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느 정권에도 관대하지 않았다
    [기자눈깔]한 사제의 발언에 대통령, 총리, 집권당 대표까지 나서는 나라
        2013년 11월 26일 11: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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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박창신 원로 신부의 지난 22일 시국미사 강론을 두고 새누리당과 청와대, 보수언론에서 노골적으로 ‘종북몰이’를 시작하고 있다. 한 원로신부의 강론을 두고 마치 나라가 절단난 듯이 난리법석이다. 그것도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집권여당 대표까지.

    가장 슬픈 반응이 무관심이라고 했는데, 박 신부의 발언에 한 나라의 권력자들이 일사분란하게 떼를 지어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면, 박 신부의 발언은 누군가에게 상당히 아픈 발언이기는 했던 것 같다.

    <조선일보>는 26일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떤 단체’라는 부제를 단 기사를 통해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화 이후에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反美), 통일, 반전(反戰) 운동 등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이념적 편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임수경 방북사건, KAL858 사건 진상규명,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촛불시위 등의 예를 들며 “친북, 종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모든 사건과 발언을 종북과 반미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보는 점에서는 나름 일관된다. 하지만 자신의 부서지고 비뚤어진 안경을 탓하지 않고 세상이 비뚤어졌다고 울분을 토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매번 든다.

    지금은 많이 알려졌는데 사제단은 전두환 군사정권뿐 아니라 소위 민주정부라고 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이들 정권의 퇴진과 더불어 국가폭력과 불의에 저항해왔다.

    한 가지 예를 들자. 2004년 6월 사제단은 고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 “더이상 노무현 정권이 민중과 서민의 편이 아니라는 게 김선일씨 사건에서 드러났다”며 “사제단은 부도덕하고 국민의 안녕에는 관심 없는 노무현 정권의 퇴진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파병

    김선일

    2004년 김선일 피살 규탄과 이라크 파병 철회를 촉구하는 사제단(사진=통일뉴스)

    당시 일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당시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방침과 김선일씨 사건을 둘러싼 집회와 행사를 준비하면서 노무현 정권 ‘퇴진’ 기조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친 노무현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당시 사건을 노무현 대통령의의 의지와 달리 노무현 정부 내 ‘우파들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리는 ‘퇴진’ 요구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제시했었다. 그때도 일부 시민단체는 사제단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는 정의구현사제단 입장이 ‘퇴진’에 가깝다는 이유로 사제단 소속의 모 신부의 발언 섭외는 재론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출했다.

    정권에 따라 일부 시민단체들이 해당 정권을 비판하는 수위와 기조가 달라지는 당시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노무현 정권 ‘퇴진론’을 주장했던 곳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는 것이다. 사제단에게는 정권의 성격보다 그 정권의 행동이 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사제단의 정치적 이념이 좌익 편향됐다거나 더 나아가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노 정권의 과오를 한 치의 관대함 없이 비판했던 사제단은 이명박 정권을 지나 박근혜 정권에 와서도 변함없는 자신의 신념을 갖고 있다. 바로 ‘국가폭력과 불의에는 좌우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시 이라크 파병론으로 노무현 정권이 대중의 저항에 맞부딪히는 ‘호재’를 만난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이 왜 당시에는 ‘퇴진’을 요구하는 사제단에 종북이나 좌익 편향성을 문제 삼지 않았는가. 오히려 당시에는 사제단의 노무현 정권 비판을 내심 반기지 않았던가.

    지금은 또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나 실익 때문에 그 ‘박근혜 퇴진’이라는 기조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정치집단이나 시민사회단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선 불복론이냐는 시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창신 신부의 강론에 대해 ‘그의 연평도 발언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정권 퇴진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박 신부의 전체적 맥락을 옹호하거나 종북 딱지 붙이기를 반대한다는 야권의 반응이 그러한 맥락이다.

    때문에 사제단이야말로 그 어떤 정치세력이나 시민사회단체들보다 정치적으로 자유롭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요구는, 노무현 정권에서도 모두가 주저할 때 가장 먼저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나이브하다거나 ‘우리 편’을 곤란하게 한다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적어도 새누리당이나 보수단체의 공격하는 ‘좌익 편향’이나 ‘종북’이 될 수는 없다.

    연평도 포격 사건 발언을 되짚어보자. 박 신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잘했다거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이념 대결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 그것을 이용해 선거를 치룬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신매카시즘을 비판한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25일 상무위에서 “마치 기다리고 있다가 딱 걸렸다는 듯이 정의구현사제단 한 사제의 뾰족한 발언에 대해서는 정치의 한가운데로 끌어와 이념 검증의 리트머스를 들이밀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현재의 상황에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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