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운명은
    중계권 계약의 불공정성, 바르샤와 레알 독점력은 더 강화
    By 시망
        2012년 06월 17일 09:3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빠진 월드컵이라고도 불리는 유로 2012가 지난 8일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공동개최로 개막했다.

    개막 전에는 우크라이나의 인종차별 문제로 우려를 샀고, 개막 후에는 폴란드와 러시아 훌리건들의 폭력 사태로 얼룩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우려와 사고에도 불구하고 월드컵과 유로를 통해 새로운 전술이 선보였던 과거처럼, 이번 유로에서도 놀라운 전술이 시도됐다.

    세계 랭킹 1위 팀인 스페인이 그 주인공. False9(가짜 9번, 스트라이커를 쓰지 않고 미드필더가 가짜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는 전술을 말한다. 제로톱, 4-6-0전술이라고 한다)을 메인 전술로 들고 나온 것이다. 94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알베르토 파헤이라는 2003년 축구 코칭 관련 강연회에서 “미래의 축구는 4-6-0 전술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파헤이라의 선견지명도 대단하지만, 스페인이 더 대단한 점은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스페인이 스트라이커가 없느냐 하면 페르난도 토레스나 페르난도 요렌테처럼 걸출한 스트라이커를 가지고 있음에도 False9전술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스페인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처럼 유로2012에서 우승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 말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번 유로에서 보여준 스페인의 전술이 세계를 또 다른 지점으로 이끌 것이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다.

    이렇게 축구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스페인이지만, 현재 경제사정은 말이 아니다. 꽤나 심각한 모양이다. 한국 경제에도 까막눈인 내가 스페인 경제위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까닭은 경제위기 때문에 빅클럽의 유명 선수들이 스페인을 탈출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경제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한 몇몇 빅클럽의 선수들을 예를 들면서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면 이 선수들의 주급을 감당하지 못하는 클럽이 결국 선수들을 팔아치우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스페인 경제위기로 빅클럽 선수들의 엑소더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맨유를 떠날 때 진보적 언론인에게 ‘그 알량한 노예에게 연대를 보낸다’는 조롱을 들었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도 선수를 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발렌시아, AT마드리드, 세비야의 선수들은 다음 시즌, 혹은 다다음 시즌에 못 볼 가능성이 높다.

    스페인 노동자들의 집회

    이렇게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중계권 계약의 불공정에서 기인한다. 프리메라 리가는 다른 유럽리그들과는 다른 독특한 계약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비롯한 여러 리그들은 리그 사무국에서 중계권을 관리한다. 이에 비해 프리메라 리가는 클럽에서 중계권 협상을 각자 한다.

    이것이 무슨 문제를 낳게 되냐면 중계권료의 불평등한 분배를 필연적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1부 리그에 승격한 팀, 비인기 팀에 대한 배려가 없이 단순히 약육강식으로 중계권 협상 창구가 열리면서 스페인 클럽의 중계권료의 불평등은 극에 달했다.

    다른 리그와 비교를 해 보자면 독일 분데스리가의 경우 가장 중계권료를 많이 버는 클럽과 그렇지 못한 클럽의 차이는 약 두 배 가량 된다. 프랑스 르 샹피오나의 경우 약 네 배 가량 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경우는 경우 1.5배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럼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날까? 무려 12배 가량의 차이가 난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버는 정도와 최하위 클럽들이 버는 차이가 이 정도나 난다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그 차원에서의 중계권을 관리하고 그에 따른 분배율을 정하는 문제 등이 지난 해부터 진행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에 경제위기가 들이닥치게 된 것이다. 자 그럼 이 경제위기로 인한 타격을 가장 먼저 입게 되는 팀들은 어디가 될까?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IMF 때를 떠올려 보면 될 것이다.

    바르샤와 레알의 경기 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IMF로 인해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주로 중소기업과 서민들이었고 재벌들의 영향력은 그 이후 더 확장됐음을 기억한다면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도 비슷하게 흘러갈 공산이 크다.

    방송국에서 중계는 해야 한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써야 할 예산은 한정됐다. 당신이 방송국 관계자라면 어느 팀 경기를 중계하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레알과 바르샤에 몰빵하는 것이다. 이미 레알과 바르샤는 글로벌한 클럽이며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자이언트 클럽이니까.

    즉, 레알과 바르샤에게 떨어지는 중계권료는 줄이지 않으면서 중소클럽의 중계권료를 줄이는 방식으로 움직일 공산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해외 언론사에서 말하는 빅클럽 스타들의 엑소더스는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보였던 빈익빈 부익부의 가속화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도 보이면서 생기게 되는 부작용이다. 가뜩이나 경쟁력이 있는 레알과 바르샤에 부가 더 집중되면서 리그의 경쟁력 전체가 약화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리그 우승팀이 레알 혹은 바르샤로 고정되면, 누가 그 리그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인가? 레알과 바르샤를 만나면 질 것을 예상하고 베스트라인업을 내지 않게 되는 상황이 정상적인 리그인가? 유스에서 선수를 잘 키워도 언젠가는 떠난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유스에 신경을 쓸 이유가 있을까?

    지금도 그런 모습을 가끔 보이는데 스페인 경제위기는 이런 모습을 더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경쟁이 없다면 비즈니스 역시 없다. 다른 모든 경기와 관계없이 레알과 바르샤가 맞붙는 단 두 경기로 우승이 결정난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그 한 시즌이 지루할지를. 실제로 레인저스와 셀틱이 장악하고 있는 스코틀랜드는 이 둘이 맞붙는 올드 펌 더비의 숫자를 늘렸다. 흥행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올드 펌 더비의 가치는 하락했다.

    지금 유로에서 보이고 있는 스페인 축구의 아름다움은 스페인 리그 축구 전체의 힘이고 그에 따른 보너스 일 뿐이다. 그런데 본봉이 줄어든다면? 보너스 역시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스페인 경제위기로 인해 레알과 바르샤의 양민학살은 편안히 구경하겠지만, 스페인 국가대표의 아름다운 축구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경제위기가 재벌이 아닌 서민에게만 어려움을 준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필자소개
    지역 공동체 라디오에서 기생하고 있으며, 축구와 야동을 좋아하는 20대라고 우기고 있는 30대 수컷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