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바첼라트 결선투표 승리
    2013년 12월 17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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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전 대통령이었고 이제는 미래의 대통령이 될 바첼라트 후보가 일요일의 결선투표에서 승리했다. 90%의 개표율에서 바첼라는 62%를 얻어 38%를 얻은 우파의 마테이 후보를 앞섰고, 마테이 후보도 패배를 인정했다.

온건 사회주의자인 바첼라트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다. 2002년에는 남미에서 처음으로 여성 국방장관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UN 여성특보로 일을 했다. 그녀의 다음 대통령은 보수적인 피네라 대통령이었는데 그는 임기 동안 민주적 변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시위를 겪었다.

바첼라트는 2006년 선거에서는 사회당, 기독교민주당, 민주사회당, 급진당 등 4개 정당으로 구성된 중도좌파연합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의 후보였고, 이번 선거에서는 이 콘세르타시온 참여 정당들과 공산당, 시민좌파당 등이 합류하여 확대재편된 중도좌파연합 누에바 마요리아(Nueva Mayoria)의 후보로 나섰다.

15일 결선투표에서 투표하고 있는 바첼라트

15일 결선투표에서 투표하고 있는 바첼라트

바첼라트는 이번 선거에서 기업의 법인세 인상과 무상교육 확대와 공공교육 개혁을 위한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임금 격차를 줄이고 환경 보호와 독재시대에 만들어진 헌법의 개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율이 낮아진 것은 바첼라트가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 강한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칠레 시민들은 피노체트의 군사독재 기간인 1973년부터 1990년 사이에 부와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었던 것을 비난한다.

피노체트는 국가의 수자원을 매각하면서 토지개혁을 중단시켰고 공공교육에 대한 재정지원과 정부의 관할을 중단하면서 소수 엘리트를 위한 교육시스템을 유지해왔다. 또 그는 헌법에서 야당의 승리를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독소조항을 만들기도 했다.

경쟁상대였던 마테이 후보는 피노체트에 대한 지지와 민주화 부활 이후 억만장자 기업자 출신의 첫 번째 중도우파 대통령이었던 피네라의 낮은 지지율, 최근 조사에서는 34%의 지지율로 마테이 후보의 패배는 이미 예상되었다. 바첼라트는 퇴임 당시의 지지율이 84%에 이르렀다.

이번 칠레 대선은 유권자 등록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전에는 유권자들이 직접 등록하는 시스템) 이후의 첫 선거였고, 유권자 숫자도 8백만명에서 1천3백만명으로 확대되었다. 투표는 유권자들의 선택이었는데 이번 1차 선거에서의 투표율은 50%에 불과하여 우파와 좌파 양대 거대정당들을 당황하게 했다.

또한 이번 선거는 칠레에서 처음으로 나름의 인생 여정을 가진 두 명의 여성 후보가 맞붙었던 선거이기도 했다.

바첼라트와 마테이는 둘 다 공군 장성을 아버지로 두었는데, 피노체트 군사쿠데타를 지지하여 출세와 권력을 누렸던 마테이 아버지와 쿠데타를 반대하여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여 감옥에서 사망했던 바첼라트의 아버지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생사는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다. (관련기사 링크)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생산국이며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고 실업율도 낮고, 민주주의도 안정화되어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국가이다.

하지만 많은 칠레 시민들은 구리 생산을 통해 형성된 부가 공공교육이나 건강보험제도 등을 개선시키는데 더 많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열망이 바첼라트를 당선시킨 원동력이었다.

한편 지난달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와 함께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중도좌파 진영은 상·하원 모두 다수당 지위를 확보했다.

하원(전체 120석) 의석 분포는 현재의 중도좌파 57석, 보수우파 55석, 무소속 8석에서 중도좌파 68석, 보수우파 48석, 무소속 4석으로 바뀐다. 상원(전체 38석) 의석은 중도좌파가 20석에서 21석으로 늘고 보수우파는 16석을 그대로 유지하며 무소속은 2석에서 1석으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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