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 사회? 다시 또 민주주의인가?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진정한 사회 파괴세력은 누구?
        2013년 12월 04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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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주간인물’이라는 주간지와 인터뷰를 했다. 주로 개인적인 프로파일러로서의 삶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자가 보기에 프로파일러가 좀 특이한 직업이라고 생각한 듯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까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생각이 많아졌는데 여러모로 마음이 부끄럽고 좀 안타까웠다.

    돌이켜보면 프로파일러로서, 경찰로서 입직한 2004년 이후 지난 10년은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별로 해낸 결과물도 없고 그렇다고 나의 삶 자체도 안정을 가지지도 못한 채 의미 없이 세류에 맞춰 흘러서 도망치 듯 살아온 것 같아서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87학번인 나도 내 세대가 으레 그렇듯이 학교공부보다는 사회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채 학교생활을 했다. 집회에 참석하고 시위도 나가고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사회문제 학습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당시 나의 문제의식은 평등과 민주주의였다. 불평등한 사회를 어떻게 하면 평등한 세상으로 바꿀 것인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용을 할 것인가? 지금도 그렇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나의 머릿속을 맴도는 핵심적인 삶의 지표 중 하나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의’의 문제에 착목하게 되었고 우연이지만, 경찰이 될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했던 운동권 학생이 경찰청의 프로파일러가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물론 이는 2004년 당시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지 중반쯤인 시기라는 점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론적이며 이상적인 모델과는 거리가 분명 존재하고, 또한 다소 간의 진통은 겪고 있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결국 다소간 확대된 민주주의 속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MB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주의는 모든 면에서 퇴보했고 사회에서 불평등의 문제는 더욱 심화됐으며 그나마 작게나마 이룩했던 소중한 민주주의의 성과들은 급격히 사라져버렸다.

    또한 나 개인적으로도 연쇄살인범을 쫓아야할 시간에 내 자신이 과거의 망령을 피해 다녀야 하는 아이러니에 봉착한 것이다. 서울경찰청에서 쫓겨나듯 나와야 될 즈음에 나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사이코패스 살인범, 강간범, 방화범 수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나를 쫓는 과거의 그림자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생각이 어리석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몸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몸을 숨기고 칼을 갈면서 재기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나도 보기 좋게 퍽치기를 당한 것이다.

    경찰에서 떨려 나온 후 3년이 지난 현재 빛 좋은 개살구, 시간강사보다 못한 사이버대학의 1년 계약제 비정년트랙 전임교수로 연명하고 있다. 한국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경찰행정학과가 60여개나 있지만 정작 경찰행정학의 학문적 정체성은 모호하기만 하다. 범죄학과도 아니고 행정학과도 아닌…….

    왜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조차 경찰행정학과가 없고 경찰을 다양한 전공 출신으로 선발하고 경찰 양성을 아카데미 수준에서 하는지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전체주의 수준의 국가관과 정의관, 윤리관을 기반으로 시민을 두드려 잡고 힘으로 억압하는 권위주의 방식에 익숙한 로보캅 경찰 양성에 힘쓰고 있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도 답답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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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 학과 교수들의 대부분은 특정대학 출신으로 채워져 있어서 학문적인 발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본 양식조차 없기 때문이다. 단지 위안은 경찰행정학 분야에는 서울대 출신의 독과점만이 없다는 것이다. 정권수호에 충실한 충견 경찰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과연 그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정의를 찾기 위해 투신한 프로파일러의 길이 좌절되면서 대신 위안 삼게 된 교육자의 길도 좀 암울하다. 대기업 대졸 초임 수준의 열악한 비정년트랙교수 월급에도 나의 최소한의 목표는 양심과 정의감 있는 후학을 소수이나마 기르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내년까지밖에는 힘들 듯 하다. 손발이 다 잘린 기분이다.

    사실 한국의 사립학교치고 재단비리가 없는 곳이 거의 없고 또 재단 이사장한테 충성하지 않는 교수가 살아남기는 대단히 어렵다. 나라고 예외이겠는가? 더군다나 나는 범죄심리수사관 출신인데, 물론 내가 사회복지학과나 컴퓨터학과 같은 교수라면 모르겠지만 범죄자를 수사하는 수사관을 배출하는 경찰학과 교수인데 ㅠㅠㅠ

    내가 생각하기에 불평등의 문제는 그 자체로 정의의 문제이다. 요즘 개나 소나 얘기하는 경제민주화는 경제정의에 대한 문제이다. 적어도 개인이나 가계, 기업에게 누구에게도 기회는 공평해야 하지 않는가?

    내가 보기에 한국의 자본주의는 약탈경제라고 생각된다. 시장에서의 정당한 경쟁보다는 자본의 독점과 권력의 압력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윤을 실현하는 전형적인 수탈경제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정의는 없다. 오로지 약육강식으로 초고도의 이윤을 실현하는 독점자본주의의 망령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높으신 분께서 늘 전가의 보도처럼 얘기하는 창조경제인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도둑놈 살인범들을 다 때려잡으면 사회가 안전해질 것이니 경찰을 무제한 증원하면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안전도 불평등의 문제이고 정의의 문제이다.

    정권 내내 경찰 2만 명을 증원한다고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집회와 시위를 막는 경비경찰이 될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정권수호의 앞잡이가 되어 시민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제 이른바 민생치안에 투입될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강력한 경찰국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찰국가는 민주주의가 질식하기 쉬운 국가시스템이다. 정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다. 정의는 획일적이고 경직된 경찰 안전시스템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가치이다. 정의는 특정한 누구의 강한 힘에 의해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공정함이고 참여와 소통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는 민주주의에 의해서 완성될 수 있는 가치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질식하고 정의는 처참하게 찢기고 있다. 끝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수준으로 국가기관을 동원해서 부정선거를 치렀는데 수혜자는 있는데 범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황당한 상황이다. 보편적인 인권과 기본적인 가치는 뭉개지고 시민 대다수는 처참한 궁지로 내몰려서 도탄에 빠지고 있다. 전체주의의 살기에 가득한 광기로 마녀 사냥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사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 자체가 오래 살지도, 행복하게 살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이 직업의 특성이 그러하다. 프로파일러는 범죄자의 생각과 감정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이것은 그냥 표현은 쉽지만 실제로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살인자, 학대가해자, 강간범, 방화범의 감정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겠는가?

    주간인물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가 나한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이 200이라고 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200명을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가 실무에서 일할 때부터 진짜 악독한 범죄자들의 명단을 작성해놓고 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친딸을 성폭행한 범죄자, 연쇄강간 범죄자,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숨긴 범죄자, 불 지르고 사람이 타죽는 것을 재미로 구경하는 방화범, 사람을 거의 해부 수준으로 난자한 사이코패스, 의붓자식을 잔혹하게 학대한 계모, 재미로 교통사고를 내고 구경한 범죄자 등등. 그 다음으로 점차 전이해 가는 범죄자들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사람들은 정작 이들이 아닐 것이다. 광기어린 정치지도자, 혹세무민하는 관변 학자들, 부패하고 탐욕스런 정치인과 관료들, 이윤에 눈이 먼 자본가들, 김지하의 오적이 떠오른다. 차라리 이들을 데려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다음 회에 계속)

    필자소개
    배상훈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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