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수 없는
    운동권의 어떤 모습들
    [촛불시위와 '안녕' 대자보 ③] 사회, 사람과 더 부대껴야
        2013년 12월 20일 05:4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촛불과 안녕 대자보-1 링크

    촛불과 안녕 대자보 2 링크

    운동권과 일종의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이들은 기존의 조직 운동과 달리 자기 정체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운동권은 왠지 획일화되어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될 것 같은 집단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왠지 그들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순간 자기 자신조차 구리구리해질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신을 운동권이거나 그 즈음이라고 생각하는, 그러나 소위 386과는 명확히 구별되지만 또 그럼에도 보통의 청년들과도 다소 차이가 있는 이들에게 운동권의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이들에게’정말 참을 수 없는 운동권의 모습이 무엇이냐’는 질문했다. 운동 내부의 정파 갈등과 다른 단체나 조직에 이른바 ‘깃발‘ 꽂기 행태, 대중을 향한 선민의식과 도덕적 자만심 등 다양한 문제가 ‘격정적’으로 제기됐다.

    싸우라는 대상과 안 싸우고 다른 정파하고만 싸우는 운동권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 대중은 멍청하다고 판단하는 오만함

    창수씨는 “깃발 꽂는 거랑 싸우라는 적(?)과는 안 싸우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정파랑 신나게 싸우는 모습, 정파적 입장에 따라 고민도 없이 생각 바꾸는 것 등등 구구절절 말하면 입만 아프니깐 안 하련다”고 정색했다.

    학내에서 학생회나 총학생회 활동은 하지 않지만 ‘안녕’ 대자보를 보고 교내에 응답 대자보를 썼던 소희씨도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희씨는 “간혹 운동권 내에서 오만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멍청하다고 비난한다. 구조에서 비롯된 질문에 대답할 책임을 개인에게 물리지 말아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면 그런 언동도 부적절하지 않나. 우리는 모르고 무관심해야 안녕하다고 교육 받으며 십수 년을 자란 세대다. 이제야 그게 서서히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는데 일부 운동권은 그런 우리를 보고 멍청하다고 비난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스스로를 운동권이라고 자처했던 기중씨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기중씨는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선민의식이다. 나는 다 알고 있는 이 체제의 문제점을 대중이 모르기 때문에 가르치겠다는 계몽적 태도나 목적이 옳다면 수단이 정당하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의식(합법/비합법 문제를 말하는게 아니다)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옳으므로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대중이 알아줄 것이고 그래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자적 자세, 이런 걸 통 틀어서 선민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그런데 이러한 선민의식은 운동권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라며 “새누리당이 친일세력의 후예라는 것만 알면 그들을 지지할 국민이 없을 거라는 소위 ‘깨시민’들의 의식도 마찬가지이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내가 일베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좌좀(좌파 좀비)으로 살았겠지’라는 사람들도 있다. 일베를 논외로 친더라도 요즘의 ‘깨시민’에 대한 반감은 그래서 운동권에 대한 반감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통진-중앙위

    작년 통합진보당 중앙위 폭력사태 모습(기사 내용과는 직접 상관 없다)

    택준씨 역시 운동권의 문제점에 대해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와 과격, 과도한 언동”이라고 지적하며 “자신들이 모든 걸 알고 있으니 대중은 따라오면 된다는 선지자적 태도와 학벌이 중심이 되는 학연 위주의 문화 등등이 있다”고 말했다.

    민재씨도 의견이 비슷하다. 그는 “운동권에게서 최악의 모습은 ‘도덕으로의 치환'”이라며 “사람들은 다양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설득하고 이야기를 나눠서 함께 정치를 해야 하는데, 이를 ‘도덕’으로 치환해서 여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만 가득 내세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도덕적’으로 몰고 간다”고 꼬집었다.

    민재씨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세상은 명암만 차이가 있을 뿐 회색지대로 가득한 것이고 사람들은 여러 이유에서 참여를 망설이거나 아예 반대도 할 수 있는건데, 그런 사람들을 모두 싸잡아 비난한들 무슨 소용이냐”며 “마치 80년대에 대학생들이 취업한 선배들을 욕하던 광경이 지금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훈씨도 민재씨의 ‘도덕적 치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더 보탰다. 다훈씨는 “자신들의 뜻이 아름답다 하면서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며 “대(뜻이나 단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대(大) 때문에 개인이 소외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훈씨는 “자신들이 하는 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주지도 않고 선배란 이유로 후배를 (집회 등에) 끌고 가고, 더이상 활동하지 않겠다고 하면 학교생활의 불이익을 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협상, 타협, 양보를 모르는 운동권, 정치할 줄 모르니깐 비난 받는 것

    주영씨는 일부 운동권들이 이른바 ‘싸가지’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주영씨는 “자기가 어떤 진보적 단체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혹은 어떤 문제에 대한 캠페인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는 이유로 자기의 모든 행동이 진보적인 무언가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그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인데도, 마치 이 사회의 모든 관습에 대해 삐딱하고 비판적이고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게 진보의 덕목인 것처럼 착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주영씨는 “자신의 행위가 군사문화나 권위주의, 성차별주의로부터 비롯되었는데도 자신이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다는 추억팔이만 하고 바뀌지 않는 사람들도 문제”라며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그 운동의 가치를 자기 생각과 행동의 준거로 삼아야 하는데 그걸 안 한다”고 지적했다.

    주영씨는 이 두 부류의의 문제적 운동권에 대해 “운동을 세상과 자신의 관계, 사회 속에서의 관계를 바꿔 나가는 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진보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증명받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라퓨시안씨도 ‘참을 수 없는 운동권’에 대해 “명백하다. 조직 외부의 비판에 귀 기울일 줄 모르는 운동, 스스로가 내건 ‘진보적’ 가치보다 조직의 안위를 먼저 챙기고 조직의 내부의 치부를 그대로 묻어버리는 운동, 다른 단위와 ‘연대’하지 못하는 운동”이라고 지적했다.

    라퓨시안씨는 “운동권은 따옴표가 붙은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를 혼자 바꿀수 없는 노릇이지 않나. 진보운동도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확한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실현할 것으로 목적으로 운동하는 것이라면 그 운동을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을지, 어떻게 설득할지, 어떻게 다른 단위와 힘을 합칠지를 누구보다 먼저, 많이 고민해야 한다”며 “협상, 타협, 양보, 이 모든 걸 선택지에 넣을 줄 알아야 하는데 무작정 우리가 옳다, 우리 방식이 옳다를 외치게 되면 그 개별 운동 단위가 외면받는 것은 물론 운동 전체에 악영향이 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또한 그는 “운동권이 ‘구시대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결국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운동권 모습에 기인하는 비판”이라고 덧붙였다.

    깃발만 꽂으면 포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파운동, 식민성과 유사

    학부때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서가대연)에서 활동했다던 승덕씨는 이 질문에 대해 다소 긴 답변을 보내왔다.

    답변 내용을 요약하자면 주류 학생운동과 달리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회에 전한다’는 취지의 가톨릭학생회의 애매한 성격 탓에 주류운동 내부에서 ‘부문운동’ 취급을 받아왔다. 그런데 승덕씨가 대표를 맡게 됐던 2005년 모 학생운동 조직 창립 준비 간담회에 갔더니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해당 운동조직 참여단체에 서가대련(서가대연이 정식 줄임말임에도) 이름을 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주최측에 항의했지만, 실수라고 어물쩍 넘어갔단다.

    그날 일에 대해 승덕씨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던 경험”이라며 “가톨릭학생회 내부의 구조나 논의 같은 것을 완전히 무시해야만 가능한 처사였는데 너무도 자주 겪었다. 가톨릭학생회는 깃발만 꽂으면 포섭할 수 있을 무주공산 정도로 여기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승덕씨는 “그러한 접근은 단지 모 학생조직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이든 무엇이든 과학적인 세계관을 지니지 못한 미숙한 대상으로 치부한 것”이라며 “이들을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상태로 이끌어줄 임무는 오로지 정파에 속한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마치 구미의 식민주의자들이 이야기했던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 같은 임무를 느끼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승덕씨는 그러한 행태에 대해 “여러 정파가 소위 ‘일반 시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민주성보다 식민성이라는 유사성을 발견한다”며 “식민지역은 전쟁을 할 상대로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폭동’을 하는 세력일 뿐인 것처럼”이라고 지적했다.

    운동권 사투리, 사회에서 부대끼며 말하는 법 잊었기 때문

    운동권 내부와 그 곁에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마주보았던 이들에게 외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도 물었다. 앞서 제기했던 운동권의 ‘참을 수 없는 문제’들을 거론하며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구시대적’ 비판이 다소 억울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택준씨는 운동권이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언어의 불일치”를 꼽았다. 그는 “일반 시민들이 쓰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딱딱함을 넘어 불편함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택준씨는 ‘안녕’ 대자보의 성공 요인에 대해 “일반 대학생 청년들의 감성을 건드린 것인데, 이는 대자보에 쓰인 언어가 운동권들의 전형과 달랐기 때문”이라며 특히 “때로는 쓰는 말과 글들이 일면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까지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에서 우선 쓰는 말 부터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민재씨도 같은 의견이다. 민재씨는 “일단 쓰이는 용어와 문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몇 마디만 나눠봐도 ‘운동권’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특유의 ‘방언’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분명 민주주의가 적대와 다름에서 나오는 갈등으로 작동되는 것이기에 대결적 용어가 쓰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식은 우리의 주장이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우리가 걱정하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많은 갈등들이 그런 과학과 정책의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데, 운동권 용어는 그런 맥락이 드러나기는 커녕 그저 상대는 멍청하고 다 틀렸고 심지어 악의가 있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적군파를 다룬 영화 '실론 연합적군'의 내부비판 장면

    일본 적군파를 다룬 영화 ‘실록 연합적군’의 내부비판 장면(영화의 적군파는 구성원의 사소한 흠결 하나까지도 운동과 혁명을 배신하는 행위로 규정하여 비판하고 심지어는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주영씨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러한 ‘운동권 사투리’의 근원에 대해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부대끼는 사람들에게 말 거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주영씨는 “늘 어울리던 사람들하고만 어울릴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계속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말을 듣고, 말을 걸으며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또한 시의적절한 말을 고르는 센스도 함께 있어야 한다”며 “삶의 고달픔을 정치적 영역과 분리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쉬운 말을 골라쓰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다훈씨는 집회와 시위 방식에 대해 제기했다. 그는 “시위나 집회 방식이 여전히 바뀌지 않아 낡아 보인다”며 “삭발하고 단식하는 것이 현시대에 얼마나 효과적인 시위 방식인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시위나 집회에서 너무 비장함만 강조하기보다는 거리나 광장의 상황을 TV로 시청하거나 SNS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진보세력이 ‘구시대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진보적 정책이 정말로 필요한 수혜자들과의 사이에 놓인 심리적 괴리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희씨도 “운동권, 진보세력의 문화가 뒤쳐졌다는 비판에 대해 ‘운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했는데 문화 발전을 꾀하겠냐’고 울컥 하는 분들도 있을거다. 안다. 왜 모르겠냐”며 “하지만 이건 전술적 고려를 의미하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해야 힘이 생기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니냐”고 지적했다.

    특히 소희씨는 “운동권 또는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에 대한 다양성을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다양한 정체성과 욕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걸 성찰해야 한다”며 “지금 반자본주의 투쟁이 매우 중요한데 왜 여성주의니 장애인 인권이니 청소년의 정치참여니 이런 거나 하냐고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런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학생운동 세계관, 가능성 있지만 ‘배움’ 배제하는 ‘꼰대’가 문제

    승덕씨는 우선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주체사상 등은 일반적 동의를 얻지 못한 지는 오래됐고, 페미니즘을 필두로 한 여러 ‘포스트-‘ 담론들은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주류 저항담론의 위치를 차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도 “특정한 세계관이 오래되었느냐, 새롭냐의 문제보다는 그것이 계속하여 스스로를 보편화하고 지양해내는 운동을 하고 있느냐가 참신함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운동의 세계관이 소수의 신념이 된 것에 대해서는 “그간 벼려온 운동의 언어는 나름 합리적인 기반을 지니고 있다”며 “대학생들이 일년 중에 꾸준히 만나는 사람들이 다섯 내외인 현실에서 현재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들만이 그나마 더 넓은 세계와 만나고 있다. 학생운동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학생운동을 하면서 세계관이 넓어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학생운동의 세계관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운동이 ‘구시대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철학자 김상봉은 낯선 타인과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이 배움이라고 말했다”며 “배움이 빠진 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포장한 지배욕과 같다. 지탄을 받는 ‘꼰대’들은 언제나 배우려고 한다고 말을 하지만, 공동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선 배움을 한사코 배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꼰대’의 정의에 대해 “단순히 나이가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낯선 경험과 욕망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며 “운동권에 대한 비난은 이러한 배움이 없는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이번 ‘안녕’ 대자보는 새로운 세계관을 던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세계관이든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를 환기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안녕’ 대자보, 큰 울림 있지만 어떤 결과 낳을지는 미지수

    기중씨는 ‘구시대적’이라는 지적이 ‘말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제기했다. 기중씨는 “구시대적 비판이라는 것이 ‘문화적으로 구리다’는 종류의 비판인데, 80년대야 대학이 문화를 생산할 수 있었던 시기다. 강변가요제에서 우승하면 가요톱텐에서 1위를 할 수 있을 때였니깐. 하지만 지금은 자본과 인력이 없으면 문화를 생산하거나 항유하기 어렵다”며 “그래서 맨날 집회문화도 똑같고 노래는 20년전 노래를 부르고, 돈이 없으니 옷도 구리구리한 거다. 요새 ‘강남좌파’ 얘기 하던데, 강남에 안 사는 운동권은 어쩔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말하는 방식’ 문제에 대해 그는 “반독재투쟁을 하던 시기에는 언론이 극도로 통제되어 있었고, 대안적 언로도 없었다. 광주항쟁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의 세계관이 무너질 수 있던 때였기에 대규모 저항이 필요하고 또 가능했던 때이다. 그래서 계몽주의와 조직력이 필요했을 때”였다고 설명하며 “지금은 언론이 편향적이긴 하지만 인터넷과 SNS등 다양한 언로가 있고 대중이 다양한 입장을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이다. 물론 여전히 방송과 신문 영향력이 강하지만 ‘니들 이거 몰랐지’라는 태도가 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중씨는 “안녕’대자보가 호응을 얻은 것이 이 지점”이라며 “‘니들도 이거 알잖아. 알면서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정은 나도 마찬가진데, 그래서 너 괜찮니?’ 하고 대화를 거는 것, 이런 게 기존 운동권들에게 잘 안 보이던 태도였기 때문에 울림이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 대화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자보가 큰 울림을 주긴 했지만 이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운동권들은 결과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고 새로운 방식을 연구할 여유도 없다”며 “장기적으로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도 기존의 방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안녕’ 대자보에서 나타나는 ‘순수 시민’ 이데올로기

    운동권의 현재의 실태(?) 점검을 끝으로 이들에게 ‘안녕’ 대자보와 반운동권 정서와 흐름에 대해서도 물었다. 안녕’ 대자보의 흐름에 조직된 단체인 운동권들의 ‘구시대적 방식’의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반정치나 반운동 정서에 대한 우려도 있다.

    과거 운동권의 잘못된 행태 때문에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기존 운동권이 늘 헛발질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제기도 있다. (계속)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