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속의 라싸, 중국속의 라싸
    [서윤미의 착한 여행] 티베트 여행 ②
        2013년 11월 28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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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여행- 1 링크

    자연의 흐름이 만들어놓은 곳을 지나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주도인 라사(Lhasa)에 도착했다. 티베트불교, 오체투지, 달라이라마, 자연 등 우리가 티베트라고 하면, 라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나 또한 막연히 티베트가 주는 이미지에 홀려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라싸라는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환상 속 라싸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중국 간판들과 상인들, 곳곳의 오성기와 군인들이 내 눈에 들어온 라사의 첫 이미지였다. 그렇게 먹먹한 마음으로 첫 날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3800m 격배산 중턱에 위치한 드레퐁(Drepung Monastery) 사원이었다. 8천여명 가까운 승려가 공부했으나 중국의 승려제한정책으로 점차 줄여 현재는 2백여명 정도로 대폭 줄었다고 했다.

    우리 티베트 여행의 가이드인 ‘자빠’ 라는 청년에게 중국이 납치해갔다는 최연소 정치범 제11대 판첸라마에 대해 물으니 조심스럽게 정치적인 것이라 더 이상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2009년 말 내가 미얀마를 갔을 때 같이 동행한 언니에게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해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났다. 미얀마에선 그 당시 이름 대신 ‘The Lady’ 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드레퐁 사원을 나와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이라 불리는 ‘노블링카 궁전(Nobulinka Palace)’ – 보물의 정원이란 뜻 – 으로 향했다. 달라이라마 7대부터 14대가 이용했다는 궁전, 가장 초기 건물은 7대 달라이라마 때 세워졌고 현재의 모습은 1956년도에 완공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사용했던 방을 둘러보았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인도로 달라이라마가 망명했던 때가 1959년이다. 이 궁전에서 1959년을 보냈던 달라이라마는 어떤 기분으로 이 궁전을 떠났을까. 주인 없는 궁전은 다른 나라에서 보내온 선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직도 50년 넘게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궁전은 이미 중국 오성기가 펄럭이고 있고 맞은 편엔 중국 군대가 있다. 게다가 어울리지 않게 궁전 안에 동물원이 들어서있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중국이 관광용으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티벳인들은 동물의 감옥인 동물원은 만들지 않는다고 답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든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일까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쓸쓸하게 보이는 궁전을 나오는데 궁전 앞에선 티베탄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 중국 관광객들이 웃고 있다.

    갑자기 궁금해서 내가 낸 사원들 입장료는 누가 가져가냐고 물으니 반 정도는 중국 정부가 가져간다고 한다. 숙소는 중국 내 무슬림을 믿는 종족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근처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 이슬람사원에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드리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다.

    다음날 엽서에서만 보던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이라 불리는 포탈라궁으로 향했다. 고급 백화점과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에 위치한 포탈라궁, 아니 포탈라궁이 있는 곳 주변으로 최신식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버린 라사, 저 멀리서도 웅장한 포탈라궁이 한눈에 들어오고 코라를 돌기위해 티베탄들이 줄을 이어간다.

    여권검사를 받고 포탈라궁에 들어섰는데 가이드가 이야기 한다. 여기서부터 1시간 내에 돌아서 나와야 한다고.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7세기 처음 송첸캄포 왕 때 건립되어 이후 5대 달라이라마 때 증축했다고 한다. 1300년에 걸쳐 9명의 왕과 10명의 달라이라마를 모셨던 궁전인데 백궁은 달라이 라마의 거처이자 행정기관의 역할을 하고 홍궁은 종교의식을 치르는 곳이라고 했다.

    오성기가 펄럭이는 포탈라궁

    오성기가 펄럭이는 포탈라궁

    가이드는 우리의 출입시간을 적고 1시간 안에 보여주는 곳만 갈 수 있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중간 중간 멈춰서서 포탈라궁을 느끼기엔 1시간이란 시간은 짧았다. 중국이 허락한 코스대로 그냥 훑고 지나 반대편으로 나오니 딱 1시간이었다. 우리 가이드는 나올 때의 시간을 체크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1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가이드가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포탈라궁에 대한 아쉬움에 못내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고 밤에 다시 오기로 하고 오후 시간은 조캉 사원 근처에서 보내려고 걸었다. 라싸까지 오는 동안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은 너무 좋았으나 현지주민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나질 않아 아쉬워 사람 사는 모습도 보고픈 마음에 골목골목을 하염없이 걸었다. 골목 끝까지 갔다 길이 없으면 다시 나오고 그렇게 조캉사원 순례길을 돌고 돌았다.

    그러다 골목에서 우리 가이드인 자빠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 골목 안의 집이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이라며 한 건물에 10가구 정도 사는데 티베트의 암도지역에서 비구니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와 누님이 우리가 지나온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에 가시기 위해 라사에 잠시 들렀다며 본인 집에 가보겠냐고 해서 얼른 따라 들어갔다.

    네팔처럼 들어가는 입구는 좁지만 사각형 형식으로 가운데는 마당으로 해가 들어오는 구조였는데 방에 들어가 어머니와 누님께 인사를 드리고 앉으니 밀로 만든 빵부터 버터티, 야크랑 야채볶음, 직접 담그신 보리 맥주와 티베탄들의 주식인 짬빠까지 잔뜩 내어 주신다.

    삐쭉삐쭉한 아들의 헤어스타일이 맘에 안드시는지 어머니는 연신 자빠의 머리를 만지신다. 4년전 고향인 캄(Kham)에서 라사로 와 영어를 배우고 가이드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자빠, 가족과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이 나에겐 행운이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일행들과 해가 질 무렵 다시 포탈라 궁을 찾아 걸었다. 촛불과 침묵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주인 없는 포탈라궁에는 오성기가 꽂혀 펄럭거리고 맞은 편 광장에 중국이 티베트를 자치구로 격하시킴을 기념하여 세운 혁명기념비 앞에서 중국 노래를 틀어놓고 분수쇼를 하고 있었다. 포탈라궁이 한없이 쓸쓸해보였다.

    다음 날 새벽 이른 아침부터 나와 티베탄들이 가장 신성시 하는 ‘조캉사원’ 의 순례길인 바코르(Barkor)를 따라 돌았다. 각양각색의 마니차(Prayer wheel)와 염주, 오체투지로 기도를 드리는 이들 주변엔 중국 공안들이 감시하고 있다. 조캉사원 앞은 순례자들이 태운 향나무 냄새와 연기로 가득찼다. 조캉사원 앞 광장은 수많은 오성기가 펄럭이고 건물 옥상에선 중국 공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동영상까지 촬영 중이다.

    내가 티벳을 여행 오기 전 10월 초 동부 티베트 다루지역에선 무차별 총격이 있었고 중국의 광산개발 추진으로 인해 충돌이 있었다. 2013년 9월 121명의 티베트인이 분신자살을 했고 중국 국경절 국기게양을 거부하면서 또 한번의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네팔을 떠나 티베트 라사까지 오는 내내 나는 단 한번도 제 14대 달라이 라마 사진을 볼 수 없었다.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를 여행할 때는 ‘Free Tibet’ 이라는 문구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진짜 티벳에서는 볼 수 없었다. 다들 마음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

    물론 우리는, 아니 나는 라싸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내 환상 속에 있던 라싸, 하지만 환상 속의 라싸는 거기 없었다.

    중국 속의 라싸만 존재할 뿐이었다.

    독특한 토론방식으로 유명한 세라사원의 승려들

    독특한 토론방식으로 유명한 세라사원의 승려들

    늦은 밤 조캉사원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여인

    늦은 밤 조캉사원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여인

    라싸에 건설중인 아파트

    라싸에 건설중인 아파트

    필자소개
    구로에서 지역복지활동으로 시작하여 사회적기업 착한여행을 공동창업하였다. 이주민과 아동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인권감수성을 키우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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