회(도시)의 경찰은 무능한 경찰들이 다수가 되어 사회(도시)의 안전에는 심각한 문제(중층과 하층 계급이 거주하는 공간, 노동 공간, 여가 공간에서의 치안 부재 등)가 발생하게 되고, 더 나아가 경우에 따라서는 예측하지 못한 문제들 특히 사회(도시) 전체의 체제와 관련된 문제들(이른바 공공안전의 문제들, 예를 들어 이주민들에 의한 소요 폭동사태, 대량살인범이나 연쇄살인범 등에 의한 사건들 등)이 발생할 경우 사회는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결국 사회(도시)의 지배층은 주어진 경찰력으로 소수 상층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익만을 보호하면서 중층 이하에게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게 하는 방식으로 사회 안전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이 직선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약간 돌아가는 방법을 쓰는 경우도 존재한다. 즉 뉴욕시와 같은 경우 줄리아니 시장과 같이 정치적인 이슈파이팅과 제스처로서 사회 안전 패러다임을 도입하여, 급격하게 경찰력을 증강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쇼로서, 그 경찰력의 대부분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이용될 뿐 실제 이른바 민생치안에 이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증강된 경찰력의 상층 편중현상과 외형 유지정책에 의해,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다수가 거주하고 노동하는 공간에는 상대적으로 더 빈번하고 심각한 범죄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는 외형적으로는 안전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심각한 안전문제에 빠질 것이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조금 과도한 일반화이지만 유능한 경찰이 많은 사회(도시)는 결과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근대사회에서의 안전과 그 수단과 관련된 딜레마인 것이다.

    그러나 반면 유능한 경찰보다 범인을 잘 잡지 못하는 경찰이 많은 경우 그 자체로는 무능하다는 비난은 지속적으로 받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높은 범죄율을 유지할 것이므로 결국 무능하더라도 현재의 수준으로 계속 고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때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유능한 경찰로 교체하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되면 경우의 수가 ‘유능한 경찰’이라는 앞의 경우로 넘어가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예산 적자의 문제가 발생을 해도 결국 높은 범죄율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경찰력을 유지하려는 추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경찰력은 이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줄이거나 낮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숫자만 많고 무능한 경찰들이기 때문에 실제 범죄를 해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고 적절한 대처가 부족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배층에게는 현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고 중층과 하층의 경우 당장 가시적인 경찰력의 존재 자체만으로 위안을 삼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유능한 경찰이 아닌 무능한 경찰인 것이다.

    논리에 상당한 비약이 있는 이 질문에,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이유는 결국 사회 안전, 범죄율, 범죄 관리, 경찰력, 지배, 정치 등과 관련된 복잡한 함수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서술한 다음의 몇 가지 주장들은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 아무리 경찰력을 늘려도 범죄율을 하락시킬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는 범죄 자체를 제거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풍선효과의 개연성이 높다.

    – 사회 안전이라는 것에도 사회적인 층위가 존재한다. 즉 중층과 하층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존재해도 그것은 상층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적절한 수준의 경찰력이란 매우 모순적인 개념이다.

    – 사회 안전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권리가 아닌 특정 정치집단의 정치논리로 작용할 수 있고 특히 보수적인 집단의 권력을 창출, 유지, 강화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 특정한 범죄 자체가 사회적으로 조작되어 공포를 유발하고 이러한 공포는 결국 특정 집단의 사회에 대한 지배에 이용될 수 있다.

    – 특정한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범죄 자체가 관리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즉 특정한 범죄의 경우,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일 수 있다.

    범죄는 범죄이고 살인은 살인일 뿐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범죄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일거에 뒤집어엎어버린 사건이 바로, 영국의 ‘잭 더 리퍼’ 사건이다.

    잭 더 리퍼

    잭 더 리퍼 사건을 다룬 책 표지

    ‘잭 더 리퍼’ 사건은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최초의 ‘근대적인 유형의 연쇄살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19세기 말 빅토리아 후기의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매스미디어를 기반으로 전체 영국사회에 “보편적인 공포와 무차별(무계급적인) 범죄로서의 살인”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대중적인 살인범죄라는 점이다.

    물론 호사가들이나 범죄스토리텔러들은, 지문과 혈액분석 등과 같은 근대적인 법의학적 수사방식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해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자행된 예술적인 살인 그리고 누군지 알 수 없는 괴담 수준의 범죄자 인상 등과 같은 부풀려지고 과장된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해 범죄가 ‘사회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현실화시켰다는 점이다.

    단순히 ‘창녀’들을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하고 다닌 사건들은 이전에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통해, 런던이라는 단순한 행정도시가, 단순히 농촌으로부터 구축되어 온 노동자들로 인해 도시외곽으로 확대된 주거공간이라는 점을 넘어서서, 공포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근대적인 치안력을 당연하게 용인하게 되는 근대적인 공간으로서의 런던이라는 공간을 창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진행되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반복 재현되었고 이러한 재현을 통해 런던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되어 갔으며, 이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옛날 귀족이든, 부르주아이든, 도시의 노동자이든, ‘창녀’이든 무차별하게 하나의 사건에 녹아들게 되었고 이러한 참여 과정의 정점에 국가의 치안력인 경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주지하듯이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명탐정 셜록 홈즈’의 신화라든가 ‘추리 스릴러’ 등에 대한 신화가 구축되었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뇌리 속에 강하게 박히는 근대적인 서사의 중요한 일부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잭 더 리퍼 사건 자체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사건도 아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그렇게 복잡한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별거 아닌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이 사건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용되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좀 과도하게 얘기한다면, 프랑스의 경우 ‘드레퓌스 사건’이 그 역할을 했다면 영국의 경우 바로 이 ‘잭 더 리퍼’ 사건이 그보다는 상당히 약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100년이 지나도록 다양한 괴담이나 음모론이 생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관리되는 범죄”, “안 잡는 범죄자” (다음 회에 계속)

    필자소개
    배상훈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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