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가 남긴 것들
[촛불시위와 '안녕' 대자보 ②]당시의 2~30대에게 묻다
    2013년 12월 18일 03: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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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와 안녕 대자보-1 링크

2008년 촛불시위, 우리는 어쩌다 거리로 나갔을까
운동권이어서 나가고, 선배한테 끌려 나가고, 그냥 혼자 나가던 그 거리

현재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박창수(가명)씨는 2008년 촛불 시위에 참여했을 당시 총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촛불시위에 참여하자는 박씨의 제안에 총학생회는 “조직적으로 합의한 적이 없어서 안 되겠다”며 거절 당했다고 한다.

박씨는 “덩치가 큰 조직은 의사결정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고, 또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인터넷에서 젖소 잠옷 사서 뒤집어쓰고 일인 시위하러 다녔다. 그런데 일인 시위하는데 그렇게 많은 지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인 30대 초반의 이기중씨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막 군대에서 제대한 뒤 고향에 있던 터라 한 두차례 정도밖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뭐, 운동권이었으니깐”이라는 깔끔한 답변을 보냈다.

현재 대학생인 20대 초반의 김소희(가명)씨는 2008년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입시 문제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소희씨는 “부끄럽게도 그때 나에게 입시가 더 급했다”며 “오히려 처음 집회에 나가게 된 것은 용산참사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정의당 당원인 20대 중반의 이택준씨도 당시 군인이어서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택준씨는 “그러나 당시 휴가 장병들에게 광화문 근처 출입을 단단히 경고할 정도로 커다란 문제였기에 온라인 매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용을 접했다”고 회고했다.

운동권과는 인연이 없었던 20대 대학생 정다훈씨는 2008년 촛불시위가 생애 처음으로 참여한 시위였다.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사회 참여의 ‘정석 코스’인 나쁜(?) 선배의 설득에 이끌려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훈씨는 촛불시위에 대해 “군 입대전이라 술만 먹느라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직접 촛불시위를 체험하고 난 뒤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원생인 20대 후반의 김민재씨는 당시 졸업을 앞둔 학부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학교에서 환경동아리를 하면서 생태주의 운동을 하고 있었고, 동아리연합회 집행부도 하고 있었다. 한미FTA 이야기가 나올 때 반대 활동도 했고 광우병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촛불집휘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나가지 않았다. 빠릿빠릿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처음으로 가두로 진출하던 시위 날 나가게 되면서 거의 매일 나갔었다”고 말했다.

노동당 당원으로 대전에서 여러 지역활동을 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장주영씨의 촛불시위는 보다 더 재밌는 추억이었다.

주영씨는 “서울에서 살지 않음에도 5월 31일부터 14주 연속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그 전에는 인터넷 중계로 지켜보았는데, 영상으로 보며 경찰들 하는 행태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당시 다니던 학교에서 버스를 빌려 서울 집회에 간다길래 냉큼 참여했는데, 하필 그날이 물대포가 처음 등장한 날이라 삼청동 앞에서 대차게 물대포도 맞고 그 와중에 ‘온수 줘!’를 외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주영씨는 “그때 광화문 보수공사 중이었는데 공사장 벽이 갑자기 열리며 전경들이 쏟아져 나와 토끼몰이도 당하고 아침에는 안국역 쪽에 있었는데 광화문 쪽이며 종로 쪽에서 전경들이 밀고 들어오며 방패로 찍고 사람들 넘어지고 그런 장면들이 정말 쇼킹했죠. 인도에 있었는데도 경찰들이 사람들 사지를 들고 끌고가고… 이게 지금 21세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맞나 싶었다”며 “집회가서 알게된 일행들이랑 터미널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너무 평온하더라. 우리가 겪은 아비규환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일처럼 취급되는 듯한…지하철과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다들 대성통곡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원생인 30대 백승덕씨는 오히려 과외하던 학생 때문에 집회에 나가게 됐다고 한다.

승덕씨는 “여고생들이 주최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즈음에 과외 하던 학생이 내게 광우병에 대해 이런 저런 정보를 들려주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별로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던 친구가 따로 열심히 자료를 찾는 걸 보면서 대체 이 움직임이 뭘까 궁금해서 집회에 나가게 됐다”며 모 인터넷모임을 통해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촛불1

2008년 촛불시위의 긍정성과 한계점

각자의 방식으로 촛불시위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촛불시위의 긍정적인 측면과 한계점에 대해 물었다.

이 답변에서 스스로를 운동권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그 주변부였다고 주저하던 이들 모두 촛불시위에서 일종의 두 가지 측면의 해방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과, 기존의 관습적인 운동방식을 탈피했다는 것에서 이들에게 촛불시위는 ‘가능성’이었다.

한계점도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집중도와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촛불시위를 계기로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던 이들은 자신의 행위로 정부의 태도가 변화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많은 참여자들이 ‘무력감’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조직적인 운동에 익숙했던 창수씨는 2008년 촛불시위에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룰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게 된 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계점으로는 “역동성이 있었던 것 만큼 집중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요구하는) 수위도 달랐고, 그 안에서 서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도 많이 봤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년정치인인 기중씨는 촛불시위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07년 대선과 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휩쓸고 진보정치가 위축되면서 대중운동도 거의 다 무너지고 국민들도 모두 보수화되었구나, 싶었던 그 시점에 대규모 저항이 일어났다는 것에 일말의 희망도 다시 살아났다는 점”을 꼽았다.

한계에 대해서는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사실, 처음부터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른다.”며 “촛불의 민심과 함께할 강력한 야당이나 차기 주자도 없었던 상황이었으니, 대통령 지지율이 10%를 찍어도 정부가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촛불집회는 흐지부지 됐다. 그 후 모든 저항은 다소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의 분노와 절망이 2010년 야권승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것 뿐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 사회학을 공부중인 20대 대학생 라퓨시안씨는 촛불시위에 대해 “투표가 아닌 방법으로 거리에 나와 정치에 참여하는 경험, 공공영역에 ‘내 목소리’를 내는 경험이 민주화운동 이후 세대에게는 대단히 소중했다”고 회고했다.

한계에서 대해서는 그는 “이 시위에서 사람들이 학습한 건 일종의 무기력감”이라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서 이렇게나 열심히 목소리를 높였는데 정작 바뀐 건 없고 광우뻥으로 선동한다고 욕만 먹었다.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들에 의해 현실이 바뀔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지만 현실은 기대를 배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에너지를 모아 새로운 운동, 새로운 흐름을 낳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촛불시위가 첫 시위 경험이었던 다훈씨는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려 할 때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경고했다는 점과, 시위 과정에서 대안언론이 발전했다는 점과, 촛불시위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뜻을 모아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 가능성을 얻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계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협상할 시스템이 없었다”며 “해결보다는 불만 표시에 더 집중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택준씨는 당시 촛불시위에 대해 “97년 IMF 이후 누적되어 있던 사회경제적 갈등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다만 “정치가 갈등을 제도화하는데 계속 실패하면서 이들이 광장으로 모이지 않고서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할 정도로 불통이 고질화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주로 생태운동을 했었던 민재씨는 촛불시위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집회가 엄숙하기만 하거나 운동권의 의례화된 것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이전 집회들은 순서와 의례가 정해진, 그마저도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어리둥절한 시공간이었다. 노래도 낯설고, 팔뚝질과 날선 언어도 무섭고…하지만 촛불시위는 일부 명망가들이 아닌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날 것으로 연단 위에 퍼졌다. 물론 노조위원장이나 국회의원의 발언은 잘 정리돼있긴 하지만 어쩐지 내 주변 사람 같지는 않지 않냐”고 말했다.

또한 민재씨는 “그 와중에서도 충분히 질서가 잘 지켜졌다”며 “집회가 과격했니 어쩌니 하지만 어떤 상점이나 자동차가 털리거나 불탄 건 아니지 않나. 유럽 쪽 집회를 보면 그런 건 일도 아닌던데…하지만 촛불시위는 최대 백만명이나 모였음에도 그러한 자기 질서가 가능했다는 건 한국 시민들이 매우 성숙한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출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계점에 대해서는 “결국 조직되지 않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 거리의 정치의 한계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당, 시민, 운동단체로 조직화되지 않은 힘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재씨는 “정치의 한 중요한 측면은 지난한 과정 속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내는 일인데, 거리의 정치는 어떤 일에 대한 반응이라는 측면이 크고, 그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지려면 모여서 장기적으로 끈질기게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국면까지 가야 한다”며 “(그러나) 촛불은 그러한 유산을 남기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야당-촛불 참여

민주당 등 야당이 참여한 촛불시위 모습

승덕씨의 의견도 비슷하다. 승덕씨는 “촛불시민들은 각양각색의 성격을 지녔지만, 다들 본인들의 ‘안녕’을 대변해줄 정치인이나 세력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촛불시민들에게는 진보신당이 집권여당이라던 농담은 본인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다고 느끼던 촛불시민들의 결핍을 드러내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촛불의 흐름이 시들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본인들의 사회적 요구를 대변해줄 정치세력이 부재하기에 스스로가 직접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촛불집회 중에 각자가 ‘진실’을 알고 있다며 주구장창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기존의 운동세력들도 모두 사태를 잘못 보고 있다면서, 주로 미네르바 같은 경제분야 논객의 말을 빌어, ‘진실’을 주장하곤 했다”며 “자신이 얼마나 참신한지를 내세우던 사람들이 점차 많아질수록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느끼던 동질감이나 해방감은 꽤 많이 시들었던 것 같다. 공통의 토론기반을 만들지 못하면서 수많은 ‘진실’ 주장들이 공허해져 간 것이 촛불 말기의 모습이었다”고 지적했다.

주영씨는 촛불시위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하게 됐다. 주영씨는 “국가폭력의 실체를 직접 겪었다. 내가 아무리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외쳐도, 국가가 나를 적으로 규정한 순간 국가폭력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내가 권력의 주체가 아니구나, 이게 이 나라의 현실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그 권력을 다시 찾아올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87년 이후 가장 컸던 민중저항, 판은 어떻게 키워졌나?

2008년 촛불시위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조직이 주도했던 시위가 아니었는데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가장 큰 판이 벌어졌다. 기존의 운동권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참여가 압도적이었다. 기존 시위와는 무엇이 달랐기 때문에 참여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라는 주제가 ‘먹거리’ 안전에 국민적 불안을 일으켰다는 ‘소재빨’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정부의 소통 방식에 시민들의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홧병설’, 시민들 스스로 정치적 주체임을 자각했다는 ‘주체설’, 기존 집회방식과 다르게 재밌던 시위방식 덕분이었다는 ‘축제설’등 다양한 의견이 제출됐다. 이 모든 답변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이기중씨는 이에 대해 “생활에 가장 와닿는 먹거리 문제였기 때문에 그 전까지 정치 무관심층으로 분류됐던 청소년들과 2~30대 여성들이 나서면서 오랜기간 경제양극화로 분노가 쌓였지만 풀 방법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 가세했다”며 “그 후 운동권들이 판을 본격적으로 만들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다훈씨도 “남녀노소 계층에 상관없이 영향 받을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라며 특히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막고 PD수첩을 제재하는 등 잘못된 해결 방식을 선택해 사람들의 감정에 불을 더욱 붙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택준씨도 ‘먹거리’ 문제였다는 점과 더불어 매체의 발달을 꼽았다. 그는 “온라인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이 의문을 품고 교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과 더불어 ‘정부의 소통 방식’도 한 몫 했다는 의견도 있다. 민재씨는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소통하고 합의를 만들고 안심을 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정부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동’되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한 규정에 대해서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로 자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라퓨시안씨는 “내가 바로 정치의 주체라는 그 의식, 그리고 이 정치적 문제가 곧 내 문제라는 인식이 사람들을 이만큼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나이브하게나마) 생각한다”며 “한편,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이에 편승해서 조금이나마 적은 부담으로, 보다 안심해서 나도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는 분위기도 작용했던 것라고 본다”고 말했다.

시위 방식이 더 많은 참여를 불러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박창수씨는 “말이 집회지, 사실 축제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참여하는 이들의 거부감이 없어진 것도 참여 확산에 기여한 것 같다”며 “이를테면 빨갱이나 운동권 행사라는 부정적 레테르를 붙일 수 없게 되면서 대중 참여가 더 높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주영씨도 “재밌기도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가 명확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어딘가로 가면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같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며 특히 “매우 높은 수준의 결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나가면 초도 나눠주고, 손피켓도 나눠주고…소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집회 자체를 쉽게 소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촛불2

촛불시위의 출발점이 되었던 여고생 등 청소년들의 촛불

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최대 100만명까지 참석했던 촛불시위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다양한 원인에 따라 판이 키워졌다. 기존의 조직된 운동권이 아니었던 사람들, 누가 있었을까?

주영씨는 “굉장히 다양하다”며 집회 참석 목적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광우병 발병율이 낮다 하더라도 자국민을 보호할 의지가 없는 정부 태도에 분노한 사람도, 그냥 천조국(미국을 뜻하는 인터넷 조어)이 싫은 사람도, 경찰폭력에 화가 난 사람 등 다양했다”고 말했다.

멤버십 형태별로도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도 있었고, 사회단체나 정당에 소속된 사람들,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며 “그런데 이 사람들을 다 칼로 나누듯 나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영씨는 “사실 나 또한 당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마비노기라는 온라인 게임 길드 소속으로 참석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진보신당 당원, 대학원생, 살사 동호회 회원이기도 해서 다양한 역할을 갖고 시위에 참석했다”며 “그런데 마치 불순분자, 전문시위꾼으로 취급받는 건 좀 그렇다”고 말했다.

민재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사회운동단체에 가입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과 연관없는 중/고/대학생과 먹거리에 불안감을 느낀 주부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시민’을 폭력적으로 탄압하지 않으리라는 생활감각을 가졌던 시민들이 나온 것 같다”며 “이전 집회에서 발생했던 농민이나 노동자, 좌파에 대한 폭력 탄압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설사 그런게 알려졌어도 촛불시위 참석자들은 그들을 ‘시민’이라는 범주에서 무의석적으로 배제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라퓨시안씨도 앞서 민재씨와 비슷한 맥락으로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이에 편승해 조금이나마 적은 부담으로, 보다 안심해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작용했던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기중씨는 당초 촛불시위의 판을 만들었던 이들이 먹거리 문제에 민감했던 청소년과 육아문제에 민감한 젊은 엄마였다면서 “운동권들은 상수”라고 말했다.

또한 기중씨는 “발단이야 어쨌든 양극화로 피해를 입은 계층들을 주목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는데 마침 적절한 판이 벌어져서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 시위의 목적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동의가 없었을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당시 이상득 의원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단지 실직하고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과 서민, 어려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참가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는 촛불집회 폄하발언으로 인식되어 비판 받기도 했지만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본다”며 “보통은 이런 이들까지 저항에 가담할 때 혁명적 정세가 오는 것이겠지만 당시엔 정치적 지도부가 없었기 때문에 흐지부지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말을 종합하자면 당시 촛불시위라는 판을 처음 만든 것도, 시위대의 다수를 점유했던 이들도 기존 운동권 세력보다는 평범했던 시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주영씨가 지적했듯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은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규정되기 쉽지 않다.

기존 운동세력에 대한 불신 ‘깃발 내려라’ 구호는 왜였을까

앞서 이기중씨가 언급했듯, 촛불시위의 시작은 일반 대중의 참여로 판이 만들어졌다가, 후에 소위 운동권 세력이 대거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판을 키웠다. 어느 한쪽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의 참여자들은 같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인데도 ‘깃발’ 들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다소 냉담했다. 어느 순간 시위 참여자들은 ‘깃발 내려라!’를 외쳤고, 깃발은 곧 구시대적 유물 취급을 받거나 자발적 참여가 아닌 조직적으로 ‘동원’된 사람으로 비쳐지게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대부분 정치적으로 순수함을 강요받은 보수진영의 논리가 컸다는 의견이 전반적이다. 아무런 정치적 입장이 없거나 중립적이어야 하고, 조직적 멤버십도 없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깃발 내려라’ 현상에 대해 다훈씨는 “시위의 목적이 특정 정당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정당이나 단체 소속이라면 괜한 시비나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람에 대한 판단을 그 사람이 아닌 속해있는 집단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중씨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참여정부에 실망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을 지지했는데 당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쇠고기 수입 확대로 화답하니 정치에 대한 환멸이 극에 달했던 것”이라며 “그래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게 ‘이용’을 당하지 않겠다는 정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중씨는 “운동권과 시민의 이분법은 예전부터 있었던 정서”라며 “02년, 04년 촛불집회는 정부여당이 이쪽 편이었지만 08년은 정부를 향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운동권을 배제하고 순수한 국민 여론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택준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지금도 그렇고 당시도 그렇고 일반시민들 다수는 운동권과 보수정권 모두에게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다른 측면으로는 우리 사회 속 정치적 중립이라는 신화의 영향인 것 같다. 교육현장에 특히 강하게 남아있는 정치 중립을 순수함이나 선함으로 보는 시각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며 “당시 촛불을 들었던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지금 만나보면 여전히 그런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창수씨는 “정권과 보수진영이 원하는 대로 프레임 함정에 갇힌 거라 할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붙일 수 있는 빨갱이, 혹은 운동권이라는 레떼르를 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혹은 그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민재씨는 “운동조직들이 여러 면에서 보통의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 이유”라며 “그 연원은, 운동조직 자체의 문화적/일상적 부분에서 그 바깥 사람들과 다른 부분도 있을 것이고, 지난 수십년 간 정부/보수세력에 의해 구사된 낙인 찍기가 효력을 발휘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치라는 말 자체가 혐오의 대상인데다 저들 ‘정치적인’ 조직에 연루되면 ‘순수’함을 의심받으니깐, 어떠한 이해관계나 정파성을 초월한 순수한 개인, 다른 말로는 ‘시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러한 순수함을 파괴되면 정부 여당이나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을 거라는 낙인의 논리가 많은 이들에게 내면화되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영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주영씨는 “조직되어 있는 저들은 불순한 누군가이고, 나는 단체와 상관없이 내 의지로 나온 순수한 시민인데 단체 깃발 근처에 있으면 무슨 명령이나 지령 받고 나온 사람으로 오염되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편으로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대게 느끼는 불안감을 집회에 참여한 모두가 평등하게 느낄 것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승덕씨는 보다 운동권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승덕씨는 ‘깃발 내려라’라는 구호에 대해 “여러 변혁운동 조직들이 촛불시민들에게 낯선 집단으로 다가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관과 실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체 무슨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려고 하니 괘씸했던 것”이라며 “정파 간의 다툼 보다는 보험상품 등의 약관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가입시키는 불완전 판매처럼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소위 ‘순수시민’들이 운동권과 선을 그으려는 것은 그들을 잘 알기에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단 그들을 너무 모르기에 두렵고 괘씸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라퓨시안씨는 ‘깃발 내려라’ 현상에 대해 “배후세력이 있다고 하는 반정치 레토릭에 그대로 휘말려버린 것”이라며 “그런데 사실 모든 주장은 정치적이 않냐”고 반문했다.

라퓨시안씨는 “‘정치적이지 말라’ 혹은 ‘정치적이지 않겠다’고 하는 주장 또한 명백히 정치적인 주장”이라며 “정치가 생활이고 생활속의 모든 선택이 정치인 이상, 그리고 제도권 정치의 모든 면이 일상 생활과 영향을 주고받는 이상 개인이 정치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촛불3

민주노총 주최 집회 3번 나가면 운동권?

이쯤에서 ‘운동권’이란 무엇인지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스스로 운동권과 구별되는 ‘시민’이나 ‘국민’, ‘보통의 사람’으로 반정립한다면, 그렇다면 ‘운동권’은 무엇일까. 또한 기존의 운동과 달리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하게 느껴지는 ‘시민운동’이란 정의는 무엇일까?

운동권과 시민운동을 구별 짓는 것이 적절하지도, 쉽지도 않다는 지적과 실제로 시민운동을 자처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기중씨는 운동권에 대한 정의를 “변화를 위한 운동을 조직하는 사람”이라며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학생운동조직, 노조, 진보정당 등에 소속되어 집회와 시위를 일삼는 무리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 교육, 언론이 보수 편향적 사회이기 때문에 진보를 지향하는 이들은 집회나 시위 등 거리의 정치에 상당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해서 시위를 하면 반드시 운동권은 아니고, 그 역도 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희씨는 운동권에 대해 “사람들이 대개 운동권이라고 하면 질색하는데 이러한 혐오는 정치 혐오와 같은 맥락”이라며 “운동권과 비운동권, 정치와 비정치, 이게 명확한 경계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소희씨는 “운동권과 정치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넘지 못하는 건 결론적으로 운동권의 무능함으로 귀결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택준씨도 운동권에 대한 정의를 “일종의 선도그룹”이라며 “무엇인가 사회의 변화를 ‘그들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다훈씨의 운동권에 대한 정의는 폭넓다. 그는 “공통의 뜻을 현실적인 결과로 이루려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창수씨도 “옛날에 무슨 만화를 보니깐, 시민의식을 가지고 옳지 못하는 일에 저항하는 사람은 모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니, 모두는 운동권이라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며 “공동체를 함께 사는 다른 이들에게 옳지 않은 것들을 바꾸자고 호소해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민재씨도 “사회적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바꾸려는 사람들을 모두 운동권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정의했다

다만 그는 “보통 사람들이 운동권이라고 느끼는 것은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연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조직인 것 같다”며 “상대적으로 여성이나 환경운동, 인권운동은 운동권이라는 비판(다른 종류의 혐오와 비판이지만)은 덜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주영씨의 의견은 소희씨 의견과 비슷하다. 주영씨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TV에서 비춰주는 데모하는 사람들만을 볼 때 쉽게 저 사람들은 운동권, 나는 비운동권이라고 나눌 수 있었는데, 막상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보니 그렇게 구분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싶다”라고 제기했다.

그는 “노동운동하는 사람들도 다들 직장 다니면서 자기 영역에서 홀동하는 거고, 시민단체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이라며 “그런데 민주노총 주최 집회 3번 이상 나가면 운동권인 건가? 증명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권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 무 자르듯 어디부터 운동권이라고 하기에는 힘들 것 같다. 이건 아마 내가 이미 운동권인데 그걸 스스로 부정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라고 토로했다.

특히 주영씨는 오히려 “굳이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갈라야 하나? 이거야 말로 프레임에 갇힌 것 같다. 누구든지 자기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 성찰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건데, 운동권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다들 움츠려 드는 것 같다. 마치 낙인과 같다”며 “차라리 당신이 생각하는 운동권이 뭔데 나를 그렇게 부르냐고 거꾸로 질문을 던지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운동권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 드는 ‘시민운동’에 대한 정의도 물었다. 대부분의 답변은 운동권과 시민운동을 나누어 정의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되려 기자에게 질문이 이상하다고 타박했다.

창수씨는 “분과를 나누어 정의를 내리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왜냐하면 소위 노동운동에서 말하는 그 노동자도 시민이고, 학생운동에서 말하는 그 학생도 시민이지 않나. 사회가 고도화되고 있는 요즘에는 개인의 정체성은 언제나 복수로 존재하는데 그걸 나누고 재단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택준씨 의견도 같다. 그는 “지금의 시민운동을 딱히 정의내리기 어렵다”며 “단지 시민운동에 ‘시민’이 별로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역설했다.

기중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본래는 특정 분야에서 공익적 지향을 가지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해악을 제거하는 운동을 하는 단체를 의미하겠지만, 한국사회에서 시민운동은 민중운동과 구별되는 다른 어떤 것으로 등장해 성장했다. 운동이지만 운동권이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동이지만 운동권이 아닌 시민운동에 대해 “집회, 시위보다는 정책연구 및 발표, 기자회견 등에 중점을 두는 단체 정도, 여기에 더해 ‘순수하게’ 공익을 위한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정당은 정치적 이익을, 노동운동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이익단체라면 시민운동은 공익단체여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에 정의에 대한 의견에 민재씨 의견은 기중씨 정의와 비슷하다. 민재씨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려 한다는 위치를 스스로 점하려고 하고 있다고 본다. 부정부패를 감시한다든지, 갈등을 중재한다든지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영씨는 시민운동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주영씨는 “시민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노동, 청소년, 장애인 등의 운동이 시민운동과 따로 구문해서 쓰이는 걸 보니 이들은 시민운동이 아닌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주영씨는 “시민운동이 다양한 사회 내 위계, 권력에 대해 민감하게 인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영역에, ‘시민’이라는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의제를 삶의 문제와 연관시키고 확장시키기보다는 행정관청을 일종의 협상 파트너로 여긴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기존의 운동권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거리감이나 더 나아가 적대감을 가지게 된 배경이 온전히 오해나 보수세력의 논리 때문일까? 스스로를 운동권으로 정체화하기도 하고 그 주변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운동권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계속)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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