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물의 경비아저씨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 내 노점 이웃 이야기
    2013년 12월 05일 11: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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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점 앞에는 건물이 있다. 나는 그 건물을 ‘우리 건물’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이런 시각으로 보면 위험하다.^^) 다시 말하면, 시흥대로 홈플러스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는 안경점과 피자집, 한의원과 치과, 학원 그리고 노래방과 당구장이 있다. 그 건물 앞에 내 노점마차가 있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경비아저씨가 있다.

24시간 격일로 근무하시는 경비아저씨는 두 분. 키 큰 아저씨는 경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이고, 연세가 좀 있으신 아저씨는 3년 넘게 일하셨다. 나는 연세 드신 경비아저씨를 그냥 ‘경비아저씨’로, 키 큰 경비아저씨를 ‘키 큰 아저씨’로 구분한다.

경비아저씨는 사교성이 좋다.

내 마차가 처음 건물 앞에 놓이던 날, 단속반이 나와서 난리를 치고 돌아간 후에 나는 경비아저씨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했다. 건물 주인이야 내 마차가 자기의 건물 정문 앞에 떡하니 놓인 것을 좋아할 리 만무하지만, 경비아저씨와 싸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비아저씨, “젊은 사람이 열심히 사네” 그리곤 더 말이 없다.

나는 경비아저씨가 나서서 마차를 치우라고 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아저씨 고향은 충청도이지만 오랫동안 금천구에서 사셨다고 한다.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청소하시는 분과도 친하고 옆 건물 경비아저씨랑도 친하고, 옆 골목의 과일가게 아저씨랑도 친하고 무엇보다 동네 단골술집 주인들과 제일 친하다. 그래서인지 나와도 금세 친해졌다.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인 아저씨는 건물 입구에 만들어진 경비실에 앉아 있는 적이 없다. 아침 청소를 마친 아주머니와 한 수다, 옆 건물 경비아저씨와 한 수다, 지나가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와 한 수다, 그리고 나와 한 수다, 그 다음은 건물 옆 골목쪽으로 가서 몇 명과 더 만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바쁜 일과를 보내신다.

사진 518

우리 건물(^^)의 모습

경비아저씨는 투덜거리는 기술자다.

건물 전기배선 일을 하셨다는 아저씨는 퇴직하고 경비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날 일하시는 키 큰 경비아저씨는 심각하리만치 사교성이 없는 분이고 경비일도 처음이라, 아저씨는 당신이 온갖 일을 다 해야 한다며 매일 내게 투덜투덜 이야기하신다.

재작년에 큰 비가 와서 시흥사거리가 다 잠겼을 때, 우리 건물 지하실도 물에 잠겼다고 한다. 1년에 삼일밖에 없는 휴가중이었던 아저씨는 새벽에 건물로 불려나와 물을 빼야 했고, 보일러가 고장이 나거나 전기배선에 문제가 생겨도 이를 수리하는 건 다 아저씨 몫이어서 너무 피곤하다고 하신다. 아저씨가 없으면 건물 관리가 안 된다.

노점상이 ‘내가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절반 정도는 진실이어도 절반 이상은 상상력과 희망사항이 덧붙여진 것들이다. 그런데 아저씨의 이야기는 옛날에 잘 나갔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알았다. 아저씨 이야기의 핵심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하는 아저씨의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했다. 나는 아저씨가 하는 일을 바라보고, 아저씨는 나의 고군분투를 바라봐주신다.

경비아저씨는 술을 무척 좋아하신다.

만약 건물 사장이 아저씨의 24시간 일과를 알았다면 아저씨는 해고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저씨만의 규칙이 있어서 일몰 이전에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건물의 병원들이 문을 닫고 나면 아저씨는 경비옷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으신다. 그리고 한 두 시간이 지나면 기분 좋은 얼굴로 다시 돌아오신다.

술친구가 없는 날이면 내 마차에 와서 ‘순대 내장 조금만 줘 봐’ 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순대 삶을 때 넣는 소주됫병도 한 잔 같이 따라 드린다. 맥주는 싱겁고 배불러서 안 마신다고 하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 있는데, 오징어 튀김이랑 드릴까요?”하면 씨익 웃으신다.

우리 건물에는 숙직실이 없다. 현관 앞 경비실은 의자를 놓을 공간도 없어 벽에 붙여놓은 판자에 앉아서 밤을 보내야 한다.

“아저씨. 저 경비실에서 주무시는 거예요?”

“아냐. 지하 2층에 창고 같은 게 있어서 거기서 밥도 먹을 수 있고, 위층에 건물 사장이 쓰는 사무실이 있어. 밤에는 거기가 다 내 차지야”

나는 일과를 마치고 마차를 정리하면서 순대랑 내장이랑 포장해서 아저씨에게 드리고 간다. 나는 집에서 순대에 소주 한 잔 하며, 아무도 없는 건물 지하 창고나 혹은 사무실의 소파에서 소주에 순대 한 점 하고 있을 아저씨의 모습을 상상한다.

경비아저씨는 재치가 있다.

경비 아저씨의 일은 매우 다양하지만 특히 비가 오는 날에 일이 많다. 건물 현관 앞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깔개도 깔아야 하고, 바닥과 엘리베이터 안의 물기를 계속 닦아 주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을 무척 싫어하신다.

비 오는 날의 특이한 일은 건물 사장이 퇴근할 때 주차장까지 우산을 받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 주차장까지는 건물 현관을 나와서 건물 뒤편으로 한 바퀴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날 일하시는 키 큰 아저씨는 사장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현관에 대기하고 있다가 우산을 들고 사장을 배웅하는데, 경비아저씨는 이 일을 안한다. 빈정이 상한다는 이유이다.

경비아저씨가 대놓고 이 일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아저씨는 비오는 날 사장의 퇴근시간이 되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현관앞을 떠난다. 사장이 가고 나면, 돌아와서 나에게 사장 갔냐고 물으며 씨익 웃으신다.

경비아저씨는 정의의 사나이다.

성격이 화끈한 경비아저씨.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보면 참지를 못하신다. 아저씨는 밤이 되면 노래방과 당구장이 있는 지하를 제외하고 2층부터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를 하는데, ‘젊은 노무 시키들이 어두운 계단에서 부둥켜안고 있거나’ ‘썩을 노무 시키들이 계단에 소변을 누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방 차원의 출입통제이지만 예전에 현장을 걸린 시키들은 아주아주 호통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 건물은 횡단보도가 거의 정면에 있기 때문에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관앞에서 담배를 피거나 통화를 하는 사람이 많아서 입구에 금연 및 핸드폰 사용 자제 문구가 붙어있다. 하루는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현관에서 전화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목격한 경비아저씨.

“여기서 담배 피면 안 돼요”하고 까칠한 한마디를 던졌다. 우락부락 아저씨 바로 눈을 뒤집으며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이야? (욕설욕설욕설…)”한다. 경비아저씨 “너 몇 살인데 욕지거리야?”로 이어지며 결국 멱살잡이까지 하고 말았다.

내가 말리다 경찰 부른다고 으름장을 놓아서야 우락부락 아저씨는 침을 뱉으며 가버렸지만, 경비아저씨의 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아저씨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 없는 것들이다.

내가 단속으로 매일 야방을 설 때 일이다. 날이 추워져서 마차문을 닫은 다음에는 옆 골목에 지역의 봉고차를 세워두고 거기서 밤샘을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남자애들 세 명이 골목 안쪽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역의 봉고차는 창문에 썬팅이 되어 있어서 그 애들은 내가 있는지 안 보였고.

조금 있으니 한 아가씨가 지나갔는데, 그 남자애들이 아가씨한테 가더니 뭐라뭐라 하는 것 같았다. 뭐지? 하고 있는데, 마침 경비아저씨가 주차장 문을 닫으러 건물 뒤편으로 오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저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 애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것이다. 나는 차에 있어서 잘 안 들렸지만 아가씨한테 돈을 뜯으려 했었나보다. 나도 차에서 내려서 아저씨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 남자애들은 재수 없네 어쩌고 하면서 어그적 사라졌다.

상황을 파악한 후에야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걔들이 순순히 안 물러났으면 어쩔뻔했나. 나중에라도 앙심을 품고 아저씨한테 해꼬지를 하면 어쩌려고. 나한테까지 와서 장사하는데 시비를 걸 수도 있는거 아닌가.

“아저씨, 요새 어린애들이 제일 무서워요. 혼자 있다가 두들겨 맞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아저씨는 “젊은 노무 시키들이…”를 연발할 뿐이었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노인분들을 많이 봐왔다. 그렇지만 무섭지 않지만 무서워해야하는 것과 무섭지만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나부터도 자신이 없다.

나는 경비아저씨에게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제 마차 지키면서 아저씨도 지켜드릴께요.”

경비아저씨의 임금인상 투쟁

아저씨 임금에는 문제가 많았다. 용역업체를 통한 것도 아니고 건물주가 직접 채용했는데 근로계약서는 없다. 3년동안 단 한 번도 임금이 오른 적이 없다고 한다. 올해는 올려주겠지, 이번 달엔 올려주겠지 하며 3년이 지났다고 한다.

아저씨는 내 마차에서 건물주에 대해 ‘시키’를 붙여가며 열을 내셨다. 아저씨는 사실상 경비뿐 아니라 건물의 시설관리까지 모두 하고 있는데 임금도 경비직으로만 지급하면서 그조차도 인상하지 않는 게 괘씸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주워들은 게 있어서 최저임금이 매년 조금씩이라도 오르니까 임금도 오를 텐데요? 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임금명세서를 가져오셨다. 임금이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 임금명세서를 들고 비정규직 노동상담을 하는 선배와 후배에게 문의를 했다. 경비업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였지만 이것저것 조언을 받아서 아저씨에게 전해드렸다.

정작 아저씨는 ‘그러니까 내가 적게 받는 게 맞지?“라며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관심이 없고 알 건 알았다는 듯 건물로 돌아가셨다.

삼일쯤 후였을까. 아저씨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했더니, 누가 들을까봐 작은 목소리로 “임금 올렸어”라신다.

“어떻게요?”

“내가 사장한테 가서 당신이 법 위반이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심한 거 아니냐. 다 필요없다 나는 당장 그만두겠다. 알아서 건물 관리까지 하는 사람 구해봐라고 나와버렸지.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 올려준다더라고”

건물주는 경비아저씨의 임금을 올려줬지만 키 큰 아저씨의 임금은 올리지 않았다. 뭔가 명확하지 않은 이상한 거래였지만 경비아저씨는 매우 흡족해 하셨고, 나는 사는 게 법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었다.

경비아저씨는 지방에 내려가서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꿈이다.

경비아저씨에게는 딸이 있는데 내가 떡볶이 장사를 할 때 결혼을 했다. 딸내미의 결혼을 앞두고 아저씨는 마음이 심란했다. 살면서 더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며 술도 더 많이 드셨다. 딸이 결혼한 후에는 친정엄마처럼 이것저것 작은 것들도 챙겨주느라 열심히셨다.

말투가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경비아저씨는 내 마차쪽으로 나와서 자주 딸과 툴툴거리며 통화를 했다. 그나마도 금세 뜸해지더니 아저씨는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해하며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살겠다며 기뻐하셨다.

아저씨의 소망은 지방에 내려가서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내려가서 살 곳도 봐두었다고 한다. 몇 개월만 더 경비일을 하고 바로 내려가고 싶다는 아저씨에게 나는 “아저씨 가시면 진짜 서운할텐데요”라고 말하면서도 그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바랐다.

경비아저씨는 자상하시다.

늦은 밤 마차를 다 정리하고도 물통에 물이 남았으면 바닥 청소를 한다. 물이 많으면 철수세미로 세제를 묻혀 바닥에 떨어진 기름이나 떡볶이 국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빈 물통 네 개를 실고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서 다시 마차에 내려놓는 모습을 본 경비아저씨.

당신이 경비를 보는 날엔 건물에서 물을 뜨라고 하신다. 물통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내려올 때 아저씨는 물통도 들어주신다. 물이 흐르면 바닥을 또 닦아내야하지만 아저씨는 흔쾌히 밤의 강력한 통제구역을 열어주셨다.

아저씨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잠들기 전에나 새벽이나 내 마차를 누가 기웃거리는지 누가 마차를 뒤지지는 않는지 확인하신다. 내가 봉고차에서 야방을 서고 새벽에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가면 따뜻한 물을 한 바가지 가져다주실 때도 있다.

그러나 서로에게 벌어지는 일상을 우리는 서로 대부분 모른 체한다. 아저씨가 특별히 마차로 와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한, 내가 특별히 부탁하지 않는 한 서로의 힘겨운 일상을 모두 개입하는 건 서로에게도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정말로 최악인 날이었다.

하루에 세 곳에서 단속을 받았다. 경찰과 구청 가로정비과와 현수막 정비하는 단속까지 걸린 날. 그 날따라 이상한 행인이 와서 시비까지 붙어서 나는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태였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마차 정리를 꾸역꾸역 하고 있는데, 술 한 잔 하신 아저씨가 마차 앞으로 오셨다. 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받아줄 상태가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도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내가 마차 정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만 보셨다.

한참을 서 계시던 아저씨. 물기 어린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 가신다.

“그래도,

산다는 건 좋은 거야…”

필자소개
유의선
전직 잉어빵 노점상. 반빈곤 사회단체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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