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문턱 낮추는 변호사 친구들
[책소개]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부키)
    2013년 12월 15일 02: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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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로펌을 자처하며 법의 문턱을 낮추고, 법을 무기로 인권의 경계를 확장시켜 온 공감의 지난 10년 활동을 담았다. 이 책에는 직접 인권 현장 속으로 들어가 고군분투해 온 젊은 변호사들의 이야기가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와 함께 펼쳐진다.

이들이 전하는 우리 인권의 현주소는 때론 기가 막히고 때론 먹먹하여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하지만 읽고 난 뒤 무거운 마음만 남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멀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법이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음을, ‘무전유죄’ 세상에서 더디지만 분명한 ‘한판 뒤집기’가 가능함을 확인시켜 주는, 흥미진진한 희망의 기록이다.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며 혼자 노동법을 읽던 전태일이 분신한 지 4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법의 테두리 밖에 내몰린 수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법률 서비스의 문턱이 너무 높아서, 이미 존재하는 법이 불합리해서 피해를 받는 것은 늘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이다. 법의 보호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변호사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젊은 변호사들이 뭉쳐 공감을 만들었다. (28쪽)

2004년 1월 문을 연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에는 늘 ‘국내 최초’라는 수식이 따라다닌다. 물론 이전에도 본업을 영위하는 틈틈이 무료 인권 변론이나 공익 활동에 나서는 변호사는 많았고, 시민사회단체에 상근하는 변호사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지만, 이런 활동을 ‘전업’이자 ‘전문 영역’으로 삼은 변호사들의 조직이 등장한 것은 공감이 처음이다.

공감은 장애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여성, 성소수자, 난민, 노숙인, 철거민 등 법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권리를 되찾는 법률 상담이나 공익 소송을 전문으로 하고, 아예 제도 자체를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 입법 운동, 연구조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변호사에게 수익을 가져다주기 어려운 영역의 일들이다.

공감은 수임료를 받지 않고 영리 활동도 하지 않는다. 변호사들 연봉은 3000만 원으로 정하고 시작했다. 오로지 풀뿌리 모금에 기대, 100퍼센트 기부로 운영된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에 기대지 않는 비영리 공익 로펌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가 어렵다.

이 책의 1부 ‘소외된 사람들의 로펌을 만들다’에서는, 출발에 얽힌 이야기부터 활동 영역과 운영 방식, 지향하는 가치, 공감이 일군 성과 등에 이르기까지, 공감이 대체 무얼 하는 곳인지 소상히 알려준다. 별면으로 다룬 ‘우리나라 인권 변론의 역사’를 통해서는 공감이라는 조직이 등장하기까지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짚어 볼 수 있다.

  • 희망변론

무료 법률상담, 공익소송에서 입법운동까지
소수자 인권 확장해 온 고군분투의 드라마

공감은 어느덧 중요한 인권 사안마다 등장하는 이름이 되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겠지만, 공감이 법률 활동가로서 힘을 보탠 여러 성과들 가운데에는 우리 모두가 주목했던 이슈나 우리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변화도 많다.

영화 <도가니> 흥행으로 촉발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무분별한 해외입양에 브레이크를 건 입양특례법 개정, 아시아 최초로 시행된 난민법 제정,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반영한 학생인권조례 통과 등을 이끄는 데 공감이 법안 작성, 기자회견, 공청회 발제 등 주도적 역할을 했다.

입법 운동 외에도, 다양한 공익 소송에 변호인으로 나섰다. 주민소송제도 도입 이래 최초의 승소로 기록된 사건(도봉구 주민이 구청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대리모로 이용당한 베트남 여성의 ‘씨받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소송, 장애인 참정권 차별에 대한 구제소송, 이주노조 위원장 강제출국에 맞선 헌법소원 등은 승소나 패소를 떠나 우리 사회의 인권 사각지대를 드러내고 그 경계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법도, 인권도 아직은 미완성,
부조리한 법의 현주소를 뜨겁게 고발하다!

이 책은 변호사들이 집필한 만큼, 단순히 인권 현실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왜 그런 현실이 만들어지는지를 법과 제도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대단하게만 느껴졌던 법이 얼마나 허점투성이에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법이 있다 해도 사법부와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 왜곡해 적용을 피하는지, 법과 제도의 현주소가 얼마나 부조리한지가 고스란히 이 책의 2부 ‘인권, 소리 없는 아우성’에 담겨 있다.

결혼이주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중고령 여성노동자, 난민, 주거취약계층 등 총 일곱 개 영역을 담당 변호사가 어떤 문제가 있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들려준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희망’이라 부를 수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가진 자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던 법을 공공의 편으로 가져와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낸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법을 ‘제대로’ 사용해 보이는 변호사들의 노력과 그것이 가져온 의미 있는 진전은 독자들에게 가슴 뭉클하면서도 통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공익변호사’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젊은 변호사들

공감의 출발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있던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사법연수원 특강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가 법률 시장의 블루오션이 될 겁니다. 변호사의 공익 활동은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가족들도 자랑스러워하는 1석 3조의 효과를 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법연수생 염형국 변호사가 훗날 공익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박원순 시장을 찾아갔고, 아름다운재단 베란다에 책상 4개를 놓고 출발한 공감의 1호 변호사가 된다.

법 없이 살 수 있다는 시대도, 변호사가 소송 업무만 하는 시대도 끝났다. 일상과 법이 가까워지면서 다양하고도 문턱 낮은 법률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공감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공감의 첫 사업이자 대표적 사업은 ‘변호사 파견 프로젝트’였다. 인권단체에 파견 나가 법률 지원을 하면서, 인권 현장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든든한 파트너십도 형성했다. 이처럼 시민사회운동과 결합한 변호사 활동을 통해 ‘법률 활동가’로 성장한 공감은, 바야흐로 전문 공익변호사의 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 공감의 활동에 ‘공감’하는 기부자는 물론 변호사와 예비 법조인이 늘고 있다. 여러 로펌에서 공익 활동을 하고 싶다며 공감에 중개를 요청해 오고, 최근에는 ‘희망을만드는법’ ‘재단법인 동천’ ‘공익법센터 어필’ ‘퍼블릭 법률사무소’ 등 공감과 유사한 성격의 공익 로펌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법연수원생들이 공익변호사를 지원하는 기금도 만들었다.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청소년들 대부분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 같은 인권변호사를 꿈꾸는 데서 시작한다. 로스쿨이 문을 열고 가장 먼저 생긴 학회도 인권법학회다. 현재 전국 25개 로스쿨 가운데 23개 로스쿨에 인권법학회가 만들어졌고, 여기서 열띤 인권 토론을 벌이는 예비 법조인들의 롤 모델은 단연 공감이다.

공익변호사로 산다는 것

변호사로서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소수자 인권 영역에 발을 들이고 나서, 어찌 고민과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이들 각자의 사연과 솔직한 심정이 잘 녹아 있는 에세이(3부 ‘블루오션을 항해하는 변호사들’)를 통해 공익변호사로 사는 삶의 가치와 희로애락을 들어 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어떻게 먹고 살아요?”

“누릴 수 있었던 고수익과 특권을 포기하고 만족하나요?”

“다른 중요한 문제도 많은데 소수자 인권까지 챙겨야 하나요?”

공감 변호사들이 수없이 들어 온 질문들이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진솔한 대답들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처음 현장에 파견 나갔을 때 변호사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많이 겪었다. ‘인권 활동을 경력으로 이용하려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 깃든 눈빛이었다. 우리의 선의를 이해해 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그렇지만 믿어 달라고 말한들 없는 신뢰가 쌓이겠는가. 결국 변치 않는 활동으로 보여 주는 수밖에 없었다. (…) 2~3년이 흐른 후, 냉랭하기만 하던 활동가가 따뜻한 눈길로 환대해 주었을 때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인권활동가의 칭찬은 공감 변호사들을 춤추게 한다. (224쪽)

어떻게 먹고 사냐고? 물론 우리도 월급을 받는다. 처음에 연봉 3000만 원으로 정해 두고 시작했는데, 지금도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2013년 기준으로 변호사 1인당 평균 연봉이 8735만 원이라니, 평균에 한참 못 미치긴 한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 근로자의 평균치는 된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는 말씀. 변호사라고 꼭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만 내려놓으면 변호사 스스로 직업에서 더 많은 창의성과 보람을 찾을 수 있고, 법률 서비스의 문턱도 낮아질 텐데 말이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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