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 시민'은 없다
    [2008년 촛불과 안녕 대자보 ④] '안녕', 촛불 뛰어넘기를
        2013년 12월 24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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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촛불과 안녕 대자보-1
    2008년 촛불과 안녕 대자보-2
    2008년 촛불과 안녕 대자보-3

    22일 경찰이 진보세력의 최대 조직이자 많은 이들에게는 ‘낡은 운동권’의 대표로 여겨지던 민주노총을 강제 침탈했다. 경찰의 무리수로 끝난 22일의 사태에 ‘안녕’ 대자보를 썼던 대학생들이 모여 경찰의 공권력 투입에 항의했다.

    제대로 된 깃발이나 피켓도 없이 박스 하나 쭉 찢어서 만든 손 피켓을 만들어 달려온 학생들이 민주노총의 강제침탈에 맞서 처음으로 경찰과 대적해본 것이다. 이들은 ‘순수하지 못한’ 세력인 것일까?

    처음 ‘안녕’ 대자보가 전국민의 마음을 뒤흔들 때, 이들의 움직임을 낡은 운동권이 점유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 언론매체에서는 이들이 국민적 호응을 받는 이유가 기존의 운동권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작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는데도 운동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그래서 주현우씨가 처음 시작했던 ‘안녕’ 대자보를 ‘순수한 시민’의 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주장, 운동권이 섣부르게 개입하면 흐름이 깨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철도와 안녕

    민주노총 앞에 철도노조 위원장에게 보내는 대자보

    강조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순수 시민’이라는 프레임이 잘못됐다는 지적과, 그럼에도 운동권의 개입도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란다. 기존 운동권이 대중에게 보인 반감 때문에 역효과만 날 것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인데 대부분 이른바 ‘깃발 꽂기’나 ‘조직 확대’ 등을 이유로 접근하는 방식 때문이란다.

    또한 대부분 주현우씨를 ‘순수 시민’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녕’ 대자보의 기획이 참신하다는 이유로 ‘순수 시민’의 개인 행위로 보는 것은 옳지 못하며, 더 나아가 운동의 참신함이라는 것은 결국 운동권의 구체적 활동 속에서 발현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운동권 개입은 위험, 사실 운동권이 개입할 능력조차 없어

    운동권의 주변부였던 정다훈씨는 운동권이 ‘안녕’ 흐름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훈씨는 “운동권이 나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영향력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운동권=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이라며 “운동권이 ‘안녕’ 흐름을 점유하기 시작한다면 청와대, 여당, 보수 언론 등의 총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택준씨는 ‘순수 시민’이라는 프레임도 문제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운동권이 개입할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택준씨는 “순수 시민이나 순수 청년이라는 프레임은 적당이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안녕’ 대자보를 기회삼아 운동권이 무엇인가 점유하려 든다면 우스운 이이야기인데다 그럴 능력도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주현우씨 대자보는 많은 청년층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가능성과 불씨를 심어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이들을 즉각적으로 정치적으로 집단화하려 하려 한다면 ‘안녕’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광범위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묶어낼 역량을 갖춘 무엇인가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재씨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결국 어떠한 정치적 소통의 문제”라며 “억울한 일이지만 이미 낙인이 찍힌 운동 단체들이 ‘안녕’ 대자보 흐름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권에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우리는 이러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된다”며 “섣부르게 ‘안녕’ 흐름이 우리가 하려던 것이다, 평소 우리가 했던 이야기를 한 것이라는 식으로 흐름을 가져오려고 한다면 비웃음만 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재씨는 “‘안녕’의 흐름은 ‘순수’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반대하지만, 기존 운동권의 섣부른 접근도 반대한다”며 “기존 조직이 보다 세련되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영씨는 민재씨 의견에 좀 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는 “정치세력으로써 사회와 대상에 말을 거는 방법은 개인과는 다르다”며 “개개인이 사회적 감성을 담는 방식의 말을 거는 건 상관없겠지만, 기존의 조직들이 ‘안녕’에 편승하는 순간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주영씨는 “물론 발을 빼고 평론만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자보를 통해 드러난 사람들의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잘 뜯어보고 그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정치적 언어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대자보를 붙였던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그들을 서포트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안녕’대자보, 촛불집회 모두 정치적인 것, ‘순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라퓨시안씨는 ‘순수’한 것과 ‘정치적’인 것이라는 의미 자체가 보수층의 레토릭일 뿐 실재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라퓨시안씨는 “굳이 따지자면 ‘대자보 운동에 순수성이 없다’는 언설만큼 순수하지 못한 것도 없다”고 꼬집으며 “마치 이 모든 게 특정한 ‘이해 세력’에 의한, 사적 이익추구를 위한 선동 행위라는 식으로 시민의 자발적인 운동을 폄하해버리면, 시민들 입장에서는 ‘내가 누구한테 선동을 당해서 이렇게 행동한다는 거야? 아니거든?’ 하는 식으로 반박을 하게 되고, 동시에 (따옴표가 붙은) ‘정치적’인 ‘운동’과는 필사적으로 선을 그으려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실제 운동에 해악만 끼치는 일부 운동조직에 대한 강렬한 반감이 존재하고, 운동권이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대자보를 쓴 사람은 순수한 학생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2008년 촛불시위 때 ‘조직 깃발은 내려라!’고 했던 구호도 결국 같은 지점에서 발생했다”며 이를 두고 “순수 강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자보며 촛불집회며 전부 ‘정치적인 것’인데, 이걸 정치가 아니다 라고 반박해버리면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된다”며 “반정치의 정치, 반운동의 운동이라는 완전히 모순되고 어색한 결과만 나오고 만다”며 “일베나 여타 보수단체가 붙이는 대자보가 영 어색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지적했다.

    라퓨시안씨는 “대자보를 처음 쓴 사람이 당원이면 어떻고, 진보정당원들이 촛불집회에 좀 많이 참가하는 게 뭐 어떠냐”며 “그것이 대자보에 공감하고 동참했던 사람들이 처음에 느꼈던 감정들이 다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이냐. 순수하지 않으면 실존하는 사회문제가 제 발로 사라지기라도 하냐”고 꼬집었다.

    다만 그는 “운동권을 표방하는 단체가 내부 문제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운동권이 개입하면 안된다’는 식의 레토릭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이라며 “명확한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동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 운동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어떻게 설득할지, 어떻게 다른 단위와 그 힘을 합칠지를 누구보다 먼저, 많이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소희씨도 라퓨시안씨와 비슷한 의견이다. 소희씨는 “운동권이 개입하면 안된다는 주장이 ‘다양한 대중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면 100% 동의하지만, 단순히 운동권과 정치에 대한 혐오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그저 궤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이해하느냐의 문제”라며 “종종 ‘안녕’과 관련해 ‘대학은 정치가 아닌 순수학문에 투신해야 하는 지성의 전당’이라는 뉘앙스의 글을 보곤 하는데, 정치는 ‘n’개”라고 강조했다.

    소희씨는 “정치는 좌나 우, 이거 아니면 저거, 이런 게 아니지 않냐”며 “안녕하지 못한 우리가 모여서 자기 정치를 하자는 건데 거기서 정치혐오를 드러내는 건 오히려 자폭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안녕’ 대자보 주현우씨,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운동권’
    “부드럽게 말 걸었지만, 분명 ‘운동’하자고 제안한 것, 촛불집회와 달라”

    스스로도 진보정당 정치인인 이기중씨는 이에 대해 “이미 ‘안녕’ 대자보를 집단화하려 한다면 그 자체로 ‘순수성’과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주현우씨는 노동당원이고 본인이나 노동당에서도 그러한 이력을 감춘 적이 없으니 주현우씨를 정치나 운동과 관련 없는 ‘순수 시민’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중씨는 “주현우씨는 자보에서 철도파업, 밀양송전탑,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등을 언급했다”며 “부드럽게 대화를 걸긴 했지만 분명히 자기 입장이 있었고, 함께 ‘운동’하자고 권유한 것”이라며 “오로지 추모를 위해 촛불을 들자고 했다가 범대위 집회를 보고 실망했던 2002년 네티즌 ‘앙마’와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녕 대자보1

    안녕 대자보의 출발점이었던 고대 주현우씨 대자보

    특히 그는 “당장 내 삶의 문제는 아니더라도 안녕하지 못하다고 한 것이기 때문에 2008년 촛불과도 다르다”며 “기존 운동권들의 말투와는 달랐지만 운동을 조직한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흐름에 운동권이 개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김예슬씨의 선언이 있을 때 기존 운동권 조직 소속 학생이 비슷한 제목의 개인 대자보를 쓰고는 곧바로 총학생회에 출마한 적이 있다”며 “호응은 커녕 비웃음만 샀다”고 지적했다.

    기중씨는 “2008년 촛불집회를 대부분의 운동권은 그저 따라다녔을 뿐이지만, 거기서 대중을 가르치려거나 선도하려 했던 일부 조직은 시민들의 반감만 샀다”며 “이번도 마찬가지이다. ‘쉬운 말투의 손글씨 대자보’라는 형식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응답하고 있지만, 기존 운동조직의 내용을 그 형식에 담았다고 해서 같은 호응은 얻기 힘들 것이고 오히려 이 운동을 조직 확대의 기회로 삼으려한다면 반감만 얻고 운동 자체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기중씨는 “주현우씨 스스로 더이상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나한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특정한 사람을 띄우는 방식은 ‘안녕들하십니까’의 목적과 어긋난다’고 말한 만큼, 다른 운동권들이 동참하더라도 출마 예정자 등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띄우려는 목적은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기중씨는 이러한 입장의 이유에 대해 “순수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효과적이기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운동권이기도 하지만 운동권에 비판적인 박창수씨도 ‘순수 시민’이나 ‘순수 청년’에 대한 정의에 대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주현우씨를 개인적으로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 분은 멋진 운동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창수씨는 주현우씨의 ‘안녕’ 대자보에 대해 “다른 이에게 호소해서 나와 같은 깃발에 서서 같은 목소리를 내게 하는 거 보면 멋진 운동권이 분명하다”며 다만 “다른 조직에서 깃발 꼽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걸 특기로 하는 일부 정파들이 그러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참신한 프로젝트, 운동권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

    승덕씨는 인터뷰를 하기 전 자신의 SNS에 ‘안녕’ 흐름을 상찬하던 ‘순수 시민’을 자처하는 지인들을 향해 “안녕들하십니까의 참신함만 가지고 그저 기존 운동권을 비난할 사례로 쓰인다면 그런 비난이야말로 너무도 전형적이라서 낡은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순수 시민’이라는 것이 기존 운동권과 비교해 ‘참신함’을 갖춘 것이라고 자처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전형이자, 운동권의 ‘참신함’ 마저 ‘순수 시민’의 개인적 행위라고 치부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의견이다.

    승덕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의견을 냈다. 승덕씨는 “촛불집회 당시에 예전에 간지좌파니 뭐니 하던 말들이 많았다. 운동권의 옷차림이 너무 전형적이어서 ‘구시대적’이고,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며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에 동의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촛불집회 직전의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이겼고,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를 이겼던 것은 다름 아닌 공정택 후보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패션좌파니, 발랄, 명랑이니 하는 말이야말로 이제 전형이 되서 너덜너덜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전혀 검증할 수 없는 주장들”이라며 “심지어 연애도 간지와 새로움만으로 하지 않는데 운동이 그런 강박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제기했다.

    승덕씨는 “‘안녕’ 대자보를 쓴 필자 역시 노동당원이라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녕’ 대자보가 운동권을 비난하는 근거가 된 것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승덕씨는 <레디앙>에 ‘청소노동자 구술생애사’를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이유에 대해 “일차적으로는 인터뷰를 통해 학생과 청소노동자 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보려는 시도였다. 삶의 궤적을 공유하는 관계가 가능할지, 가능성을 모색해보려던 시도였다”며 “참여한 학생들도 학내 청소노동자 운동에 관심 있지만 딱히 참여할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던 상황에서 구술생애사 프로젝트가 마련되니 적극적으로 참여해줬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나름 참신한 기획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서부비정규노동센터의 이류한승 활동가가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승덕씨는 “오랫동안 비정규노동운동에 몸을 담고 있었던 이류한승 활동가는 대학에서 청소경비노조와 학생들 사이의 연대를 공고화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구술생애사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제안한 것”이라며 “저는 이것이 운동 내부에서 운동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한계를 깨고자 애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고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승덕씨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서 면벽 중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참신하겠지만, 보통의 참신함은 이렇게 구체적인 활동 중에 겪는 어려움과 한계, 모순 등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경우에 더 자주 발생한다”며 또한 “전혀 참신하지 않은 형식이지만 적절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이번 ‘안녕’ 대자보 역시 바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자보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대자보

    기성세대의 ‘청년 개새끼론’, 청년들을 정치와 떼놓아

    선거 때마다 좌우를 막론한 기성세대들은 청년세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개새끼론’을 들이민다. 보수 성향의 기성세대는 보수당의 청년 지지율이 낮아서 그렇고, 진보성향의 기성세대는 민주-진보 후보가 낙선할 때마다 청년세대의 투표율이 낮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깐 운동권이고 아니고를 떠나 청년세대는 늘 ‘개새끼’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안녕’ 대자보 현상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드디어’라는 표현을 남발하며 청년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청년세대에는 적건 크건 늘 운동권은 존재했고, ‘흥행’하지 못했지만 운동권이 아닌 청년들도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청년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부담스러운 혹은 꼰대스러운 시선이 청년세대를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로 단정지었던 건 아닐까? 이러한 기성세대의 청년세대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 때문에 운동이나 정치를 하려했던 청년들은 386 잣대에서는 구시대적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건 아닐까? 몇 십년전 본인이 했었던 운동권의 행태는 ‘구시대적’이고, ‘참신한’ 모습에만 열광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운동권, 특히 청년 세대가 넘어야 할 벽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세대는 ‘참신함’만으로 기성세대에게 소비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래서 물었다. 청년세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던 것이냐고. 대부분 ‘개새끼론’에 대한 격정적인 불만과 더불어 오히려 정치적인 것과 청년들 사이의 ‘거리감’을 조장하는 프레임이라는 비판적 제기가 이어졌다.

    운동권인 창수씨는 이 질문에 대해 “때마다 되풀이 되는 ’20대 개새끼론’이 요즘은 ‘청년 개새끼론’으로 바뀐 것 같다”며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식의 구호를 외치면서도 수틀리면 ‘개새끼’라고 레떼르를 붙이고 있다”고 분개했다.

    창수씨는 “그런데 386선배들이 치열하게 싸우던 시절에도 거리에 나서지 않고 도서관에만 살던 사람들 있지 않냐”며 “오히려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그 당시에 태어났으면 거의 다 거리로 나갔을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마찬가지로 386선배들이, 역사상 최고의 학력으로도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지금 시대의 젊은이로 태어났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창수씨는 “2008년 촛불시위도 촉발은 고등학생의 시위 때문 아니냐. 2002년 촛불시위도 촉발은 의정부 고등학생들의 시위 때문인 것으로 안다. 희망버스도 인터넷을 즐기는 청년세대의 관심 속에서 있었던 것”이라며 “오히려 청년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방식이 바뀌었는데도 그걸 보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니냐고. 또 이렇게 묻고 싶기도 하다. 청년세대의 반발은 기성세대가 전유하고 싶어하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청년의식에 대한 반발심이 아니냐고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소희씨의 의견도 날카롭다. 청년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게 자랐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소희씨는 “기성세대가 “요새 20대 답지 않게~” “요새 대학생답지 않게~” 이런 칭찬 많이하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며 “그러한 칭찬은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낙인’을 전제로 사고해야 나오는 칭찬이지 않냐. 그래서 그건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소희씨는 “정치적인 문제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청년들을 졸지에 비겁자로 만들어버리고 선을 그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실천하는 데에도 이롭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소희씨는 이러한 기성세대가 운동권보다 더 나쁘다는 지적이다. 소희씨는 “온갖 저임금 노동력 착취에 재능기부까지 원하는 것이 386의 모습”이라며 “그런데 이제서야 ‘안녕’ 대자보 등을 통해 청년들이 자기 정치를 하기 시작할 때에 ‘요새 젊은이들 답지 않네~’라면서 뒤에서는 숟가락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희씨는 “청년세대가 목소리를 내고 거리에 나온다는 것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 것인지를 그 구조를 만든 기성세대가 제일 잘 알 것인데도 청년세대에 대해 개새끼와 찬사를 번갈아가며 보내는 것은 기만적인 행위”이라고비난했다.

    택준씨는 이번 질문에 대해 “태생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싶은데, 최근 청년들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침묵하기를 강요받았기에 겉으로만 보면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청년세대는 온라인을 통해 무한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소비하는데도 그들이 정치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단언하는 건 청년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다.

    민재씨는 정치의 무관심 문제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제기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성원에게 정치는 쉽게 보이는 대상은 아니다”라며 특히 “초중고를 거치면서 우리가 언제 정치를 배운 적이 있나. 학생회는 말 그대로 어용이고, 학생들은 학교와 선생님의 의사대로 동원될 뿐이었다”고 꼬집었다.

    특히 민재씨는 “이런 상황에서 너희는 왜 자기 이야기도 못하고 자기 이해관계도 못 내세우고, 정치에 관심이 없냐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고 청년세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건 그저 꼰대질”이라고 지적했다.

    승덕씨는 “일제시대 때도 ‘청년 담론’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청년이 ‘명랑’해야 독립운동도 할 수 있고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그런 자신들의 희망을 청년세대에게 투영했는데 현재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말했다.

    87년

    87년 6월 항쟁의 한 모습

    또한 그는 “80년대 운동을 했었던 4~50대는 본인들 또한 20대, 학생이라는 유예적 시기에 운동했다는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20대에게 운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의 20대는 이 시기에 운동에 투신하기에는 여유감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이 차이를 보지 않고 청년들에게 참신한 운동이나 과감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안녕’ 대자보, 2008년 촛불집회의 한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들의 답변들을 모두 종합자면, 운동권의 이런저런 문제점도 있지만 운동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다만 그 형식과 형태에 대해서는 보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도록 운동권 스스로 자기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안녕’ 대자보가 운동권이 아닌 다른 ‘순수 시민’이라는 개인들의 단순 합이라고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녕’ 대자보가 나타나게 된 계기와 이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 기존의 운동권이 존재했고 이들이 구체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결과라는 것이다.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지도 않고,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견도 공통된 내용이다. 때만 되면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단정짓는 것이야 말로 청년들을 정치와 떼어놓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기성세대가 되었건 일부 청년세대가 되었건 ‘안녕’ 대자보 현상을 운동권이 아닌 다른 ‘정치의식이 있는 청년세대의 참신한 기획’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경계하는 측면도 있다. 더 나아가 모욕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청년들도 정치적일 수 있고, 조직적일 수 있고, 운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안녕’ 대자보는, 앞으로 운동권이 보다 조직적이지만 대중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운동권의 퇴장해야 할 때라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추가 질문을 던졌다. 모두들 ‘안녕’ 대자보를 써내려갔던 이들의 ‘실질적 행동’을 기대하고 있었다.

    창수씨는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 거리든 어디든 나서서 서로 안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재씨도 “이제는 안녕하냐고 묻기만 해서는 안된다”며 “이왕이면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곳곳에서 조직적으로 행동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특히 민재씨는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과 관련해 28일 총파업을 하기로 한 것에 대해 국민 여론이 좋은 편인데, 이런 시위에도 ‘안녕’을 주도한 친구들이 적극 참여해준다면 더 많은 안녕치 못한 친구들도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퓨시안씨는 “‘안녕’ 대자보를 썼던 이들에게 그 이상의 행동을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에너지를 그냥 버려두는 것은 너무 아깝다”며 “실질적인 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에너지를 어떻게 실질적 운동으로 끌고 갈 것인가는 이 흐름을 조직하고 의제를 정리할 기존 정치세력의 역량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주영씨는 “앞으로 각자 대자보를 썼던 이들이 함께 모여 같이 대자보도 붙이고 철도 투쟁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구체적 방향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영씨는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자보 이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 “직장이라면 일터에서 노조를 가입할 수 있고, 대학생이라면 의료민영화나 상수도 민영화와 관련해서 학내 소모임을 만들어 지속시킬 수 있겠고, 학교가 마음대로 대자보를 철거한 것에 대해 공동 대응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기쁜 소식이 들렸다. 개인의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질 것을 염려해 언론인터뷰는 사양하겠다던 주현우씨에게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다행히도 주현우씨는 “안녕 대자보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벌이겠다던 28일은 마침 ‘안녕’들에서 거리 행동을 준비했던 날”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반운동권’ 정서나 ‘순수 시민’이라는 멍에를 안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반목을 발판 삼아 진화하고 있다.

    ‘안녕’ 대자보의 흐름이 2008년 촛불만큼의 반향을 일으킬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2008년의 한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두들 신중하게 접근하는 만큼, 섣부른 ‘꼰대질’도 지양하겠지만 섣부르게 이들을 ‘순수 시민’의 영역에 가둬놓는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래본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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