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십자가, 박근혜의 ‘십자가’
    [말글 칼럼] 박근혜, 5·16과 5·18에 대해 답하라
        2012년 06월 15일 07: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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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종북 놀이’에 열중하던 새누리당, 요즘 돌아가는 꼴이 묘합니다. 대통령과 박근혜까지 나서서 ‘국가관’이 어떠니 ‘북한보다 종북이 더 무섭다’느니 하던 것이 쏙 들어가 버렸군요.

    이거 시시합니다. 일단 칼을 뺐으면 무라도 베야지, 이리 싱겁게 물러난답니까? 거창하게 ‘국가관’을 들고 나왔으니, 그 칼 이름을 ‘國劍’이라 부르지요. 어째 그 예리한 양날을 갖춘 국검이 ‘從北刀’ 따위의 한쪽 날뿐인, 것도 단도나 상대하고 만답니까? 한바탕 칼춤을 추나보다 했더랬는데, 종북도조차 꺾지 못했잖아요?

    양날 검을 들고 나선 만큼 이제 다른 쪽 날도 사용함이 어떠신지? 상대를 검증하겠다 해놓고 설마 자기는 검증 안 받아도 된다는 건 아니겠지요?

    이제는 미루고 미뤘던 5.16과 5.18에 대한 당신네 반공주의자들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한기호의 사과?

    한기호 왈, ‘공산당이 한 것처럼 십자가를 밟고 가게 하는 식으로 하면 충분히 종북을 가릴 수 있다’. 이게 무슨 짓인 줄은 아는지 모르겠군요. 대한민국 헌법 제19조인 ‘양심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에요.

    천주교한테 사과했다고요? 사과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신앙 선조의 희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만약 이 같은 비유로 인해 천주교와 그 신자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했죠.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합법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과연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게 타당한지는 이번 기회에 명확히 해야 한다.”고 하여 자신의 본색을 숨기지 않습니다.

    518 전두환 박근혜

    그는 자기가 공산당과 똑같은 짓을 하자고 주장한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요? 위 사과문에서 주어만 바꾸면 완전 똑같은 말이라는 것을요.

    “북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조선의 합법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과연 북조선에 존재하는 게 타당한지는 이번 기회에 명확히 해야 한다.”

    그는 아마도 대상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공산당식 방법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런 식의 사상 검증 자체가 문제라는 걸 전혀 모른다는 거죠. 그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군요.

    십자가, 예수 죽이려 나라 팔다

    십자가형은 원래 노예들을 고문하려고 했던 것이, 이윽고는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세력을 처형하는 형벌이 됐지요. 예수는 처음부터 정치범이 아니었어요. 총독 빌라도가 보기에도 예수는 십자가형 대상 자체가 될 수 없었지요.

    그런데 당시 유대인의 지배층인 대사제와 원로들이 그렇게 몰아갑니다. 여기 놀아난 군중들은 ‘그 피의 책임을 우리와 우리 후손이 지겠다.’며 십자가형을 요구하지요. 그래 정치범 중에 한 사람과 맞바꾸는 제도에 따라 바라바라는 ‘강도’, 사실은 혁명당 수괴를 풀고 예수를 죽이지요.

    여기서 저는 자기 기득권을 위협하는 예수를 제거하려고 로마의 통치수단을 받아들인 행위에 주목합니다. 십자가형을 받아들인다는 건 로마의 식민 통치 자체를 수용한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거지요.

    한기호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 머릿속에 든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이 나라의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꼴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하필 ‘십자가’를 들고 나온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후 십자가는 성스러운 상징이 됩니다. 혹자는 십자가의 가로축을 세상으로 보고 세로축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가히 하늘과 땅의 조화라 할 만하군요. 이것이야말로 예수가 다시 만든 십자가의 의미일 테지요.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합니다. 본디 수평적인 세상을 기독교라는 절대 진리가 수직으로 관통해버린 것으로 말이죠. 하여 세상이 하늘을 꼭대기로 삼는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돌변해버린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한기호의 십자가가 바로 그런 것 아닐까요? 제 신념만을 내세워 다양하게 공존해야 할 사상을 꿰뚫어 버리는 폭력성으로 말이죠.

    박근혜의 ‘십자가’들

    그러나 한기호의 십자가 논란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박근혜가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한 마디 한 걸 듣고, 나름 보스를 위한답시고 나선 셈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에 대해서 정확히 답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 자신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측근들이 대신 카펫을 깔아주는군요. 국회의장 내정자 강창희는 전두환의 쿠데타를 일컬어 ‘우발적인 기회’였다네요. 전두환과의 ‘끈끈한 의리’를 내세우고 ‘정치생활의 멘토’라는 멘트를 날리면서요. 여권의 ‘십자군’ 한기호는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 우깁니다. 전두환의 육군사관학교 사열에 대한 항의는 ‘한마디로 오버’라 쳐내는군요.

    이제 5.16이나 12.12는 구국이요 기회를 잘 포착한 쾌거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면 4.19는 뭐고 5.18은 뭐지요? 5.16의 보스 딸이 제일 잘 나가는 대선 후보고, 5.18의 학살자를 멘토로 삼는 이가 국회의장 내정자인 이 나라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제 ‘종북주의’를 내세운 ‘국가관 검증’은 고스란히 박근혜에게 되돌려줘야 합니다. 박근혜가 마주한 것 역시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개인의 내면에 도사린 신념의 상징이 아닙니다. 강창희, 한기호, 그리고 29만원짜리 초호화 생활자 전두환이 바로 그가 밟아야 할 ‘십자가’들입니다.

    당신은 이 십자가들을 밟을 수 있는가?
    당신에게 5.16은 무엇이고 5.18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정체성의 파괴자와 그를 떠받드는 자들을 당신은 어찌하려는가?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박근혜는 이 ‘십자가’를 어찌할까요? 우리는 그 대답을 반드시 들어야만 합니다. 그는 일개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니까요.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정의당의 당원이다.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산에 정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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