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수 좋은 날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 '의심은 전염된다'
        2013년 12월 16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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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동안 돈 구경을 못한 떡볶이노점 아줌마는 밀려드는 손님에 흥이 났다.

    마차를 펴자마자 꼬마김밥 손님이 있더니 튀김을 할 때도 제법 손님이 모여들었다. 장사란 게 신기하게도 사람이 많으면 더 모여든다. 오후 4시 피크타임 때는 마차 안이 북적북적했다.

    “여기 노점이 있었네?” “응. 얼마전에 생겼더라고. 여기 괜찮아”

    오후에는 잘 없는 젊은 손님들까지 밀려들었다. 5시가 되어 손님이 좀 뜸해지는 듯 하더니 길 위쪽에 있는 국민은행에서 언니들이 나와 3만원어치를 포장주문을 했다. 아줌마는 속으로 ‘아싸!’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아줌마, 오늘 최고 매상을 올릴 수 있겠다.

    잉어빵을 하던 노점 아줌마가 품목을 떡볶이로 바꾸고 나서도 매출은 그닥 시원치 않았다. 오랫동안 노점을 하던 분들은 품목이 바뀌거나 새로 노점이 생기면 ‘여기 노점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기억하는데 최소 3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다고 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당장이라도 손님이 밀려들거라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처음이라 들어가는 돈은 많고 손님은 별로 없으니 이러다가 망하면 또 어떻해야 하나 우울했던 아줌마다.

    그러나 이 날은 달랐다. 국민은행 언니들이 포장을 해 갔을때 이미 매상은 전날보다 높았다. 바빠서 돈 셀 시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저녁 7시 무렵 각각 온 손님이 네 명이나 한꺼번에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줌마 입에서는 침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신이 난 아줌마가 한 명씩 주문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 한 명이 마차안으로 들어오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아줌마, 어제 내가 차로 지나가면서 인사했는데 왜 모른 척 하셔!”

    “네? 언제요?” “어제 아줌마 마차 밖으로 나왔을 때 내가 마침 지나가고 있어서 손 흔들며 인사했는데, 모른 척 하고 다시 들어가더라고. 그건 그렇고 떡볶이 만원어치랑 순대 만원어치랑 좀 싸줘요. 우리 직원들 가져다주게”

    각각 들어온 네 명이 제각각 주문을 하면서 간장 달라, 핫도그에 설탕도 발라 달라 얘기하고 있는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아줌마는 ‘이만원 더하고!’라는 계산을 했다.

    떡볶이를 담으며 한쪽에 새로 떡을 올리고, 순대도 새로 삶고, 주문에 따라 튀김을 다시 튀기고 순대를 썰고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혼자 온 네 명의 손님들은 무언가를 계속 더 달라고 아줌마에게 주문을 하고 있었다. 이 북새통에 2만원어치를 주문한 아저씨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지갑이 없는지 큰 목소리로 사무실에 전화를 한다.

    “어. 야. 난데, 지갑을 두고 나왔어. 여기 안경점 앞에 노점 있잖아. 이리로 지갑 좀 가지고 나와! 뭐? 옆 사무실 사람들도 있다고? 알았어, 알았어. 더 사가지고 갈게”“아줌마, 여기 튀김 만원어치도 포장해줘요”

    “네~~~~~”

    아줌마는 다른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늘 얼마를 버는가에만 관심이 쏠렸다.

    “아줌마! 내가 지갑을 안가지고 와서 사무실 직원애가 들고 나올 건데, 내가 급하게 부품을 사야하는 게 있는데, 문을 7시반에 닫거든. 금방 지갑 가져올테니 10만원만 빌려줘요”

    “네? 10만원이요?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아줌마.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줌마 나 저기 길 건너 신흥상회잖아. 나 몰라요? 내가 지난번에도 많이 사갔는데. 금방 부품 받고 지갑 챙겨서 올 테니 음식을 포장해두고 빌려줘요. 나 무지 급해!”

    아저씨가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아줌마는 잠깐 넋이 나갔다. 가스불 네 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 네 명의 손님들이 각각 아줌마에게 말을 걸고 그 아저씨는 제대로 쳐다보니 정말 아는 사람 같았다. 그 광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아줌마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과 몸이 따로 움직였다.

    “아저씨. 10만원은 없는데…”

    “8만원 있어? 그럼 8만원만 빌려줘요. 몇 개 안 급한 거는 내일 사야겠네”

    아저씨가 손을 내미는데 아줌마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빨간색 고추장 통에 들어있는 돈을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8만원을 잡아서 내밀자 그 아저씨 잽싸게 그 돈을 낚아챈다.

    ‘속았다!’ 아줌마는 그 8만원이 손에서 떠나자마자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아저씨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네 명의 손님들은 여전히 아줌마에게 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줌마는 아직 최면에서 덜 깬 사람 같았다.

    아줌마의 그날의 매출은 24만원이었다. 물론 그 아저씨의 3만원까지 받았으면 27만원이었겠지만. 재료비와 가스비 등을 빼고 나면 10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 남았을 테다.

    손님이 썰물처럼 나가고 더 이상 손님은 오지 않았다. 순대 만원, 떡볶이 만원. 튀김 만원어치 포장한 검정 비닐봉지 세 개만 마차에 덩그마니 남았다.

    아줌마는 그 검정 봉다리를 쳐다보며 아저씨를 기다렸다. 혹시 올지도 모른다고 애써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아줌마도 알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절대 안올 거라는 것을.

    아줌마는 열시가 넘어서야 그 사실을 인정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마차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줌마는 울었다. 8만원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아줌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였다.

    아줌마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어쩐지, 운수가 좋은 날이더라니…’

    사진 524

    8만원의 교훈

    내가 열 시가 지나서도 마차를 정리하지 않고 있으니 경비아저씨가 무슨 일인가 마차로 왔다. 창피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 경비아저씨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아저씨는 한마디로 정리해주셨다.

    “되게 뜯겼네.”

    아저씨 말로는 여기 그런 사람들 많다고 한다. 노점뿐 아니라 가게마다 한 번씩은 대충 다 당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아저씨도 한 번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건물 임대 써놓으면 건물 보는 것처럼 들어와서는 지갑이 없다고 차비 빌려 달라고 해서 뜯긴 적이 있다고.

    그 사람들 그런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거라 그 순간엔 뭐에 홀린 듯 넘어가기 마련이라고. 아마 마지막 네 명 손님이 바람잡이였을 거라고 한다.

    아저씨의 이야기가 약간의 위로가 되었지만 아저씨나 옛날에 한 번씩 다 당해봤다는 노점상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1~2만원이 고작이지 나처럼 많이 뜯긴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6년엔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번호를 나눠주더니 추첨해서 당첨되면 금시계를 준다며 번호를 부르는데 ‘32번!’ (나는 아직 그 번호를 기억한다)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관세인지 내야 한다고 3만원을 내고 받았던 남녀 금시계. 그때는 정말 금시계라고 믿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선배들에게 자랑했다가 ‘너 바보냐’ 소리를 들었어도 나는 진짜 금시계라고 믿었다. 결국 금은방에 감정을 받으러 들고 갔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얘기를 들었어도, 나는 한동안 그 금시계를 버리지 못했다.

    그 다음해인가 역시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트럭에 생선을 가득 싣고 온 아저씨가 급한 일로 서울로 못가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사정인데, 광어랑 갈치랑 횟감만 10만원이 넘는 한 상자를 4만원에 준다고 해서 정말로 기쁘게 한 상자를 사들고 집에 간 적도 있다.

    나에게 떡볶이 양념을 알려준 노점언니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언니는 혀를 끌끌차며 나를 위로했다.

    “액땜했다고 생각해. 8만원으로 큰 경험했네. 앞으로 다시는 당하지 않게 수업료 냈다고 생각해”

    나는 8만원으로 ‘사람을 다 믿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믿음에 관하여

    학생운동 시절. 집을 가출했다가 잠시 들어갔을 때 엄마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셔서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빠는 나를 불러 앉히시더니 물었다.

    “의선아, 너한테 믿음이 있니?”

    “네. 있어요.”

    목사인 아빠가 묻는 믿음은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답한 믿음은 신앙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나의 대답에 한마디만 하시고는 내가 계속 학생운동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다.

    “네 믿음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

    이후에 대중운동단체에 있으면서 나는 의심은 확실히 전염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의심이 시작되면 그 의심은 진실이 되었다. 의심의 기술은 늘어나고 그것은 주변사람들에게도 습득된다. 내가 황당한 의심을 받았어도, 그 황당함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의 기술로 습득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소스라침 이후에 나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도 알았다. 의심을 버리면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의 정면을 보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수좋은 날의 경험은 8만원의 아까움이나, 어처구니없이 속았다는 자책이나, 힘들게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돈을 뜯는 인간들에 대한 미움보다 ‘사람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이 내게 남겨지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었다.

    (운수좋은 날은 하편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필자소개
    전직 잉어빵 노점상. 반빈곤 사회단체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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