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입법조사처,
    국회의원 눈치봐야 하나
    독립 연구기관에 대한 정치적 압력 행사 근절해야
        2013년 12월 04일 03: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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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의 입법과 정책과 관련해 중립적 시각으로 조사, 연구해 상임위원회나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조사분석기관으로 지난 2005년 국회운영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해 2007년 개청했다.

    일반적으로 국회의 위원회 및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입법이나 정책과 관련한 사항을 전문적으로 조사, 분석해 답변하며 이외에도 일상적으로 주요 현안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조사, 분석해 현안보고서, 이슈와 논점 등을 통해 결과물을 발간한다.

    때문에 입법조사처는 정부의 정책 과제와 관련해 다른 연구기관보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입법조사처 또한 특정 연구보고서와 관련해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달 15일 발간한 <천연가스 직도입 확대가 가스 및 전력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현안보고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보고서는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 되고 있는 천연가스 직도입과 관련해 그 실효성과 타당성, 정책 입안 과정의 현실적 한계 등을 짚어낸 것으로 현재 가스공사노조 등이 문제삼고 있는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개정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관련기사 링크)

    천연가스

    보통 입법조사처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관련해 다른 정책과 상충되는 점은 없는지, 보완해야 할 점 등은 없는지 살펴보지만, 해당 법안은 이른바 ‘정부 대리 입법’ 법안으로 정부 법안이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가스 민영화로 가는 시발점이라는 문제의 법안은 국회의원 발의 법안 밖에 없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사관이 이 법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김한표 의원, 입법조사처장에게 “예의없이 말이야” 막말 비난

    하지만 지난달 2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발의한 김한표 의원이 고현욱 입법조사처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김 의원은 당시 고현욱 처장에게 해당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김한표 의원 도시가스사업법 발의한 부분 가지고 비평해 놓았지요? 라고 질의했다. 이에 고 처장이 “비평은 아니다. 물론 전문적인 내용이라…수학적인 모형을 이용해 저희들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려고 했는데 위원님들께서 그렇게 보실 수 있다면 좀…”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보고서의 구체적 내용을 반박하며 “이런 것을 가지고 인쇄를 해서 대한민국 혈세를 낭비하면서 그래요? 국회입법조사처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라고 질타했다.

    특히 그는 “적어도 말이에요. 국회의원이 입법을 발의했으면 상충되는 의견을 낼 때는 와서 한 번쯤 상의하는 게 도리 아니에요? 그렇게 무소불위에요? 예의 없이 말이야”라고 비난했다.

    또한 질의 마지막에 김 의원은 “한 가지만 합시다. (천연가스) 경쟁도입 하는 게 싸요, 독점하는 게 싸요? 제대로 된 시각 가지고 하세요!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다 갖고 계시면서 말이야”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발언은 연구보고서에 대한 내용 자체를 부정하면서 더 나아가 사실상 자신이 발의한 법안의 정당성을 연구기관의 장에게 강요하는 모양새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운영위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입법조사처가 야당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을 옹호하거나 강변하는 듯한 보고서가 있어 중립성 논쟁은 늘 있어왔다”면서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고서 내용이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이라고 해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더구나 김한표 의원의 발언은 거의 막말 수준”이라며 “김 의원께서 자신의 의견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입법조사처장에게 그렇게 발언한 것은 국회운영위 위원이라는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실 보좌관도 김 의원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입법조사처 보고서 내용이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거나 일방의 주장만 펼친다는 이유로 불만은 있어왔지만 이번 일 처럼 대놓고 보고서 내용을 갖고 비난한 일은 없었다”며 “입법조사처는 연구기관이고 객관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는 곳인데도 국회의원이 직접 나서 보고서 내용에 문제제기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한표 의원실 “보나마나 노조 자료 받아 썼을 것”… 노조 “사실무근”

    이같은 의견에 대해 김한표 의원실 한 관계자의 의견은 다르다. 이 관계자는 “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기구인데, 의원이 발의한 법에 대해 의견 제출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무슨 의도로 그런 보고서를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법안이나 국가 정책과 관련한 보고서에 국회의원의 실명을 박아서 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이렇게 했다”며 특히 “무슨 의도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보나마나 자료는 가스공사노조에서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입법조사처라는 기관 자체가 보고서 내용에 해당되는 공기업에 자료를 받아서 쓰게 되는 기구인데 이번에 나온 보고서는 노조 주장을 그대로 다 실었다. 그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담당 조사관이 가스공사노조로부터 자료를 받아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근거에 대해 그는 “조사관이 따로 해명하겠다고 의원실에 왔었다. 조사관이 노조로부터 자료 받았다고는 안 했지만 자신이 실수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는 했다. 지금까지 이런 보고서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담당 조사관도 지금까지 이런 형식의 보고서가 나간 적은 없다고도 했다”고 강조했다.

    연구기관으로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도출한 연구결과를 낸 것인데 그 내용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정부법안과 관련해서 정부 대상으로 비판적 보고서를 쓰는 것은 입법조사처가 입법기관으로써 문제제기하는 건 맞겠지만, 입법기관을 보조하는 기구인데 국회의원을 공격하는 건 입법조사처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다”며 “사실, (보고서 작성의) 저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며 거듭 노조와의 연계성을 의심했다.

    아울러 그는 “천연가스 직도입 관련해서 찬반 의견 다 있을텐데 반대 의견만 실고 찬성 의견은 안 실었다. 가스공사측인지 노조측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쪽(반대) 의견만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스공사노조측은 김한표 의원실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손동환 대외협력국장은 김 의원실의 주장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며 나선 뒤 이후 <레디앙>에 전화를 걸어 “입법조사처로부터 어떠한 자료도 요구 받은 적도 없고, 준 적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앞서 손 국장은 담당 조사관이 이틀 전인 2일 노조측이 가스공사지부가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것을 두고 반박 보도자료 낸 것에 오히려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다.

    또한 가스공사 차원에서 자료를 건네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사 입장에서 가스 민영화에 대해 찬반 입장 내는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며 특히 “사장의 경우 특별히 반대하는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안다”며 회사측에서 가스 민영화 반대 논조를 위한 자료를 건내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 또한 김 의원실 주장대로 특정 국회의원 법안을 겨냥한 보고서가 발간된 적이 없느냔 질문에 대해 “특정 법안을 따로 겨냥해 보고서를 작성하지는 않지만, 주요 현안과 겹치는 법안이 있을 때는 언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고서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객관성과 관련해 심의 과정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발간하기 전 따로 심의해 검토한다”고 말했다.

    오건호 “법안 비판하는 것이 보좌의 핵심, 압력 말고 정책논쟁 해야”

    한편 이같은 사태에 대해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기도 한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입법조사처 발간 보고서에 문제의식 느낄 수 있다”며 “하지만 그렇다면 의원실 차원에서 해당 보고서를 비판하는 정책 논평을 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오 연구위원은 “정책적으로 논쟁해야 할 일을 국회의원 신분이라는 이유로 비정책적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천연가스 도입과 관련한 논쟁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만약 이번 일로 입법조사처가 정치적 압박을 느낄 만한 행동을 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입법조사처가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조기구라는 김 의원실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문제가 있는 것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보좌”라며 “무조건 서포트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법안의 강점과 약점 모두 지적하는 것이 보좌의 핵심이다.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입법조사처장이 국회에서 임명된 사람이기는 하지만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서 연구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또한 “연구자 개인이 모든 압박을 이겨내기 어려운 일인 만큼 국회 차원에서 이같은 문제들을 공론화해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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