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성매매 여성의 '안녕' 대자보
    안녕 못하다는 말도 허락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
        2013년 12월 19일 0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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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페이스북의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지에 “저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입니다”라고 시작하는 한 대자보가 올라왔다.

    이 여성은 ‘안녕’ 대자보를 썼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성구매자에게 제대로 호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폭행 당했노라고, 돈을 냈으니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논리에 구타당하고 낙태를 하고도 돈을 벌기위해 쉬지도 못하고 성매매를 하러 가야 한다며 안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말한 대로 ‘누구나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지하지만, 일부는 그녀가 성매매 노동자라는 이유로 ‘안녕’에 동참하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더 나아가 ‘안녕’ 대자보를 폄훼하기 위해 ‘일베’에서 작성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 누구도 ‘평등’에 순위 매길 수 없어

    현재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에서 이 대자보에서 ‘안녕’을 지지하는 이들간에 격론에 벌어지고 있다.

    임**씨는 이 여성이 대자보에 대해 “개인의 고통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안녕들하십니까냐”고 제기했다. 윤**씨는 “불법 성매매는 말 그대로 불법이다. 나름의 법적인 안전망에서 자신의 부당함을 토론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이 페이지도 가릴 건 가려 받는 페이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법, 합법의 논리라면 철도노조도 정부 주장대로 불법파업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공**씨는 “비교할 걸 비교해라. 설령 철도노조파업이 불법이라도 시간이 좀 지나 후세에 철도노조파업은 노동자들의 기본권리에서 논할 수 있지만 성매매가 과연 노동자의 기본권이란 도마위에서 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에 반박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박**씨는 “대자보를 처음 썼던 주현우씨가 진보신당 당원이었기 ‘때문에’ 이 대자보는 선동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랑 비슷한 말”이라며 “성매매 여성은 글을 올려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건 ‘안녕들하십니까’ 내에서 또 다른 경계선, 또 다른 약자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씨는 “모두의 ‘안녕’은 평등하다. 순위를 매기고 자격이 있는지 따지면 안 된다. 성매매는 개인의 고통이면서 사회문제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과 깊이 연결돼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격론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한 네티즌은 이 여성이 ‘익명’으로 게재했고, 해당 대자보가 여성의 글투가 아니라며 ‘조작설’을 제기했다.

    권**씨도 “왠지 ‘안녕들하십니까’를 폄하 하기 위한 의도적인 글 같다”며 “안녕들하십니까를 쓴 남자가 성매매를 와서 폭력을 행사했다…교묘하게 만들어진 글인 것 같다”고 남겼고 이 글의 ‘좋아요’는 200개가 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기는 사실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안녕’ 대자보에 참여했던, 혹은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일부 남성의 이중성을 은폐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또하나의 안녕

    이 대자보는 어느 한 성매매 업소 밀집 지역에 붙어 있었고, 다음 날 곧 ‘삼촌’들에 의해 떼어졌다.

    그녀 “‘안녕’ 대자보, 말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리그라고 느껴져”

    어렵게 연락이 닿은 대자보의 주인공은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대자보 현상이 그들만의 리그였다고 생각해서 나도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도 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인권단체에 가입하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피켓 시위도 해봤지만 별로 호응이 없었다. 그런데 고려대 학생이 쓰니 주목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녕’ 대자보를 썼다고 자랑하며 자신을 폭행했던 남성 이야기에 대해 “‘주먹질’이라는 표현이 다소 선정적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렇게 맞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자세히 이야기할 것도 없이 자보에 쓴 내용 그대로 ‘마인드가 덜 됐다’는 이유로 맞았다”라며 “그리고 원래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별로 믿지 않는 편이었고, 그냥 저 사람도 깨시민구이나 하고 그러려니 했다”고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일부 네티즌이 ‘안녕’ 대자보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성된 글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진짜로 맞은 거냐, 맞았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댓글들을 봤었다. 그런데 성매매하는 사람 중 어느 누가 맞았다고 경찰에 말할 수 있겠냐”며 “성구매 남성에게 결별을 요구했다가 납치, 협박을 당해 경찰에 가봤고, 사진 유포 협박으로도 가봤지만 오히려 그러게 왜 성매매를 하느냐는 둥 2차 가해를 당하는 느낌만 받았다”고 토로했다.

    ‘안녕’ 대자보 흐름에 대해 그는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냥 대학생들이 말하니깐 들어주는구나,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정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며 “그간 인권단체 등의 활동을 통해 말할 때는 ‘좌좀’이니 뭐 그런 반응만 보이더니 대학생이 말하니깐 이런 반응인 건가, 나는 그동안 뭘 했던 건가라는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안녕’ 대자보에 참여하는 그들 스스로 조차 그 내부에서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표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타인의 아픔을 재단한다는 느낌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현재 5년째 성매매를 하고 있지만 본인을 ‘성 노동자’라고 정체화한 것은 고작 반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반성폭력, 반성매매 인권단체 모임에서 상담도 받고 글쓰기 모임도 참여하면서 성 노동자에 대해 목소리도 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저런 활동 과정에서 진보진영이라는 공간에서조차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을 받고 심지어 성폭력까지 당해야만 했다.

    그녀가 안녕하지 못한 이유와 대자보를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이들도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99% 가지지 못한 자들 중에서도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성 노동자라는 이유로, 운동권의 주류가 아니라서 말할 수 없던 이들도 기꺼이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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