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촛불과 '안녕' 대자보
    정치와 비정치,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대립구도는 어디서?
        2013년 12월 17일 01: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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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학생 주현우씨가 자필로 쓴 대자보 한 장이 안녕하지 못했던 청춘들의 가슴을 뜨겁게 데우고 있다. ‘신자유주의’니 ‘퇴진’이니 하는 운동권같은 언어와 거리가 있는 그의 언어는 누구나 읽기 쉬웠고, ‘안녕하냐’고 다정하게 묻는 그의 질문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응답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철도 민영화와 밀양 송전탑 등 굵직한 사회현안을 언급했지만 무겁지 않았고, 그의 언어는 쉬웠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았다. 어떤 정당이나 사회단체의 메세지보다 강렬했고 전파력은 더욱 높았다.

    그런데 이 사건을 두고 두 가지의 시선이 있다.

    진보정당 당원인 주현우씨의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대자보가 정치적이거나 조직적 선동이라는 의혹과, 반대로 그의 대자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거나 운동권의 개입으로 망치지 말라는 의견들이 그것이다. 전자는 보수언론들에서 제기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딱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낭패다. 어느 쪽도 ‘정치’는 순수하지 못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녕’ 대자보…구시대적 운동권이 밥 숟갈 얻으면 망한다?

    이런 가운데 <오마이뉴스>에 “‘안녕들 하십니까’에 왜 열광할까”라는 기사가 올라왔다.(관련기사 링크)

    이 기사는 “운동권이 아닌 대학생들, 거리로 나선 까닭”에 대해 기존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한대련이라는 조직과 비교하며 그 이유는 “자유분방함”에 있다고 설명한다.

    기사는 한대련, 노동자연대 다함께 등의 철도파업 지지 성명과 고려대 대자보 텍스트를 비교하면서 주현우씨의 글이 쉬우면서도 조심스러운 내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기사는 “청년을 이야기하지만 청년과는 이야기하지 않는 운동권식 소통의 한계”라며 주씨의 글에 대해서는 정파성은 눈에 띄지 않으나. 동시에 피드백이 가능한 꽉 막히지 않은 소통”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기사는 운동권의 공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면서도 “특정 정파에 함몰된 단체가 ‘안녕들 하십니까’ 대학생들을 함부로 이끌리고 했다간 과거처럼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며 운동권 단체들이 대중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했다.

    어느 한 트위터리안도 자신의 트위터에 “구시대적 진보 운동가들과 그 카피캣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고문과 강연으로 연명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진보세력이 커 나가길 바란다”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그런 새싹일텐데 구시대적인 이들이 밥숟갈 얻는 게 보기 싫어”라고 남겼다.

    이 글은 SNS상에 공유되면서 네티즌들은 “이미 2008년 촛불 때 직업이 원로인 분들이 숟가락 얹어서 망했죠”라거나 “이미 밥숟갈 무지 많던데”, “공감한다”는 등 동의 의견들이 상당수 표출됐다.

    반면 다른 네티즌은 “소위 구시대적 운동가들이 실질적으로 분류가 가능한 카테고리인지 모르겠다. 무슨 ‘구시대운동본부’같이 명패가 붙은 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종북세력 만큼이나 모호한 표현을 대충 느낌적인 느낌으로 사용하는 건 아닐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누굴 지칭하느냐에 따라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얘기. 이런 식의 간편한 싸잡이 비난이 제일 쉽다”고 반박했다.

    촛불과 대자보

    2008년의 촛불과 2013년의 ‘안녕’ 대자보

    반정치-반운동의 정서,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오마이뉴스>의 보도나 보수언론의 보도, SNS상의 네티즌들간의 설왕설래의 근본적인 문제는 운동과 반운동, 정치와 반정치의 반목 혹은 공존의 세트라고 볼 수 있다.

    한 네티즌은 <오마이뉴스> 기사를 두고 “아직도 시민운동이 너무나 낡은 근대정치의 패러다임을 재생산하고, 정치와 운동을 분리하고 운동권과 시민운동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는 주현우씨의 대자보가 대중(또는 청년)들과 소통하지 않는 운동권과는 다르다는 논지에 대해서도 “결국 타자의 고통과 상처에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개인주의라는 질병에 굴복하고 상식이라는 이름의 반지성주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주현우씨도 보수언론이 그의 진보신당(노동당) 당적을 들먹이며 정치적으로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면 비순수고 정치라는 것이냐. 조용히 순응하고 안녕치 못해도 안녕타 생각하며 살면 순수하고 비정치적인 것이냐”고 비판했다.

    2008년 촛불 시위는 87년 민주화 투쟁과 비견할 만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되지만 한편에서는 그 한계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보수성향 네티즌들의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는 당시 촛불시위를 ‘광우뻥’이라고 폄훼하며 선정적인 선동 때문에 촛불시위가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본인들은 그러한 선동과 세뇌에서 벗어났다고 자처한다.

    반면 일베와 대척점에 서있는 네티즌들 역시 2008년 촛불시위 때 운동권 단체들의 역할이 부정적 효과를 낳았다며 자신들의 시민적 지위와 그들 (정치적) 단체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현우씨의 대자보와 꼬리를 물고 있는 응답 대자보라는 동일한 현상을 두고도 향후 이 흐름을 어떻게 이어가고 연결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의 충돌이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2008년 촛불시위에서부터 갈려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전부터 있기는 했었다. 노조가 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파업을 벌이면 ‘노조 이기주의’라고 싸잡아 매도하면서도, 자기 안위와 상관없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벌이는 파업에 대해서는 ‘정치파업’이라고 낙인을 찍기도 했다. 이는 비단 보수언론의 지적만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보수언론과 당시 한나라당측이 끈질기게 제기했던 ‘배후세력’설은 시위대 스스로에게 “우리는 평범한 시민입니다”라는 답을 이끌어내도록 만들었고, 이는 결국 “우리는 정치적이지 않습니다”라는 자기방어로 귀결시켰다.

    그리고 실제 많은 시위대들은 대통령 퇴진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정치단체나 노동조합, 운동권 세력과 동류로 분류되기를 두려워했다.

    이 흐름은 여전히 지속되어 ‘안녕’ 대자보 현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순수한 청년의 행위를 운동권이나 정치세력이 개입해 망치지 말라고. 물론 운동권이나 기존 정치세력 특히 진보정당들의 헛발질과 구리구리한 낡은 관습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정치, 탈정치에 대한 강요의 흐름은 결국 다양한 멤버십과 복수의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을 발가벗기고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호명 외에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작은 2008년 촛불시위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운동권’이나 ‘운동권 주변부’라고 정체화하고 있는 10여명의 2~30대에게 2008년 촛불시위에 대해 물었다.

    16일 오전에 급하게 질문지를 작성해 이메일로 보냈다. 현재까지 몇명에게 답장이 왔고 몇몇은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했고, 나머지는 17일 중으로 답장을 주기로 했다.

    이들 이야기에서 2008년 촛불시위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그 안에서 극복해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마저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구시대적 운동권적 사고방식이라고는 할 말은 없다.(계속)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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