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이 지배하는
    먹거리 세계의 민주주의 혁명
    [책소개]『협동으로 만드는 먹거리 혁명』(마크 윈/ 따비)
        2013년 11월 23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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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크푸드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협동으로 만드는 먹거리 혁명》은 2020년의 어느 날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채 10년도 남지 않은 근미래는 저자 마크 윈에게 어떤 시대일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자유를 빼앗긴 시대’이다.

    아무리 양심적인 소비자라 해도, 아무리 내 가족의 건강을 최고로 쳐도 내가 먹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다국적 대기업들이 농업도, 식품가공업도, 유통업도 지배하고 있는 먹거리세계에서는 패스트푸드와 유전자조작 종자로 키운 곡물과 고밀도 가축 사육 시설에서 사육된 고기 외에는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종자에서부터 유통까지를 모두 지배하고 있는 다국적 식품·농업 기업들은, 늘어나는 세계 인구를 싼값으로 먹이기 위해서는 관행 농업과 유전자조작, 고밀도 가축 사육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지배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크 윈은 그들이 지배하는 산업적 먹거리체계는 식품/농장 노동자들의 권리와 건강을 볼모로 잡고,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언론 조작과 소송으로 공격하며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먹거리세계의 민주주의는 기업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게릴라 텃밭지기는 도시를 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포위된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먹거리 혁명’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저자는 그 답을 ‘협동으로 만드는 먹거리 혁명’이라고 말한다. 《정크푸드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협동으로 만드는 먹거리 혁명》의 2부는 먹거리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다양한 사례와 혁명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분야는 생산이다.

    4장에서는 한때 철강산업으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였으나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이 떠나고 먹거리 사막이 된 클리블랜드를 되살리려는 도시 농부들이 소개된다.

    모리스 스몰 씨는 사람들이 떠난 후 버려진 공장부지, 주차장 등을 닥치는 대로 밭으로 만들고, 거기서 생산되는 신선식품을 프레시스톱이라는 식료품점에서 판매하며 도시 농부와 소비자를 위한 교육까지 진행하고 있다.

    5장과 6장에서는 육류 및 우유 생산 방식을 바꿈으로써 생산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뉴멕시코 주의 래니 목장과 코네티컷 주의 파머스카우를 소개한다.

    래니 목장에서는 ‘합리적인 방목’을 통해 생산비가 거의 들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쇠고기를 생산하고 있고, 6개의 목장이 연합한 파머스카우는 성장호르몬과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는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래니 목장과 파머스카우는 대형 유통회사가 아닌, 지역의 소비자 및 상점과 직거래를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생산이라는 모험에 대한 보장을 받고 있다.

    협동 먹거리

    먹거리 교육, 영양 지식에서 조리법까지

    이 책의 7장에서 9장까지는 먹거리 교육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7장에서 소개하는 텍사스 주 오스틴의 ‘행복한 주방’은 비만과 식단 관련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먹거리의 선택 기준(영양 교육)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선택된 먹거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에 대한 교육까지 실시하는 곳이다.

    가난과 바쁨, 무지로 인해 자신과 가족에게 좋은 먹거리를 먹이지 못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던 ‘요리하는 엄마Cookin’ Mama’들은 이곳에서 받은 교육을 통해 건강뿐 아니라 자기 생활에 대한 통제력까지 얻었음을 고백한다.

    8장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먹거리 교육을 다룬다. 뉴멕시코 주 산타페 시의 공립학교들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요리 교실’을 통해 영양 교육을 넘어선 먹거리 교육을 하고 있다. 즉 영양학 교과서나 컴퓨터 화면을 통해 건강에 좋은 식생활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에 더해, 직접 요리를 함으로써 학생들의 흥미와 미각을 함께 일깨우며, 음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9장에서 저자는 모교 베이츠 대학으로 돌아가 후배 학생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들려 준다. 메인 주에 있는 베이츠 대학은 오래전부터 지역에서 생산된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이용한 식사를 제공해서 전국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지금 베이츠 대학은 ‘요리를 넘어선’ 먹거리 혁명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서부 지역에 있는 먹거리 관련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루시 닐리(2009년 졸업생)와 키라 윌리엄스(2009년 졸업생), 루이스턴 시에서 농민장터를 운영하고 있는 대니 셰러(2011년 졸업생)는, 학교 식당 옆에서 허브 텃밭을 시작한 몰리 밀리어스(2011년 졸업생) 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먹거리 문제를 다루는 집필 활동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이 정의와 지속 가능성에 머리와 손을 모두 담그는 활동가들을 키워낼 수 있다는 좋은 사례인 것이다.

    한 미국인이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유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마크 윈은 10장에서 식량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데, 한미 FTA로 인해 식량주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한국과 한국 농민들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보조금을 통해 구조적으로 과잉생산을 할 수밖에 없는 미국 농산물(특히 그들은 주식으로 삼지도 않는 쌀)은 해외 수출을 통해서만 판로를 얻을 수 있고, 그 시장의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FTA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교우위를 통한 교역이 양국 모두를 풍요롭게 할 거라 강변한다. 그러나 마크 윈은 식량은 국민과 국가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자국민을 위한 독자적인 먹거리정책을 펼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하며, 그 권리는 단순히 시장의 힘으로 좌우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식량주권과 먹거리보장을 위해 싸우는 음식시민들이 단결하고 협동할 수 있는 틀거리를 무엇일까? 저자는 ‘먹거리(및 농업)정책위원회’를 내세운다.

    먹거리정책위원회 운동은 25년 전에 테네시 주 녹스빌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북미 전역에 100여 개에 이르는 소위원회를 가지고 있는데, 시민들이 만든 위원회도 있고, 주정부 법령이나 행정명령으로 만들어진 곳도 있다.

    이 위원회가 있고 없고는 먹거리세계를 변혁하는 데 중대한 차이를 가져온다. 이 책에서 앞서 소개했던 모리스 스몰 씨의 도시 농업 운동이 가능했던 것도 클리블랜드 시 먹거리정책위원회가 있기 때문이고, 코네티컷 주 먹거리정책위원회의 농지 보전 정책으로 인해 파머스카우 목장처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농업이 시도될 수 있다.

    물론 먹거리정책위원회가 있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콜로라도 주 볼더 카운터처럼 농민장터가 왕성하고 건강식품 상점이 즐비한 곳도 산업화된 먹거리체계와 대안 먹거리체계가 격돌하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위원회 같은 조직을 통해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건강하고, 가격도 적당하며,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공공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의 손에 결정권을 넘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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