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만·폭력·죽음의 사회 고발하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다산의 '애절양'을 다시 읽으며
        2013년 12월 02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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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말한다.

    “무릇 시의 본령은 부자와 군신, 부부의 윤리에 있다. 혹은 윤리의 실행을 즐거워하는 뜻을 선양하기도 하고, 성정이 바르지 못함을 원망하고 성정의 바름을 그리워하는 뜻을 이끌어 도달하게도 한다. 그다음으로는 세상의 그릇됨을 근심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 늘 힘이 없는 사람을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을 진휼하고자 방황하면서 불쌍해하고 가슴 아파하고 차마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뒤에야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이해만을 주관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

    (凡詩之本 在於父子君臣夫婦之倫 或宣揚其樂意 或導達其怨慕 其次憂世恤民 常有欲拯無力 欲賙無財 彷徨惻傷 不忍遽捨之意 然後方是詩也 若只管自己利害 便不是詩)

    그러기에 그가 볼 때,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시국이 잘못됨을 가슴 아파하지 않고 풍속이 타락함을 분노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올바른 것을 아름답다 하고 그릇된 것을 비판하고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없다면 시가 아니다.”(不愛君憂國 非詩也 不傷時憤俗 非詩也 非有美刺勸懲之義 非詩也)

    이런 시론에 따라 쓴 것이 다음 시, <양물의 자름을 슬퍼하며(哀絶陽)>다.

    갈밭마을 젊은아낙 통곡소리 끝이없어
    현문향해 울부짖다 하늘보고 호소하네.
    쌈터나간 지아비가 돌아오진 못하여도
    제양물을 잘랐단말 듣도보도 못하였네.

    시부상후 낳은아이 배냇물도 그대론데
    삼대이름 모두같이 軍保에다 올려놨네.
    제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里正놈은 포효하며 황소마저 끌어갔네.

    칼을갈아 방에들자 붉은피가 흥건하고,
    이모두가 자식낳은 죄일지니 자탄하네.
    그무슨죄 있다하고 蠶室宮刑 당했던가
    閩나라의 자식거세 지극하게 슬프거든

    자식낳아 기르는건 하늘이사 정한이치,
    하늘닮아 아들되고 땅을닮아 딸이되지.
    말과돼지 거세해도 가엾다고 이르는데
    대를이을 사람거세 그얼마나 슬프겠나.

    부자집들 일년내내 줄풍류를 즐기면서
    낟알한톨 비단한치 바치는일 없사오니
    모두같은 백성인데 어찌이리 차별인가
    객창에서 거듭거듭 鳲鳩편을 읊노라네.

    (蘆田少婦哭聲長/哭向縣門號穹蒼/夫征不復尙可有/自古未聞男絶陽//舅喪已縞兒未澡/三代名簽在軍保/薄言往愬虎守閽/里正咆哮牛去皁//磨刀入房血滿席/自恨生兒遭窘厄/蠶室淫刑豈有辜/閩囝去勢良亦慽//生生之理天所予/乾道成南坤道女/騸馬豶豕猶云悲/況乃生民恩繼序//豪家終歲奏管弦/粒米寸帛無所捐/均吾赤子何厚薄/客窓重誦鳲鳩篇)

    애절양

    누구든 서정시를 쓰고 싶지 않겠는가. 왜 다산 정도의 시재(詩材)를 가진 이가 신문 기사와 같은 시를 썼을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폭력을 목격하고서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일종의 야만이다. 서정은 또 다른 곳에서 우러나온다. 백성들 편에 선 사람들, 올바름을 추구하는 선비치고 이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있을까?

    다산은 『목민심서』 권8 「첨정(簽丁) 」편에서 “이 시는 가경(嘉慶) 계해년(1803년) 가을, 내가 강진에 있을 때 지었다. 갈밭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등록되고, 이정이 소를 빼앗아 갔다.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기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가지고 관가에 가니, 그때까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내가 울며 호소했지만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듣고서 이 시를 지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시는 시라기 보다 조선조 봉건체제의 모순이 점점 첨예해지면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던 1800년대 전남 강진 근처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묘사한 고발 기사나 르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건 해체기의 조선조 사회, 나라는 기울고 이를 새로 대체해야 할 제도와 체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뜻 있는 자들은 권력을 잃고 자신의 이익에 골몰한 자들이 그 자리를 독차지했다. 가렴주구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당시 관료와 토호들은 서민들을 처참하게 짓밟았고 처절하게 약탈하였다. 관리 가운데 직접적인 수탈자인 지방 관료, 특히 아전들의 탐학은 극에 달하였다.

    그때 강진 땅 노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다산이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노전은 마을 이름이다. 글자로 보아 강진 인근서 갈대밭이 있는 해안가 마을이겠다. 조선시대의 병역제도(兵役制度)인 보법제(保法制)를 보면, 원래 평민으로 남자 16세부터 60세까지가 군역(軍役)의 의무를 지고 있었는데, 신역(身役) 대신 군포(軍布)로 바뀌면서 인두세화(人頭稅化)하였다.

    문제는 이를 죽은 자, 임신 중인 아기, 도망간 친척 등에까지 군적에 올려 가혹한 수탈을 했다는 점이다. 갈밭마을의 지방관들 또한 죽은 시아버지는 물론 낳은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군보에 편입시켜 버렸다. 죽은 시아버지나 아직 핏덩이에 불과한 아기가 군대에 가거나 정병을 보조하는 보인(保人)으로 나설 수 없으니, 이를 공식적으로 면제받으려면 대신 쌀이나 군포를 내야 한다.

    이미 착취당할 대로 착취를 당한 지라 낼 군포가 없다. 그러니 지방 마을의 공공 사무 및 연락을 맡아보는 자인 이정은 군포 값으로 농민에게 생명과 다름없는 소를 토색질해 갔다. 그러자 백성은 칼을 뽑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러한 곤액을 받는구나.”라며 자신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이를 모두 지켜본 아내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 억울함과 분통함을 어찌 필설로 표현이나 할 수 있으리. 그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성기를 가지고 관청으로 나아가 따졌지만, 그러다 안 되어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였지만 문지기는 막아선 채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다산의 말대로 아들 낳아 기르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이다. 배냇물도 안 마른 아이를 떡 하니 군보에 올려놓고 그 대가로 가난한 백성의 유일한 재산이자 호구지책인 소를 토색질했으니 그 농민이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원통하였으면 자신의 성기를 잘랐을까? 다산은 고환을 까버리는 궁형(宮刑)의 형벌보다도, 중국 복건성 민(閩)족이 자식을 거세해서 팔아바치던 풍속도 가혹하고 살벌한 일이지만 이 일이 그것을 넘어서는 부조리이자 비극이라고 애통한 소리로 고발하고 있다.

    이어서 그리 백성이 목숨을 바쳐 억울함을 호소해도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품지 않는 조선조 관료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생식기를 자르는 세상, 말 그대로 불임의 세상, 주검의 나라인 것이다. 그렇게 토색질하는 이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풍악을 울리며 떵떵거리며 살고 착한 백성들은 자식마저 낳지 못한 채 그리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가?

    시구편(鳲鳩篇)이란 왕이 백성을 골고루 사랑해야 된다는 뜻을 뻐꾸기에 비유해서 읊은 시경의 편명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기술한 후에 이에 있어야 할 당위, 곧 왕이 백성을 골고루 사랑하고 주인으로 여기는 정치와 세상을 바라고 있다. 그의 말대로, “지극히 천하고 어디에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이 바로 백성들이요,(至賤無告者小民也), 높고 무겁기가 산과 같은 것도 또한 백성이다.(隆重如山者亦小民也)”

    부패와 부조리, 수탈이 극에 달하였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도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지독한 노동배제의 시대다.

    쌍용차 파업 당시 노동자를 폭행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사진=참세상)

    쌍용차 파업 당시 노동자를 폭행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사진=참세상) 

    자본-국가-보수언론-대형교회-사법부의 연합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2646명을 정리해고하고 이에 맞서자 전쟁터에서 적에게나 행하는 정도의 폭력을 휘두르고 그들을 과격폭력분자로 매도하여 재취업의 길까지 막아 24명이나 죽게 하더니, 그제, 11월 29일엔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 푼 없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이를 감당하란 말인가.

    자본-국가-보수언론-대형교회-사법부의 연합체가 행한 이 비열하고 야만적인 폭력은 조선조 말의 탐관오리를 능가한다. 노동자들이 살아갈 의지를 박살내고 희망의 끈조차 끊어버리고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노동자들의 신음소리를 무시하고서 즐기는 사치와 향락이 그리도 즐겁던가. 그들도 탐관오리들의 부패와 야만이 결국 조선조를 붕괴시키고 나라를 일본에게 내준 것을 잘 알 것이다.

    죽음으로 마지막 절규를 하도록 이끄는 사회, 그 죽음조차 무시하는 사회는 진정 내일이 없는 죽은 사회다. 성기로 상징되는, 생명과 욕망과 연대의 근원을 자르고서 유지되는 것을 삶이라 칭할 수 있을까. 이제 족함을 알고 멈출 지어다. 함께 인간답게 잘 살아보자!

    필자소개
    민교협. 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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