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전에 대한 단상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저항문화와 범죄 공간
        2013년 12월 11일 01: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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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나와 작은 인연이 있는 송년모임에 참석했다. 특별히 이름이 있는 것은 아닌데 대충 ‘22대 총학모임’이라고 부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88년 겨울부터 89년 여름까지 고려대학교 22대 총학생회에서 집행부서 혹은 주변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친목모임이다. 사실 나는 88년 겨울에 우연히 총학생회장 선거를 도와준 것뿐이라 큰 소속감은 없지만 그 후 개인적인 인연으로 매년 참석하고 있다.

    역사적일 것까지는 없지만 한국의 학생운동사에서 1988년 겨울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는 작지만 나름 의미를 가질 것이다. 당시 누가 보아도 NL계열에 비해 별 볼일 없는 소수 조직들의 이합집산에 불과했던, 범PD계열 총학생회장 후보가 거대한 산을 넘어, 전국 총학생회 중에서 최초로, 유일하게 이른바 PD계열 학생회가 구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나름 의미를 가지고 탄생한 22대 PD계열 총학생회는 그 자체로 결함이 있었다. 문제는, 명분은 있었으나 너무 작은 소수파들의 잡탕이라는 점이었다.

    기존 NL 계열 학생회의 지나친 정치지향성을 극복하고 학내 민주화로 선거 이슈를 전환, 선점하여 대중의 힘에 의해 당선은 되었으나 문제는 대중과 총학생회를 이어주는 중간 활동가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제대로 될 수가 있었겠는가? 결국 1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사퇴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퇴한 PD계열 22대 총학생회의 기억은 패배와 좌절이었다. 준비되지 못한 대중운동에서의 실패는 잠깐의 후퇴가 아니라 심각한 내상을 동반했고 결국 조직 자체가 깨지고 희망을 외면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되어, 실제로 집행부서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후 운동과는 무관하게 한 사람의 샐러리맨으로 보통의 사람을 살아가며 가끔 과거의 기억을 안주 삼아 씹어대고 배설하는 정도이다.

    물론 그런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과 주변의 무너져가는 현실과 무기력한 자신을 보면서 해결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잡아보려 애쓰고 있지만 허망한 꿈인 것을 그들도 안다. 아무런 기반 없이 파편화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좀 서두가 길었다. 이렇게 개인적인 모임이야기를 하면서 좀 거창한 배경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패배자들의 한풀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중운동의 방식과 사회변혁운동의 현재에 대해 모임에서 깊게 얘기되었던 주제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제는 지금의 통합진보당 사태와 깊게 관련된다.

    그러면서 얘기가 진행된 것이 바로 ‘임미리’의 글(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과 관련된 문제였다. 주지하듯이 ‘임미리’의 글은, 지난 번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문제를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고립이라는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두 개의 광주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그 중 하나인 경기도 광주는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기억과 그 재현을 통해 형성된 경기동부연합의 진지전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공안이데올로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운동의 동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의 문제이다.

    광주대단지

    60년대말 철거민들을 강제 정착시켰던 광주대단지(성남) 모습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심화, 고착화되어 갈수록 진보적인 변혁세력은 자신의 존재기반을 점차 잃어가면서 여러 부분에서 차츰 체제내화 되어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기반으로서 지역공간을 선점하게 된다.

    이는 지역공간의 특수성과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성남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우리만의 특수성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전후 급진적인 개혁세력들은 급속히 사라져버렸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단단한 사회이다. 이러한 사례는 서유럽에서도 다양하게 목격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일정한 정도의 작은 성과를 남긴 이후에 더 큰 형태의 뚜렷한 정치세력이나 성과 등으로 전화되지 못한 채 그냥 그 자체로 화석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것은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의 한계라고 생각되며, 제갈공명은 천하 통일을 위해 천하삼분론을 내세우며 촉나라를 근거지로 하는 진지를 세웠으나 이는 그 자체로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들어오기는 쉬웠으나 나가기는 어렵고 작은 것을 지킬 수는 있으나 큰 것을 얻을 수는 없는 진퇴양란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지금의 성남 구시가지는 그 자체로 빈곤과 저발전, 범죄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더욱이 광주대단지 사건은 당초 세상이 성남시에 대해 갖고 있던 폭력과 범죄의 이미지에 ‘공포’를 덧씌우기 충분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층 거주지역에 대한 도시 공간의 범죄적 이미지화(범죄공간)를 통해 게토로 고립시키고 이러한 공간적 고립이 다시 도시공간을 주류로부터 소외시키는 범죄와 공포, 소외의 순환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임미리의 언급처럼 성남은 빈곤으로 인해 식인도 마다하지 않는 공포의 공간으로 철저하게 고립되었으나 이런 고립이 오히려 사회운동에는 매우 알맞은 자양분이 되어 경기동부연합으로 대표되는 지역운동세력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고 이런 환경에서 길러진 활동가들이 현재 통합진보당의 존립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와의 소통이 막힌 저항문화(반문화)는 그 자체의 소수 조직화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외부의 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조금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마피아도 원래는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독립 세력이었다. 또한 탈레반도 소련이라는 외세에 저항하는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가 어떠한가? 전자는 마약밀매, 매매춘, 청부암살을 자행하는 사회의 독버섯이 되었고 후자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으로서 반제투쟁을 빌미로 여성 및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노동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주체혁명, 백두혈통의 항일무장투쟁사 이야기는 반제투쟁을 빌미로 한 강력한 공포정치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 정의를 공평함에 비유한다. 그러나 정의 없는 민주주의가 형식 논리로 빠지기 쉽듯이 민주주의 없는 정의도 그 자체가 공포가 될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진성당원이 4만 명이라고 한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해 온 사람들이다. 누군들 그들을 일컬어 진보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분명 사회변혁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충실히 자신의 많은 것을 바쳐왔다.

    그러나 민주적 소통으로 스스로를 유연하게 만들지 못하는 정의는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없는 정의는 주장하는 슬로건이 아무리 민주적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전체주의 이듯이 아무리 과거의 민중성에 대한 기억과 그 재현을 통해 형성된 진보성도 운동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역사에 장애물인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필자소개
    배상훈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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