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라한 자의 인민주의’에 맞서
    [비판과 비평]박근혜 파시즘론 비판 ②
        2013년 11월 26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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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글 ‘박근혜 파시즘론’ 비판 링크

    6. 권위주의적 인민주의

    필자는, 박근혜 정부는 파시즘 정권이라기보다 ‘권위주의적 인민주의’ 정권이라고 판단한다. 권위주의적 인민주의란, 스튜어트 홀 등이 대처리즘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대처리즘의 문화정치], 스튜어트 홀, 한나래)

    그것은 인민주의 프로젝트 즉 대중의 원한, 증오의 감정을 동원하되 동시에 위로부터의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체제이다. 이 개념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통해 ‘자유를 제약’하는 정부형태를 분석하기 위해 동원된 개념이다. 권위주의적 인민주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대중들은 법의 강제 속에서 주어진 권리를 수동적으로 향유하는 그런 질서를 의미한다.

    이 프로젝트가 인민주의와 결합된 것은 대중의 상식, 통념을 동원하여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홀은 대처주의가 복지국가의 관료주의/국가주의, 거대군단으로 조직된 노동조합,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 가정, 자유주의 가치에 호소함으로써 평범한 개인들을 성공적으로 동원했다고 주장한다.([대처리즘의 문화정치], 288쪽)

    광산파업

    대처리즘에 저항했던 광산노동자들의 파업

    대처가 공격하고자 한 대상은 노조, 복지국가, 관료, 복지 기생자들이었다. 반면에 대처리즘은 개인적 소유, 시장 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를 소생시킨다. 대처리즘은 나태, 방만, 성적 자유에 반대하여 도덕적 개인, 규율화된 시민을 대립시킨다. 대처는 자유, 질서, 규범, 가정과 같은 대중의 상식에 근거하여 전후 영국의 계급타협적 복지국가를 비판했던 것이다.

    봅 제솝은 ‘권위주의적 인민주의’라는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 개념이 보다 정합성을 띠려면 인민주의 프로젝트가 작동하는 메카니즘을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포스트 포드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미래], 봅 제솝 등, 한울).

    봅 제솝에 따르면, 대처리즘은 전후복지국가의 위기에 직면하여, 실업과 빈민층을 조직하며, 사회를 수직으로 양분했다고 주장한다.([포스트포드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미래], 144쪽) 사회를 양분한다는 것은, 사회를 생산적으로 기여하는 자와 단순히 기생하는 자로 나누고, 생산적으로 기여하는 자들을 동원하여 기생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기생하는 자들은 복지수혜자들, 공기업 노동자들, 공무원들, 노조관료들이었다.

    봅 제솝은 스튜어트 홀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두 개의 국민전략’은 홀이 주장하는 인민주의 프로젝트와 대립하지 않는다. 인민주의 전략의 핵심이야말로 민중들의 정념, 열망, 상식에 기대어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국민전략 역시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가장과 복지혜택에나 의존하거나 공공기관에서 세금이나 축내는 기생자들을 구별함으로써, ‘선량한 영국인’들의 분노를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대처는 노동조합이라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영국병을 일으키는 주체라고 표상함으로써 노조에 대한 사회적 적의감을 효과적으로 생산해 내었으며, 이런 적의감을 통해 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7. 미국 신우익의 등장

    미국 신우익의 등장과정 역시 권위주의적 인민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레이건의 권력 장악 과정은 대처리즘과 유사함이 있다. 레이거니즘의 성장은 전후 케인즈주의적인 계급 타협과 미국 신좌파의 성장에 대한 미국 풀뿌리 보수주의적 반동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미국 신우익은 선거 과정에서 단일쟁점운동(낙태, 동성애 등)으로 전선을 단순화했다. 그들은 복지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흑인 미혼모와 열심히 세금 내는 백인 노동자계급을 대립시킴으로써 세금인상에 대한 사회적 적의감을 만들어 내었다. 더불어 핵무기 경쟁에 토대를 둔 신냉전을 발명함으로써 이데올로기 전선을 뚜렷이 한다.

    단일쟁점 운동은 모든 선거 이슈를 특정 쟁점에 대한 찬반 입장으로 환원함으로써 전선을 단순하게 한다. 신우익은 낙태나 동성애에 찬성하는 자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했고, 신의 저주(에이즈 등)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기독교적 도덕주의에 물든 백인 중간계급-노동자계급의 가부장주의에 호소함으로써 급진주의자들·자유주의자들의 ‘성적 타락’과 ‘나태’에 대한 증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미국 신좌파와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한 신우익의 도덕적 반격을 의미했다. 대처리즘이 생산자와 기생자로 사회를 구분했듯이 미국의 신우익 역시 특정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대중을 분할했던 것이다. 미국의 신우익은 이 과정을 통해 블루칼러 노동자들을 광범위하게 동원할 수 있었다.([미국 꿈에 갇힌 사람들], 마이크 데이비스, 창비, 221쪽))

    더불어 레이거니즘은 신냉전을 발명하여 대외적인 전선을 단순화했다. 악의 제국 소련에 맞서는 정의의 제국 미국을 표상함으로써 백악관의 카우보이(레이건)는 세계의 정의를 수호하는 존재가 된다.

    현재의 미사일방위체제(MD)의 모태가 되는 전략방위계획(SDI)이 이 과정에서 출현한다. 소련으로부터의 핵공격이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탄생시켜 우주를 핵전쟁의 공간으로 만들려던 레이건의 망상은 한편으로 미국 군수산업의 성장을 촉진했고(군사케인즈주의) 다른 한편으로 미국 내의 이데올로기 전선을 단순화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에 필적하는 대처의 생산물은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대처-레이건

    1980년대 보수주의적 반동의 대표자 대처와 레이건

    이렇듯 권위주의적 인민주의는 전후 복지국가를 해체하기 위한 보수주의적 반동을 의미했다. 그들은 근면, 성실한 가정과 복지의존, 나태, 기생자들을 구별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세금인상과 복지공급에 대한 적의감을 만들어 내었다.

    또한 ‘법질서와 규율’의 이름으로 노동조합을 공격한다. 영국의 탄광노조 파업에 대한 무력 진압과 미국의 항공관제사 파업에 대한 공격은 신우익의 반노조주의를 상징한다. 더불어 반공주의와 팽창주의를 내세워 국내의 여론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인민주의가 파시즘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법질서를 강조한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반동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기동전을 통해 노동조합의 일상을 공격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 사회적 타협보다 법적 통치를 강조한 점에서 권위주의적이었다.

    신우익은 보수적인 도덕주의에 근거하여 가부장주의적인 남성 중간계급-노동자계급을 동원하려 했지만, 이는 선거에서의 승리, 의회에서의 다수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의회를 상대화하고 억압적 국가장치의 전면적 등장과는 무관하다. 신우익의 대외적인 팽창주의는 내부의 여론을 통합시키는 우익의 낡고 낡은 전략이었던 것이다.

    8. 박근혜 정부, 모든 것을 ‘종북’으로 단순화하라!

    지난 대선까지만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야당과 경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박근혜 정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정국을 주도했다.

    전환의 분기점은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원장을 선거법 위반협의로 기소한 지난 6월이었다.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은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직접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야당이 아니라 검찰조직 내부에서.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에 대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5일 김기춘 씨의 청와대 비서실장 취임은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8월 이후 정국은 소용돌이쳤다. 이석기 그룹 내란음모 사건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으로 판단하면 이석기 그룹은 북미 전쟁을 대비해서 ‘무장 투쟁’을 준비하자고 해석될 수 있는 매우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었다. 대중들은 경악했고 보수 언론들은 물을 만났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이 재판 중인 가운데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 설치 이후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던 합법적인 정당에 대한 해산 청구 심판이었던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전교조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동원하여 전교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국정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NLL(북방한계선) 포기를 언급한 녹취록’ 공개를 시사했다. 밝혀진 사실은 노 전 대통령이 녹취록 초고를 의미가 분명하도록 다듬으라고 지시한 것이었지만 최근 검찰 발표는 ‘녹취록 초안 삭제 지시’였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포기 발언을 했고, 이것을 감추기 위해 녹취록 초안을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었다.

    전선은 단순해 졌다. 종북이냐 자유민주주의냐인 것이다. 통진당 사태이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공방이든, 이 모든 것들은 남한 내에 ‘북한 추종 세력이 존재한다’는 극우반공주의 세력의 ‘신념’을 확인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여당은 이석기 그룹의 ‘시대착오적인 논리’를 광적인 언어로 포장하여 종북주의의 실체라고 폭로했고, 통합진보당과 연대한 민주당 또한 종북주의 세력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녹취록 파기 역시 자신들의 ‘종북 행위’(북방한계선 포기)를 감추기 위한 것인 양 쟁점화 했다.

    정부와 여당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초헌법적인 공격을 통해 자유주의자들을 압박했다. 민주당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에 반대하거나 이석기 의원 제명에 반대한다면 그들을 ‘종북주의 옹호세력’으로 몰면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불거진 선거 부정에 대한 여론을 무마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와중에 경제민주화, 복지 공약 축소, 증세 논쟁, KTX 민영화 등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실질적인 사회적 의제들은 주변화되거나 잊혀져 간 것이다. 박근혜식 종북몰이는 철저한 계급적 이해관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친북이냐 반북이냐로 쟁점을 단일화했다. 정부의 공안몰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종북세력이거나 종북주의 옹호세력이 되고, 찬성하는 집단은 애국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종북주의 논쟁은 분단 이후 한국 사회에 뿌리박은 반공주의 세력을 호출했다. 애국반공주의로 세월을 보내는 ‘노친네 친위부대’들은 연일 집회와 시위를 통해 세력을 과시한다. 언론들은,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정부의 발표 의도를 곧이곧대로 실어 나름으로써 우익 반동의 궐기를 촉구하고 있다. 동요하는 야당 지지자들을 중립으로 돌리고,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더 견고한 지지 세력으로 다지는 것이다. 갈등의 조직화를 통해 내적 지지기반을 다지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갈등의 구성을 통한 대결의 정치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법치를 강조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 조항을 끌어들여 반대자들을 구속하고, 법적 지위를 박탈하고, 헌재에 해산 심판 청구를 한다. 법 적용이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들은 법을 통해 ‘반대자들을 제거’하려 시도함으로써 친위부대를 동원하고 쟁점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법의 의한 통치는 의회를 통한 정치적 소통,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없애 버린다. 모든 것이 법의 판단에 맡겨질 때 정치는 실종된다. 청와대가 바라는 바는 정확히 정치가 실종되고 법에 따른 판단으로 모든 것을 집행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단일쟁점 전략은 언제나 노조에 대한 공격을 포함한다. 이 또한 신우익의 반노조주의 공세와 닮았다.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는, 중산층의 전교조 혐오감을 동원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전략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대중들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를 생뚱맞게 받아들였으며, 전교조를 지지하지 않는 시민들조차 노조 아님 통보가 국정원 선거 개입 물타기 전략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전교조 다음은 공무원노조 선거개입 수사였다. 공무원 노조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 역시 선거 불공정 시비 물타기 시도일 뿐이다.

    전교조, 공무원 노조와 같은 정규직 노조에 대한 공격은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여론 호도용 수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동원하여 이들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저소득층의 고통과 불만을 동원하여 정규직을 공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불어 전교조에 대한 이념 공격을 통해 우파의 어젠다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다음 목표는 공기업 노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공기업 부채증가를 방만 경영, 노조의 부패와 동일시하고, 이를 토대로 노조를 공격하면서 공기업 민영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를 대중적인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것은 노무현 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 강도와 깊이는 훨씬 심해질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9. 박근혜식 인민주의의 사회적 토대

    박근혜식 공안몰이의 직접적인 원인은, 누구나 알다시피,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과 관련된 ‘정통성’ 논란이다. 불법 선거는 권력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로 발견되는 상황이라 대선의 불공정성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밝혔듯이 국정원 자체개혁과 사법처리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선거 불복종과 대통령 사퇴 요구로 발전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현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카드는 종북몰이를 지속시키는 것이다. 종북몰이와 노조 혐오증을 통한 여론 호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지속될 것이다.

    대선 불복종 문제가 정권으로 하여금 공안 정국을 조성하도록 한 직접적인 배경이지만, 모든 쟁점을 이념적 대결로 단순화시키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처한 경제적 정치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공약하며 권력을 장악했지만 이를 실현할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정부의 부채규모는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현재 국제기준에 따른 부채만으로도 1,043조에 이른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충당부채와 합치면 1,500조에 이른다. 정부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증세도 쉽지 않다. 올해 중반기 박근혜 정부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6조 원 정도의 추가 세원을 확보하려 했지만 곧바로 증세논쟁이 붙으면서 사실상 원안이 철회되었다. 증세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너무나 높은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상반기만 하더라도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한국은행으로부터 67조 원을 일시적으로 차입했다. 경기저하로 인한 법인세 수입이 줄어든 탓이다. 재정적자와 세수 부족, 증세 불가능이 결합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복지공약을 허공 속에 날려버렸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노인 기초연금 공약 파기이다.

    더불어 이명박 정부처럼 공기업을 활용한 개발사업도 난망하다. 공기업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500조에 이르는 총부채 가운데 436조가 공기업 부채이다.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대규모 개발을 주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위기는 심화되고 복지수요는 증대하지만 정부로서는 실업을 줄이는 대규모 개발사업도, 복지 확대도 여의치 않은 것이다. 대중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노인 기초연금 체계의 개악은 박근혜 정부 지지층조차 등 돌릴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안 정국 조성은 최선의 카드라 할 수 있다. 공안 정국 조성은 재정수요가 전혀 없는 지지층 결집 수단이다. 복지공약 철회로 인한 노인층의 반감을 없애는데 있어서 공안정국보다 더 손쉬운 수단은 없다. 반공주의에 물든 노친네들에게 떡값을 던져주고 종불몰이 집회에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불만 해소 방안인 것이다.

    복지 축소로 인한 사회적 불만을 근원적으로 잠재울 순 없을지라도 종북 척결로 쟁점을 이동시킴으로써 경제정책, 복지정책의 무능을 덮을 수는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딛고 서 있는 경제적 조건이야말로 이 정권이 권위주의적 통치로 후퇴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쉽게 공안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자유주의의 토대가 너무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보수우익은 반공주의를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선전하고, 정작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야당은 식물정당이 된 상황이다.

    민주당을 구성하는 한 축은 새누리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지역 보수주의이며 나머지 한 축인 ‘진보적 자유주의‘는 당내에서 늘 동요하는 세력일 뿐이다.

    한국 자유주의는 굳건한 사회적 토대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강력한 공안몰이를 주도할 때마다 애매한 태도로 대응하거나 이에 동조하며 여론이 눈치나 보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자유주의 자체의 취약성과 야당으로서의 민주당의 정체성 혼란이 정부 여당으로 하여금 공안 몰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자유주의의 취약함에 덧붙여 진보좌파 진영의 무능 또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통합진보당의 다수파인 경기동부그룹의 초현실적인 이념과 정세인식은 늘 종북몰이를 위한 먹잇감이 되어 왔다.

    비록 국정원의 폭로에 왜곡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경기동부의 정세인식은 대중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도록 만들었다.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낡은 정파가 진보좌파 진영의 다수파라는 현실이야말로 좌파에 대한 보수 우익의 준동을 위한 강력한 알리바이인 것이다. 이것은 주사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좌파 전체의 무능과 결합되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10. 무엇을 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 정권의 인민주의적 동원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에 공감하는 자들은 원래 반공주의에 물든 집단이거나 박근혜의 집권으로 다양한 혜택을 보는 이해관계자들이다.

    사건의 진실과 상관없이 오로지 종북몰이로 시청률이나 올리려는 종편과 같은 부패한 집단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와 끈끈히 연결된 이해관계자들인 것이다. 이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집권하기만을 바라는 자발적 충성집단이다. 더불어 박정희에 대한 환상으로 여전히 경제성장과 발전주의를 기대하는 대중도 박근혜의 강력한 지지층이다.

    반면 박근혜식 대결정치는 자유주의 성향의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에 대한 여론의 냉정한 반응만 보아도 박근혜 정부의 ‘갈등의 정치’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석기 그룹 ‘내란음모 기도’ 역시 국정원의 조작이 속속 드러나면서 여론몰이용 수사였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또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조처로 반대 여론이 더 높다.

    반면 연일 터져 나오는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개입은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허물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고, 이 정권의 대중동원은 보수우익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식 인민주의 전략이 초라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항하는 진보좌파의 전략은 당연히 이 정부의 약한 고리를 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약점은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 개입이다. 대통령 선거 부정 논란이야말로 정국의 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선 부정, 대선 불복종 운동은 진보좌파가 주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대선 불복종 운동을 펼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민주당과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이 결정할 수밖에 없다. 진보좌파 역시 대선 불복종 운동에 동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민주당이 나서지 않고 정국 주도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단기적으로 민주당의 야성 회복과 안철수 신당의 창당은 야권의 강화로 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철수 신당이 일정한 조직적 형태를 갖추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단일화 경선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현재와 같이 무능함에 빠진 민주당을 구원하고 야당 바람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로선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좀 더 넓게는 정의당까지 생산적인 경쟁을 통해 ‘야당의 흥행’을 만드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막는 단기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선거를 매개로 한 ‘흥행 놀이’가 정치구조 자체는 바꾸지 못하더라도 공안정국을 약화시키는 수단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흥행놀이’는 진보좌파의 성장이나 사회운동적 대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또 다른 약한 고리는 복지 공약 후퇴와 민영화이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공약 후퇴에서 보듯이 지지한 세력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실현할 수 없다. 발전주의 환상에 기대어 박근혜를 지지한 세력들은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

    사회운동진영은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 후퇴와 민영화에 단호하게 맞섬으로써 박근혜 정권의 반동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복지공약 실천을 강제함으로써 시민사회 내에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영화에 맞서 노동자운동을 집단적으로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총과 노동자운동은 어느 때보다 세련되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교조나 통합진보당 공격에서 보듯이 박근혜 정부는 조금이라도 정당성이 결여된 노동조합이라면 가차 없이 공격할 것이다. 이 정권은 노동조합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동원하여 노동운동 탄압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대중적 정당성에 토대를 두고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시민사회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아야만 박근혜 정부의 공안 몰이에 의연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민영화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투쟁이야말로 그와 같은 정당성을 얻는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진보좌파의 복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안철수 신당은 박근혜식 공안통치와 거리를 둘 것이지만 이들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경제정책의 측면에서 이들 정당과 새누리당은 사실상 한 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중들에게는 민주당, 안철수 신당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한국 자유주의의 취약함이 공안 몰이가 늘 출몰할 수 있는 배경이 되듯이, 진보좌파의 능력 부재 역시 대중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 세력만 선택’ 하도록 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자당 내의 근본주의 경향이 박근혜 정부가 언제든지 공안정국을 조성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늘 공안당국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진보좌파 진영이 노동자운동에 토대를 두고 다양한 진보좌파를 어우르는 대중적 정당을 만들지 못한다면, 민주당에 대한 진보좌파의 비판은 사실상 헛소리밖에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진보좌파가 노선대로 갈라져서 자족적인 세계에 빠져 있다면 대중들은 여전히 민주당만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세의 엄중함만큼이나 섹터로 분리 정립된 진보좌파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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