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인 '넬슨 만델라' 퇴장하다
        2013년 12월 06일 10: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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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인류의 투쟁에서 한 정점을 이루었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밤 95세로 운명했다.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고 ANC(아프리카민족회의)의 역사적 지도자였던 만델라는 수년간의 건강악화 끝에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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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제이콥 주마 현 남아공 대통령은 TV를 통해 5일 저녁 8시 50분에 만델라가 운명했으며 “남아공은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 우리는 그의 삶 속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것을 보았다. 우리는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고 밝혔다.

    오바마 미 대통령도 “그는 오늘 안식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용기있고 훌륭하고 영향력있는 인물을 잃었다. 이제 더 이상 그는 우리가 아니라 시대에 속하는 인물이 되었다”고 추도했다.

    만델라는 지난 6월부터 폐 감염증으로 위중한 상태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9월에는 집으로 돌아와 의료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만델라를 우리 역사의 마지막 거인으로 기억하며, 그의 도덕적 모범은 간디와 킹 목사에 견줄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인종차별 백인 정부 하의 감옥에서 27년을 살았으며 그 중 18년은 케이프타운 앞 바다에 위치한 악명높은 로벤섬의 교도소에 갇혀 사는 고난의 삶을 겪었다. 그의 죄수번호는 46664였다. 1964년에 로벤섬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증오와 적대의 사회가 아닌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백인 소수세력과의 화해를 선택했다.

    그는 ANC를 이끌며 1994년 첫 다민족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다른 권력자들과 달리 권력에 잡착하지 않고 재임이 가능했지만 첫 임기를 마치고 1995년 5월 퇴임했다. 그는 1993년 마지막 백인 정부의 클레르크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의 인종차별 역사를 평화적으로 종식시킨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결코 결코 이 아름다운 나라가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일부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일을 다시는 겪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918년 6월 18일 이스턴케이프의 작은 마을 음베조에서 태어났으며 학교 선생으로부터 ‘넬슨’이라는 영어 이름을 얻었다. 만델라는 1943년 ANC에 참여했고 1952년에는 ANC청년동맹의 공동 창립자가 되었다. 그는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공의 첫 번째 흑인 법률회사를 창립했다.

    그는 첫 부인과 1944년 결혼하고 세 자녀를 둔 후 1957년 이혼했다. 1958년 위니 마디키젤라와 재혼하였고 이후 위니 만델라로 불린 그녀는 만델라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석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저명한 투사가 되었다. 만델라는 그녀가 1992년 추문에 연루되었을 때 이혼했다.

    1960년 ANC가 금지되었을 때 그는 지하활동을 전개했다. 69명의 흑인이 경찰의 총격으로 살해당한 ‘샤퍼빌 학살’ 이후 그는 무장투쟁을 전개하자는 제안을 ANC 지도부에 호소했고 1961년 ANC의 무장조직인 ‘민족의 창’을 창립하고 초대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사보타지와 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 했다는 내란혐의로 체포됐다. 1964년 리보니아 재판에서 그는 스스로를 변호하며 “난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와도 맞서 일생동안 투쟁해왔다.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으며 이를 성취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형은 가까스레 피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는 ANC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남아공 내부의 불만을 더욱 커져갔고 국제사회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과 압박도 더 강해졌다. 마침내 1990년 백인정부의 클레르크 대통령은 ANC를 합법화하고 만델라는 전세계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환호 속에서 로벤섬에서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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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과 노년의 만델라

    그의 임기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전 세계에서 호의적인 물결을 만들어내는 시간이었다. 그는 1999년 임기를 마치고 정치 일선에서 퇴진했을 때 그는 에이즈 퇴치와 확산을 막는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아들은 에이즈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했다.

    유엔은 지난 2009년 11월 만델라가 태어난 7월 18일을 ‘만델라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만델라가 67년동안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정신을 기려 이날은 세계가 하루 중 67분을 할애해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자는 취지였다.

    그는 80세가 되었을 때 전 모잠비크 대통령의 미망인과 세 번째 결혼을 했다. 6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지금까지 생존한 것은 3명의 딸들이다. 17명의 손자들과 14명의 증손자들이 있다.

    85살 때 모든 공직 분야에서 은퇴했지만 그는 ANC 행사에는 가끔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ANC의 100주년 기념식에는 심각한 건강 탓에 참석하지 못했다.

    ANC운동의 다른 거인이었던 ‘올리버 탐보’와 ‘월터 시슬루’는 이미 만델라 이전에 운명했다. 아프리카 해방운동의 가장 첫 세대들의 시대가 이제 끝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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