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 편집증의 종말은?
        2013년 11월 29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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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마르크스주의자지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한 가지 불만이 있긴 합니다. 대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만인이 그들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이해를 추구한다고 전제를 하여 역사를 분석하는 경향입니다. 거시적으로는 이게 맞습니다. 한데 어떤 구체적 국면을 미시적으로 볼 적에 두 가지 현상을 늘 보게 됩니다.

    첫째, 지배이데올로기에 포획된 피지배자들이 매번 그들의 실익을 스스로 배반하여 지배자들에게 수동적으로나마 동의하는 것이고, 둘째 지배자라 하더라도 일부 행동을 “이해 계산”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신념”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념의 정체를 추적해보면 일종의 정신병, 가장 많게는 편집증(偏執症)으로 밝혀집니다. 인간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덜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말이죠.

    첫째 현상의 좋은 사례는 박근혜를 찍은 수많은 한국 서민들의 정치행동이고, 둘째 현상의 좋은 사례는 통진당 해산 청구 등의 박근혜 정권의 최근 행동들입니다.

    20세기 역사를 보면 자신의 실익을 배반하면서까지 어떤 편집증에 의해 움직이는 지배자들의 전례를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급진적 공산주의자인 트로츠키와 그 추종자들을 섬멸시킨 보수적인 공산당 지도자 스딸린의 행동은, 반동적이며 잔혹했지만 적어도 합목적적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를 이해라도 할 수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파쇼와의 전쟁을 앞두고 수만 명(적게는 8천 명, 많게는 약 3만 명 – 여러 자료에서 숫자들이 다르게 나옵니다)의 적군 장교를 총살하거나 시베리아로 보낸 스딸린의 행동은 도대체 “합리적”이었던가요? 장교들 중에서는 트로츠키주의자 등 급진파가 그다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반대파 숙청에 술에 취하듯이 “취해버린” 스딸린파들에게는 도처에서 “인민의 적들”이 보였습니다. 가장 잘 훈련 받은 장교들을 전쟁 직전에 죽이는 게 “자살골”이지만, “인민의 적”에 대한 편집증적 증오는 이런 “자살골”을 넣게 했죠.

    아니면, 동부전선이 이렇게도 급했을 때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인력과 자원을 낭비(?)한 히틀러의 행동은 어땠을까요?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을 배태시킨 유대인들에 대한 골수 반공주의자 히틀러의 증오를 설명할 수 있어도, 이런 행동은 정확한 의미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았어요. 수용소에 잡혀간 유대인들을 군수공업에서 인력으로 활용했다면 훨씬 더 “합리”적이었을 터인데요…

    그러나 편집증적 증오에 사로잡힌 백색 독재집단으로서는, 어쩌면 “전승”보다 증오 대상자의 “섬멸” 그 자체가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정신병이 군림하는 극단의 세기라는 이름을 공연히 붙인 게 아니죠.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행동을 보면, 국내에서 그 편집증 본위의 극단의 세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예컨대 통진당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증오를 이해할 수야 있죠. “적”이어야 할 북조선에 대해 적대감 대신 연대감을 가지고, 거기에다가 요즘 민생 파탄의 희생자들을 조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철도민영화 등의 “부자 정권”의 의제를 반대하니까 미울 만도 하죠.

    박-백색

    그런데 나에게 어떤 대상이 “밉다” 싶으면 무조건 칼을 들고 그 대상에 근접하는 것은 “정상”은 아니잖아요? “실리”에 밝은 이명박 정권은, 구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공무원 등을 탄압하고 각종의 공안사건 등으로 민주노동당 약체화를 도모했다 하더라도, “민노당 해산 강제”와 같은 무리수를 두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실리”형보다는 “이념”형이고, 실은 “이념”이라기보다는 “편집증”형인 듯합니다. 아주 단순명쾌합니다. 나와 접점이 없는 정당이라면, 나에게 손해를 끼칠 듯한 정당이라면 그냥 없어져라! 당장 없어져라! 이런 수준입니다. 미운 사람들보고. “니놈아, 어서 죽으라!”고 외치는 정신병 환자의 수준이죠.

    통진당 등 온건 좌파민족주의 집단을 보기만 하면 “북괴의 숨은 손”만 보이는 걸로 봐서는, 이 정신병은 아마도 편집증에 가까울 듯합니다. 정치적 사고가 어느 정도 발전된 지식인 보기만 하면 당장에 “트로츠키주의자”가 보였던 스딸린의 똘마니들과 비교될 만도 하죠.

    결국 이 정권의 편집증적인 “종북분자 색출”은 진보사회의 커다란 반격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오히려 부메랑이 돼 정권을 더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편집증 환자에게 그의 병에 대해 설명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처에서 “적의 내통자”만 보이는 그에게는, 그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그저 “수상”해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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