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계획에
    수많은 '밀양'의 자리는 없다
    [에정칼럼] 차라리 국가에너기본계획제도를 폐지하라
        2013년 12월 11일 11: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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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5년까지 한국 사회가 소비하게 될 에너지 수요의 ‘예측’과 이를 공급할 계획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것이 지금 막바지에 들어섰다. 어제(10일)에는 국회 관련 상임위에 보고가 이루어졌고, 오늘(11일)은 그에 대한 공청회도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차라리 이 기본계획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국가 최상위 에너지계획으로서 에너지에 대한 기술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수용성까지도 고려해야 함에도, 그 역할은 아예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 이어 또 한분의 밀양 어르신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면서 음독 자살로 세상을 등졌는데도, 이 놈의 국가에너지계획은 에너지 탐욕과 핵중독에 빠져 꿈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필요한 것일까?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것은 직간접적으로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래에 한국사회가 대체 얼마나 에너지를 쓰게 될는지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서 얼마나 발전소를 새로 짓거나 노후된 것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 등의 큰 방향을 정하게 된다.

    또한 전력 수요처와 공급처 사이를 잇는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한지, 또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정하게 된다. 난방에너지 공급을 도시가스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전력을 통해서 할 것인지, 그리고 부실한 주택의 단열 강화를 얼마나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에 대한 방향도 제시한다.

    이 모든 계획들이 밀양과 청도의 할매들의 눈물겨운 싸움과 삼척과 영덕 등의 신규 핵발전소 부지 주민들의 기가 막힌 사연들뿐만 아니라, 지역상생의 새로운 에너지정책을 실험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에너지계획 공청회에서의 항의 행동(사진=이유진님 페이스북)

    에너지계획 공청회에서의 항의 행동(사진=이유진님 페이스북)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제도는 에너지기본법 제정을 통해 2006년에 3월에 도입되었고, 시민단체들이 그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도입이 논의되고 시작한 것이다.

    모든 에너지원 및 관련 사안들을 통합적으로 관할하며,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연계하고, 에너지정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조하는 에너지기본법에 대한 필요성은 2003년부터 에너지시민연대와 같은 연대기구를 통해서 제기되었다.

    에너지기본법은 오랜 논쟁 끝에 정부와 타협하면서 여러 아쉬운 조항을 놔두고 제정되었지만,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시민참여, 그리고 에너지기본권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룬 것이기도 했다.

    특히 에너지정책을 상당 수준까지 개방하고 시민참여를 대폭 허용했다. 국가에너지위원회에 5명의 시민단체 추천 전문가들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논의 과정에도 시민단체들과 개혁적 전문가들의 참여가 대폭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최종 결정된 1차 계획에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59%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참여한 환경단체들이 원천 무효를 주장했지만, 쓰라린 경험이었다. 대중 참여가 뒷받침되지 못한 전문가 수준에서의 참여 결과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에 만들어진 제1차 계획 수립 과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제2차 계획수립 과정의 ‘조직적 일탈’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단적인 예가 어제(10일) 있었다. 국가 산자위에 보고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위해 달랑 3쪽짜리 자료가 제출되었다. 오늘 공청회를 개최한다는 2차 계획의 전체 내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국회에 보고된 자료마저 그 모양이었다. (자료의 분량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참고로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총 179쪽이었다).

    공청회에서도 달랑 3쪽짜리 자료를 낼 꺼냐는 힐난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산자부 관료는 공청회 자료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제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단다. 이러고도 수립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정말 대단한 철면피다. 아니면 바보이거나. 하기사 대선 국정원 개입 사실에도 그렇게 버티니, 못할 것은 또 뭔가. 국정원과 겨룰 일이다.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은둔형 리더쉽’이라고 평했다. 일상적인 쟁점은 고사하고,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주요 관심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아무런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 모양새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 것도 리더십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리더십은 대화와 타협보다는 그저 복종을 요구하는 박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로 이어지며, 그 정부의 관료들도 그대로 따라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태도는 판박이다. 민관합동 워킹그룹을 만들어 운영하고서는 그 뒤에 숨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 그렇다.

    공청회는 물론이고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비롯하여 여러 행정절차를 밟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할텐데, 논란 많은 민관합동 워킹그룹 보고서를 내세워 그냥 뭉개고 있다. 정상적인 정치/행정절차로부터 ‘집단적으로 일탈’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과정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같다.

    첫번째는 대답하지 않는 정부. 아무리 문제제기를 하고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는다. 민관합동 워킹그룹의 보고서에서 22―29%로 원전(설비)비중을 줄인다고 말했지만, 에너지 수요 예측이 제시되지 않은 속에서 오히려 핵발전소 개수와 용량을 증가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한번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오늘 국회 산자위 보고에서는 의원들의 추궁에 대해, 내년에 수립될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해질 것이라며 발뺌했다. 일단 빠져나가고 보자는 동네 양아치 같은 태도가 아니면 뭔지. 정말 대책이 없다. 핵발전소는 더 지어야겠지만, 후쿠시마 이후의 사회적 분위기가 무서워 핵발전은 줄이는 것처럼 말했으니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그냥 대답 안하고 “생까는 것”만이 살 길인가.

    두번째. 데이터 분석 없이도 계획을 수립하는 정부. 에너지계획의 논리적인 기초는 에너지수요 예측이다. 미래에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게 될지(혹은 사용해야 하는지)를 정하고, 그에 맞춰서 전력을 비롯하여 여타 에너지 공급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런데 지난 10월에 발표한 민관합동 워킹그룹의 <정책제안>에서 핵발전 비중까지 제시했지만, 에너지수요 예측치는 제시되지 않다는 것이다. 수치를 만드는데 필요한 분모의 숫자도 없이, 핵발전 비중을 정하고 핵발전이 줄어든다고 자랑하는 신공을 보여주었다.

    이후 국회에 보고한 간략한 비공개 자료를 통해서야 겨우 2035년의 에너지수요 전망수치 하나가 ‘잠정’이라는 표시를 달고 제시되었다. 환경부/온실가스정보센터에서 산출한 에너지수요 전망치와 상당히 달라 이를 조정하느라고 그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10일)에 국회 보고 자료에도 달랑 숫자 하나가 나왔지만, 예측치는 더욱 커졌다. 대체 이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꿈속 신령님이라도 알려준 걸까. 내일 공청회에서라도 그 근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불투명하고 창백한 숫자가 붉은 피 도는,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불필요하게 과다 예측한 전력수요 전망치가, 그 숫자 위에 굶주린 탐욕을 녹여온 핵발전소 건설계획 비용편익 분석치가, 그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지도 위에 그은 송전선로와 그를 합리화한 경제성 분석 수치가 밀양의 어르신 같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지금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그런 죽음을 부르는 서곡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주민들의 참여가 배제되면 될수록, 걱정스럽게도 죽음의 냄새는 더욱 짙어질 것이다.

    그곳이 송전탑의 밀양과 청도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핵발전 부지의 삼척과 영덕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노후 원전의 공포에 짓누린 부산과 울산이거나 석탄발전의 대기오염 물질을 감내해야 하는 충남 태안이 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우리의 미래세대가 되거나 이미 태풍 하이옌으로 재앙을 겪은 필리핀과 같은 지역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에너지계획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지금과 같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아닐 것이다.

    그 계획에는 밀양 할매의 “보상도 필요 없고 그냥 예전처럼 살게만 해달라”는 절박한 호소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삼척 주민들처럼 “그렇게 안전하다고 하면 서울에 핵발전소를 지어라”는 따끔한 비판도 담겨야 한다.

    그리고 서울의 에너지협동조합들처럼 “우리가 쓰는 에너지를 서울에서 생산하자”는 성숙하고 책임있는 목소리도 구체화되어야 하며, “우리에게 핵폐기물과 기후변화의 고통을 떠넘기지 말라”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계획 속에 녹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기본계획의 개념과 수립 과정 자체가 바꿔야 할지 모른다.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그리고 국가에 대한 에너지계획이 아니라,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그리고 지역에 대한 에너지계획이어야 할 것이다.

    전문가, 관료, 그리고 기업이 아니라, 밀양 할매에게 에너지계획을 물어보라!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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