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운동을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
        2012년 06월 15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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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송태경씨가 자신의 진보정당 활동을 돌아보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레디앙에 보내온 글입니다(편집자) 

    제가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실로 온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우려가 있습니다.

    94년 쯤 자본론을 수강했던 노동운동 활동가 한 분은 “선생님 같은 분이 설 자리가 정말 없는 건가요”라며 울먹이기까지 하십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노동의 정치에 대한 제 미안함, 죄송함조차 제대로 토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노동의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노동의 정치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누구보다 더 노력해야 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음에도, 이유야 어떻든 지금의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누군가와의 트위터 대화에서도 밝혔듯,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이 우려 때문에 다음 두 가지 사정은 분명히 해 두고자 이 글을 씁니다.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

    첫째로, 노동의 정치에 대한 제 미안함이나 죄송함과는 별개로, 노동의 정치에 대한 제 초심은 제가 어디에 있든 변함없이 이어갈 것이며, 최재천 의원실에서의 제 역할도 이 초심의 범위를 이탈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로, 저는 지금이라도 최소한 “민생현안” 정도만이라도 노동의 정치영역이 98년 국민승리21의 실업대책운동처럼 또는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의 경제민주화운동본부처럼 대안적 정치운동을 왕성하게 전개하도록 허용해준다면, 진보정당 운동영역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진보정당 운동영역을 떠나게 된 이유는 후자의 사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비록 제가 2008년 2월 만 10년 넘게 내 젊음의 거의 모든 부분을 쏟아 부었던 민주노동당이 쪼게 질 때부터 진보정당 운동영역에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퇴직금과 주택담보대출금까지 털어가며 민생연대 활동에 주력했던 것은 사실이나, 최근까지도 진보정당 운동영역을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그저 강태공의 심정으로 상황 변화를 기다렸을 뿐입니다.

    또한 2011년의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통합논의가 이상하게 흘러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 재정립되면서 2008년 2월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다시 놓였을 때도, 진보정당 운동영역을 떠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하자” “진보신당을 위해 고생 좀 해 달라”는 장상환 교수님과 홍세화 선생님의 부탁(명백히 옳은 부탁)을 어찌하지 못해 저는 통합진보당을 선택하는 대신에 진보신당 상근을 수락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존경하는 홍세화 선생님(당시도 대표였고, 당의 형식이 변화된 현재도 대표시지요!) 등의 강력한 뜻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은(아니 정확히는 대표이신 홍세화 선생님과 진보신당의 건강한 성장을 바라는 많은 분들을 제외한 “진보신당의 영향력 있는 일부”가 이상한 논리를 요리저리 제기하며!) 제 상근활동을 반대했고 상근은 좌초됐으며, 이 때 제가 받은 충격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제가 느꼈던 충격은 배신감, 슬픔… 등등의 단어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습니다(노동의 정치에 제 열정을 쏟아 붇는 과정에서 예전에도 비슷한 충격이 두 번 있었으나 이때만큼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통합진보당 쪽도, 비록 심상정 의원 등이 제 활동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크게 노력해 주셨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외려 저를 늘 아껴주시는 권영길 대표님(제게는 늘 대표님이십니다!)은 “(통합진보)당이 정리되지 않는 한 크게 고생”할거라며 “송박사가 (불필요하게) 고생하는 거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최근 저는 제가 가진 노동의 정치에 대한 애착과 열정 또는 저를 신뢰해주는 많은 분들의 배려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정치를 위해 그 무엇도 하기 힘든 이상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스스로의 노력과 운동으로는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 딜레마에 처해있던 상태, 그것이 최근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현실의 한국 사회는 제가 현재 개인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영역(즉,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이중착취의 영역으로 발돋움한 고리대영역: 저는 이 영역에서 한 달에 두어 번 꼴로 파렴치한 야만에 내몰려 주검에 이르는 이들을 직접 목도하고 있고, 오늘도 어느 이의 주검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경제 영역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진정한 의미의 노동의 정치를 갈망하고 있으나, 정작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런데 마침 고려대 최장집 교수님의 제자이신 김순영 박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교수님이 신용불량자에 대한 취재 칼럼을 준비하시고 계시는데, 취재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그렇게 해서 최장집 교수님은 지난 5월에 두 번에 걸쳐 경향신문에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칼럼을 쓰셨고, 또 두 번째의 칼럼에 제 활동을 소개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최재천 의원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일면식도 없는 최재천 의원이 최장집 교수님의 칼럼을 보고 제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자신의 상임위 활동과는 관계없이, 민생연대에서 제가 하는 일(불법대부업 피해자에 대한 상담 및 무료법률지원 활동)을 의원실에서 하면서 민생고(民生苦) 해결에 필요한 제도개선 활동을 해달라는, 그리고 가능하다면 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의 주요 민생현안들로 일을 확대 해주고 약간의 시간만 빼서 자신의 의회활동을 위해 경제정책 부분을 보좌해달라는…

    진보진영의 인사들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제안, 심지어 지금은 제 활동에 우호적인 인사들 대다수조차 “이렇게 바쁜 선거 시기에”, “인력이나 예산도 취약한데” 등등의 논리로 반대하거나 뒷전에 밀어두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소극적이거나 했었는데,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줄테니 민생고를 직접 챙기는 정치활동을 하도록 도와 달라는…

    한 마디로, 노동의 정치와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딜레마에 처해있던 저로서는 딱 한 가지 문제(즉, 노동의 정치에 대한 제 미안함, 죄송함)를 제외하고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풀뿌리 민들의 현재 처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가기 위해 당분간은 노동의 정치에 대한 제 미안함, 죄송함은 사실 그 자체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사실 그 자체를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둬야 하겠다는…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자본의 정치에 대항하는 노동의 정치에 대한 제 미안함, 죄송함은 마음 한 구석에 묻어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를 아는 모든 이들, 그리고 이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희생과 헌신이라 생각하지 않고 더 나은 더 바람직한 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이 지금의 제 선택에 대해 부디 너그러운 양해를 해주기를 바랍니다.

    송태경 올림 2012년 6월 13일

    ps. 아시는 분은 아시듯, 저는 자본론을 정치경제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공부한 이후 이를 삶의 일부이자 실천의 토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제주사람답게 제주사람들의 올곧은 정신, 즉 풀뿌리 민들의 삶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쯤은 언제든 내놓을 수 있다는 제주의 장두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늘 이와 같이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이리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알고 걱정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지금의 우려도 마찬가지로 제 마음 속에 깊이 새겨 둘 것입니다.

    필자소개
    최재천 의원실 보좌관. 민생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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