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우(親友)와 한우(韓牛)고기
    [파독광부 50년사] 오랜 벗과 언양 산골짜기를 간 연유
        2013년 12월 12일 05: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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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어 달 후에 독일 친구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한국의 LG회사와 제휴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한국으로 갈 예정이니 나더러 좀 수행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방학이라 또 쾌히 응낙하고 그와 함께 한국으로 갔다. 이번에는 간 김에 며칠 더 머물고 올 계획이었다.

    삼일 간 LG 중장비를 담당했던 이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아무 결정적인 해결을 보지 못하고 대개 조건적이 아닌 계약 체결의 의도를 표명한 후에 다음에 또 독일에서 만나기로 하고 친구는 독일로 떠났다.

    친구가 귀국한 후 나는 부산과 어머님의 묘를 둘러보고, 보고 싶던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서울에 다시 올라와서 며칠 후에 독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내가 부산에서 만나고 싶어 했던 친구 영기와 연락이 되었다.

    그는 몇몇 사람들과 사업차 회담 중이라고 하며 내일 만나서 점심을 같이하자고 했다. 나도 반가워서 그렇게 하자고 했더니, 내일 아홉시 반에 공항의 국내청사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점심 먹을 사람이 무슨 일로 그렇게 아침 일찍, 더욱이나 또 공항에서 만나자고 하나? 이상하게 여겼으나, 아마 내일 자기가 어디에 사업차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공항에서 만나자 하는구나, 속으로 짐작하고 내일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영기군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곁에 누님도 함께 있었다. 나는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를 묻고 받고 있었는데 영기 군이 시간이 되었으니 비행기를 타자고 했다.

    내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니 영기 군이 오늘 자기가 점심을 내기로 했으니 아무 말 말고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다. 나는 영기 군과 누님을 만난 기쁨에 어디에 가도 좋으니 가자는 대로 가겠다면서 부산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누님은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놓지 않으셨다.

    공항에서 우리는 택시를 잡아 언양으로 갔다. 나는 영기군의 사업체 분점(分店)이 언양에도 있는가 싶어,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님은 내가 옛날에 지게를 지고 자기와 부모님을 무척이나 놀라게 했다고 흘러간 추억을 풀어놓았다.

    영기 군의 부모님은 별세하셨다고 했다. 나를 친자식처럼 사랑하시던 그 인자하셨던 부모님을 생각하며 인간의 삶이 너무도 짧음을 속으로 한탄하고 있었다. 언양에 도착했는데 택시는 계속 산골짜기를 향해서 차를 몰았다.

    언양

    한참 가더니 맑은 골짜기 물이 철철 흘러내리는 냇가에 서 있는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나는 여기가 영기 군의 별장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가정집 같지가 않았다. 대문에 들어서니 식당이었다. 아주 검소하게 지은 촌가(村家)로 손님이 들끓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서울에는 식당이 없어서 밥 한끼 먹으려고 비행기와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왔느냐고 하니 그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여기에 와야 한우(韓牛)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도 이해가 안 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반가운 나를 대접하려고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데리고 온 그들의 정성에 감사하고 감동했으나 그러한 행위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내 의견을 똑똑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 돈이 썩어빠지고 죽었던 친구와 누님이 다시 살아나서 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반기어 국수 한 그릇을 사준다 하더라도 기쁘고 즐겁게 맛있게 먹고 대접 잘 받아서 감사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 생각을 그 정다운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가며 표현했다. 워낙 친하기 때문에 숨김없이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었고 또 워낙 친하기 때문에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영기 군이 입을 열었다.

    “내가 비록 천만가지 욕을 들어도, 자네를 만나면 또 이렇게 대접하고 싶을 것이니, 나를 나무라고 싶으면 우리의 우정을 나무라게. 하지만 다음에는 자네가 원하면 남대문시장 길거리에서 돼지 족발을 사 먹자.”

    우리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누님은 내 손을 꼭 쥐고 놓기를 아쉬워했다. <다음계속>

    필자소개
    파독광부 50년사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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