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너희들만의 것이 아니다
    에이즈 감염인들의 사랑이야기 <옥탑방 열기>
        2013년 12월 06일 03: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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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로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라는 민간단체가 1993년부터 정부 주도로 번갈아가며 세계 에이즈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주최해왔다.

    올해 주최단체인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 한국HIV감염인연합회 KNP+는 행사 참여 요청을 했고, 이 단체는 당일 행사에 ‘캠페인 진행, 팜플렛 나눔’을 위해 부스 1개를 신청했다.

    행사 3일전인 11월 27일 질병관리본부가 “에이즈 관련 단체들의 피켓 시위 등으로 시민들의 안전문제가 대두된다”는 이유로 KNP+의 행사 참여를 취소토록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 지시했고, KNP+는 따로 연락을 받지 못해 뒤늦게서야 행사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한편 <조선일보>는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30일 에이즈 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에이즈 환자와 간병인들간 섹스와 자위가 비일비재해 이를 ‘쉽게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화장실문을 잘라 놓았다는 내용이나 ‘동성애를 하다 에이즈에 걸린 남성들 상당수가 항문이 파열돼 그곳에 자주 출혈을 한다”는 등 동성애를 성적 행태로써만 접근해 혐오와 편견을 심어주는 보도들이었다.

    앞서 유일하게 에이즈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수동요양병원’에서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권탄압 문제가 대두된 바도 있다. (관련기사 링크)

    이 병원은 병원 스스로가 에이즈 환자는 불결한 질병을 전염시키는 환자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 병원측은 에이즈 환자가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던가 ‘에이즈’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죽음의 존엄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이었다.

    일련의 상황들은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세계 에이즈 ‘편견 심기의 날’로 변질시켰다. 1년에 하루조차도, 그들 감염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배제되는 날이 되어 버렸다.

    영화 '옥탑방 열기'의 한 장면

    영화 ‘옥탑방 열기’의 한 장면

    “나도 사랑 하고 싶다”

    이런 가운데 5일 저녁 7시 서울 관악구의 한 영화관에서 에이즈 감염인들의 사랑과 동거를 담은 영화 <옥탑방 열기>가 상영됐다.

    열렬히 사랑에 빠져 알콩달콩 살아가다가 지긋지긋하게 싸우다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는 일을 반복하는 보통의 연애 얘기이다. 많은 영화에서도 사랑은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고유정, 노은지 감독의 <옥탑방 열기>도 주인공 윤가브리엘씨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이자 그의 애인이었던 두열씨가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동성애자, 그리고 HIV/ADIS에 걸린 두 남성의 옥탑방 동거 생활을 2년여간 촬영한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동성애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파격적인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영화 말미에 이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HIV/ADIS에 걸렸다는 사실보다는 두 주인공의 잔잔한 사랑의 감정선에 몰입해 어느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노동당 성정치위원회와 관악당협,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와 관악당협이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공동체 상영회는 파격적인 소재만큼이나 관객 수는 반비례했다. 영화를 만든 고유정, 노은지 감독조차 처음부터 상업공간의 상영을 기대하지 않았다. 은밀하게 마치 구전동화처럼 이들 이야기를 공개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두열씨는 가브리엘씨와 사랑에 빠지면서 점차 자신의 질병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성매매는 21살 어린 나이에 에이즈라는 질병의 멍에를 얻게 됐다. 인정할 수 없었다. 두열씨는 오랜 시간 혼자서 바깥 세상과의 교류를 끊고 외롭게 지냈던 인물이다.

    두열씨가 가브리엘씨를 만났을 때는 조금씩 에이즈에 걸린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에이즈 감염인들의 모임에 나가 자기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중단하라고 호소하는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립되었던 두열씨는 가브리엘씨의 무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책했다. 제발 자책하지 말라는 가브리엘씨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두열씨는 다시 혼자가 되려고 훌쩍 떠나버린다.

    가브리엘씨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떠난다고 했을 때 애써 담담했다. 사랑에도 불구하고 두열씨의 상처가 사랑만으로 다 해결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묵묵히 두열씨의 짐을 정리해주고, 이별 후에도 가끔 전화를 거는 두열씨의 전화도 묵묵히 받아줬다.

    그렇게 다시 두 번째 동거를 시작했지만 결국 두열씨는 “나도 사랑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투박한 편집과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국 두열씨의 자기 정체성에 관한 성장물이자 가브리엘씨의 열렬했던 사랑 이야기이다.

    동성애, 에이즈라는 소재는 정말 소재 그 자체일뿐 이들의 이야기를 크게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옥-상영

    영화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장면(사진=노동당 관악당협)

    고유정 감독은 이날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를 보기 전 동성애나 에이즈라는 소재 자체의 파격성에 반응했던 분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그래 나도 저런 감정 알아’라는 이해할 수 있는 감정선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동성애나 에이즈에 대한 편견에서 멀어질 수 있기를 바랬다”고 말했다.

    노은지 감독 또한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두열씨에게 보내는 편지같은 영화이다. 두열씨가 정말 힘들게 살아왔지만 주변에서 ‘너 잘 살아왔어, 괜찮아’라고 도와준 사람이 많았고 또 지금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해졌다”며 “관객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두려워하지만 사실 너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렇다’고 그런 격려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씨도 “이 영화는 동성애자나 에이즈환자의 인권 활동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그들의 관계에 대해 초첨을 맞추면서 결과적으로 에이즈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도 저렇게 저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열씨는 아직도 자신이 출연한 이 영화를 몇 달 동안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너무 아팠던 과거를 담은 영상을 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디어 이 영화를 보고나서야 모든 걸 자책했던 자신의 과거와 현재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가브리엘씨를 떠나며 “나도 사랑하고 싶다”라고 말해 관객들과 가브리엘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 대사에 대해 두열씨는 최근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단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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