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보드 좌파와 우파
    [기고] 진보진영에서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가?
        2013년 11월 20일 10:5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보수성향 네티즌들의 커뮤니티인 ‘일베(인간베스트 저장소)’에 대한 비토, 조롱, 무시에 이어 여러 심도 있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 어떤 표현의 자유도 완전히 누릴 수 있는 일베에는 이른바 ‘패드립’이 난무하며, 주로 여성과 호남에 대한 혐오 발언과 더불어 민주-진보진영에 대해 강한 반감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곳이다.

    민주-진보 진영에서는 일베를 이용하는 이들을 ‘일베충’이라고 폄훼하고 야권에서도 새누리당 정치인에게 ‘일베’ 딱지를 붙이는 것도 이제는 흔한 일이 됐다.

    당연하게도 이용자나 보수성향의 네티즌들도 일베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다. 문제는 이 게시판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발언의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고인이 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조롱, 희화화는 물론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 글을 게재하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그 어떤 ‘포비아'(혐오감)도 자유롭게 게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곳보다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반면 이들은 민주-진보 성향의 정치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글은 가차없이 ‘민주화’를 준다. 일반 커뮤니티에서 ‘반대’의 의미를 갖는 이 ‘민주화’를 많이 받는 이용자는 회원 등급이 내려가지면 ‘추천’의 의미인 ‘일베’를 많이 받는 이용자들은 회원 등급이 올라간다. 이렇게 일베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입장과 동일하지 않은 의견을 손쉽게 배척하고 배제하고 있다.

    일베

    문제의 핵심은 ‘익명성’…사이버공간의 담론의 딜레마

    나는 일베의 등장에 대한 여러 배경, 분석에도 불구하고,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 이유를 ‘익명성’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일베에 대해서는 최근 박가분씨가 쓴 <일베의 사상>에서 비교적 잘 분석하고 있다.)

    일정하게 자신의 신분과 이름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소규모 커뮤니티보다 서로의 연결고리가 약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대규모 커뮤니티일수록 익명성은 더욱 잘 보장된다.

    이 익명성은 단지 모든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요구하는 일베 이용자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사이버공간에서의 언론과 표현, 사상의 자유를 이유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의 탄생을 ‘기회’로 삼은 것은 당초 민주-진보진영이었다. 세상 모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이 세상을 향해 자기 이야기를 던질 수 있는 완벽히 평등하고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수평적 관계와 더불어 익명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자 기회였다.

    초기 인터넷이 활발하게 대중적으로 알려지던 2000년대 초반,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은 정치와 사회 문제의 담론장이었고 누구나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글을 자유롭게 게재할 수 있었다. 진보진영에서도 ‘진보누리’라는 사이트를 통해 여러 진보진영 내 사안이나 의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외에도 <딴지일보>, <서프라이즈> 등 민주-진보 성향의 사이트에서도 정치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익명성을 기반으로 수평적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금방 깨졌다. 이른바 ‘네임드’와 그렇지 못한 자들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네임드’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글 조회수는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똑같이 서로의 신상정보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관계에서도 닉네임 하나로 누구는 그 어떤 평론가보다 더 많은 인기를 끄는 논객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발생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여러 사람과 대화할 때 모두가 자기 말에 주목해주길 바라듯, 인터넷에서도 그렇다.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사이버공간에서의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흔히 ‘인정욕구’라고 부른다.

    ‘키보드 좌파가 되자’며 사이버공간에서 일종의 ‘전투’를 벌여왔던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일약 진보 논객으로 이름을 떨치자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느낀 이들은 단지 그를 표방한 변희재뿐만은 아니었다. 진보진영 내에서 진중권과 논쟁을 벌였던 ‘자칭’ 논객들은, 진중권이 노동당(옛 진보신당)에 입당했을 때 대거 함께 입당했고, 이들은 끊임없이 진중권의 글의 모순과 비약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됐다.

    개인적으로 주장해보자면, 논객과 ‘자칭’ 논객의 차이는 실명을 쓰냐, 안 쓰냐의 차이 정도일 것 같다. 자신의 실명과 직업을 ‘오픈’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신감’에서 오는 행위이다. 그 자신감은 논객으로서 축적된 역사적 지위와 실제 갖고 있는 학력이나 직업에서 온다. 미네르바가 그랬듯 다수 익명의 논객들은 자신의 신상이나 이름을 노출하지 않는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는 표현, 사상의 자유 문제 이전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노출할 경우 자신의 글의 권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글 내용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익명의 커뮤니티 내에서 논쟁하는 이들 중 “내가 **직업이라서 아는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같은 화법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 글의 권위를 갖기 위한 욕망의 노출이다.

    물론 매체에서도 종종 익명의 기고자는 있기 마련이다. <ㅍㅍㅅㅅ>의 경우 자기 직업은 드러내지만 자기 이름을 내걸고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경우 글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편집자가 중간에서 그에 대한 신뢰도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신문 사설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그 사설의 권위를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익명에 대해 정의해보면, 자기 이름이나 직업 등 신상정보를 굳이 알릴 필요 없는 공간을 의미한다. 어느 한 커뮤니티에 가입할 때 신상정보를 기입하기는 하지만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가입한 사람은 익명성을 보장받는다.

    여기에 더 나아가 회원가입이 필요 없는 커뮤니티도 있다. 자기 신상정보도 밝힐 필요도 없고 닉네임을 바꾸더라도 족적조차 남겨지지 않으며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변장할 수 있다.

    전자를 편하게 ‘제약적 익명성’, 후자를 ‘완전한 익명성’으로 구분한다면 전자의 경우 ‘일베화’를 막을 수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 그 어떤 커뮤니티보다도 최악의 공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대표적인 게 현재는 여러 논란과 문제 때문에 폐쇄 조치된 노동당 자유게시판일 것이다.

    커뮤니티 제공자의 제재 방안이 중요…양날의 검이 될 수도

    그런데 ‘제약적 익명성’을 가진 커뮤니티 공간은 ‘일베화’를 방지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커뮤니티 제공자의 ‘의지’에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마침 적절하게도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에서는 ‘일베와의 전쟁, 고소만이 살길이었네..’라는 제목의 기사로 현재의 문제를 적절히 짚어냈다.

    해당 기사를 보면 커뮤니티를 제공한 일베 운영진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 허위사실이 적시된 게시글을 제재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기하면서 특정인에 대한 공격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고소까지 생각치도 못했던 피해자는 결국 일일히 이들을 고소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이 기간 동안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특정인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글을 집단적으로 게재되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대부분의 커뮤티니 제공자(또는 운영진)는 적절한 제한 조치를 취한다. 아니 대부분 그러한 일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이용규칙을 만들고 그를 지키지 않을 경우 자체적으로 글 이전, 삭제, 이용자의 글쓰기 금지나 접근 금지, 강제 탈퇴 등의 조치를 강구한다.

    다음이나 네이버와 같은 곳에 있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회원 등급 자격을 받기 위해서는 이용 규칙을 숙달하고 스팸을 배포하거나 상업 목적으로 접근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심한 곳은 이용규칙에 대한 시험까지 봐야 하는 곳도 있다.

    일반적인 커뮤니티들도 대부분 그렇다. 일베에서 ‘홍팍’이라고 불리우는 엠엘비파크의 불펜 게시판도, 회원들 중 일부가 운영진을 맡아 신고게시판에 접수된 문제의 글을 확인 후 삭제한다. 지금까지도 글 삭제의 이유가 정치적이거나 편향적이라는 논란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체로 이 제도 덕분에 엠팍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제재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당초 일베를 탄생시키게 한 것에 디씨인사이드의 김유식 대표의 역할이 컸다. 디씨를 게토화하는 코미디갤러리와 정치사회갤러리, 그리고 이곳에 올라오는 문제적 글을 보관하는 ‘일간베스트 게시물’이 골칫덩어리였던 김 대표는 결국 이 게시판을 폐쇄한다. <레디앙>에서 진행한 일베 관련 좌담회에서도 지적했지만, 이 폐쇄는 일베의 확장을 가져다 주었다.

    일베 이용자들은 게시판 폐쇄에 맞서 따로 사이트를 만들었고 이것이 진화해서 현재의 일베가 됐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현재의 일베 이용자들을 디씨에서 내쫒은 것은 디씨 입장에서 좋은 일이지만, 이들이 디씨 바깥에서 세력화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 혹자는 일베 이용자들이 한 곳에 몰려있는 것이 그나마 괜찮은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은 한 곳에 모여서 집단행동을 벌인다. 개인에 대한 집단적 공격, 집단적으로 어느 한 기사에 대한 추천과 반대 공작과 댓글 공격 등 이들은 사이버공간의 ‘갱’이 됐다.

    악성 이용자들을 커뮤니티 바깥으로 내쫒으면 이들은 새 둥지를 틀며 서로를 다독인다. 사이버공간에서 오갈 데 없어진 이들은 나머지 공간에 악의를 품게 되고, 자신들의 공간에서 만난 이들을 둘도 없는 소중한 ‘동지’로 인식한다. 이렇게 갱들이 서로 모이고 서로의 의지를 북돋는다.

    자게 페쇄

    노동당 자유게시판 폐쇄의 역사

    현재 노동당 당원게시판을 보면 하루에 올라오는 글 숫자나 조회수가 형편없을 정도로 낮아졌다. 글 한 개에 조회수 천은 기본이었고 인기 있는 글은 1만 단위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댓글도 주렁주렁 달리는 것이 흔했던 노동당 게시판은 현재 썰렁하다.

    초기 노동당 게시판은 민주노동당과 분당한 뒤 창당한 신생당이기는 했지만 그 당에 입당하고 당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신입’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한 마디씩 거들어야 했고, 누구라도 전문가이고 논객이었다. 당 초기, 당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논쟁이 격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특히 일부 ‘갱’과 유사한 당원들이 등장하면서 ‘격한 논쟁’의 수위를 벗어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개인적으로 노동당에 나타난 ‘갱’들의 정체는 ‘진보누리’나 민노당 게시판 등에서 ‘입 털기’ 좋아하는 이들이 심심한 민주노동당(현재의 통합진보당 당게시판을 가보라. 그들은 온라인에서 논쟁하지 않는다.)에서 노동당으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노동당 당원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갱들이 그간 당게시판에 써왔던 글들을 보면 이들의 목적은 ‘완전한’ 표현의 자유 이외에 당의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러 여성주의, 이주민, 성소수자 등을 공격하며 ‘왜 이런 주장을 하면 안 되냐. 이것이 진보란 말인가’라며 생떼를 쓰곤 했다.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어 일부 갱들이 징계를 받게 되자 이들은 더욱 단단히 뭉쳐 더욱 노골적으로 당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격 패턴 중 가장 나쁜 것은, 일베가 그랬듯, 바로 타인의 익명성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자기 이름과 직업, 과거의 행적 등이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인데, 이들은 특히 여성당원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신상털기’를 자행했다. 이는 곧 대단히 악의적으로 변하면서 피해자들의 SNS을 도용하거나 SNS에 피해자의 사진이나 전화번호 등을 유포했다. <프레스바이플>의 이계덕 기자가 그렇게 당했던 그 악의적 행위들이 이미 노동당에서 진행됐었다.

    현재는 폐쇄된 자유게시판은 회원 가입 없이 누구나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받은 채 글을 게재할 수 있었고, 이곳은 곧 당원들의 신상정보를 유포하거나 악의적인 험담을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그러나 노동당은 정보통신규정에서 아이피 수집을 하지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러한 갱들을 잡아들이지 않(못)았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기 전 노동당은 이미 2008년 12월에 ‘명랑튼튼토론회’라는 것을 진행한 바 있다. 현재는 노동당 정책위 의장이자 정보통신과 관련해 당내 전문가인 ‘행인’은 당시 발제문을 통해 “당 게시판은 깨끗해야 하나”고 제기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했는지 여부는 피해를 당한 측의 입장에서 비교적 쉽게 주장을 할 수 있고, 사법부를 통해 그 진위를 판단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 및 “민주사회의 도덕, 공공질서 및 일반적 복지”가 어떤 표현에 의하여 침해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더구나 이러한 포괄적 기준이 남용될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원래적 의미를 훼손할 가능성이 너무 커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국가보안법”이라며 이를 제재하는 것에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그는 당 게시판에 대해 “왜 세사게에서 부시나 이명박을 개나 쥐에 비유하는, 게다가 그러한 동물종의 주니어들에 비유하는 욕설은 가능하면서도 이용자 간 서로 싸움질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라고 반문하며 “세사게에서 그렇게 서로 싸운 당원들끼리는 법적으로 해결하든지 당기위에서 해결하든지, 아니면 서로 인정하고 오프에서 만나 소주 한 잔 하면서 악수하고 헤어지든지 하는 방법이 더 열려있지 않나”라고 의문을 표했다.

    그는 당게시판에 성소수자 등에 대한 비난, 비방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진보신당의 정강정책에 동의하거나 이러한 정강정책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당원이라면 사실 발생할 수 없었던 문제”라며 당원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그는 “한 순간의 불쾌감을 이유로 관리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권한의 부여가 아니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은 장차 더 심각하게 표현의 자유를 얽어매는 준비 단계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사이버상에서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를 ‘한순간의 불쾌감’이라고 일축했다.

    5년이 흐른 뒤 노동당 게시판은 어떠한가?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여성당원들이 ‘신상털기’와 ‘완전한 익명성’으로부터의 끊임없는 허위사실로 인한 공격을 당했고, 그로 인해 다수의 탈당자도 발생했다. 여성당원들은 사이버공간에서의 정치활동을 하기 어려워졌고, 급기야 여성전용게시판을 만들었지만, 자기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지금은 여성, 성소수자 등 집단 공격의 대상이 됐던 이들의 글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일찌감치 당게시판을 떠나 SNS로 둥지를 틀었다. 신상정보가 정확히 확인되는 폐쇄적이고 안정적인 공간에서 소통하고 있다.

    다른 당원들은 어떠한가? 여성이나 성소수자 당원보다 덜하겠지만 다른 남성들이나 이성애자 당원들도 지나친 인신공격, 음모론, 허위사실에 시달리다 마찬가지로 SNS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 모두 당의 소식은 SNS에서 접한다. 지금 어떤 당원이 당의 정보를 당 홈페이지서 찾고 있나?

    당시 필명 ‘왼쪽날개’는 ‘행인’의 주장을 적절하게 반박했다. 그는 ‘행인’의 ‘당원교육’이나 ‘당의 강령적 수위에 따른 당원구성’등이 이루어지면 성폭력 2차가해나 소수자 비하 발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한다.

    그는 그 같은 문제들에 대해 “갈등이 형성되는 사안에 대한 당원들간의 근본적 시각 차이로부터 발생된다기 보다는 소통을 구성하는 논쟁의 형태와 자기 발언에 대한 극도의 정치적 책임의식 부재에서 비롯된다”며 “이들이 당게를 자신의 생각을 정제 없이 쏘아 되도 무방한, 그러한 자신의 언어와 글쓰기가 “의사표현의 자유”로부터 무조건적으로 보호 받아야 하는 단순한 정치 커뮤니티 정도로 당게를 바라보고 있다는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추천, 비추천 기능으로 악의적인 글 등이 비추천을 많이 받게 되면 자동으로 ‘해우소’라는 게시판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것과, 부서별 게시판 구성으로 당원과 당내 기구간의 논의와 피드백 마련으로 소통의 집중과 확대, 문제적 글을 해결하기 위한 ‘인터넷 평당원 당기위원회 게시판’ 등을 제안했다. 이 제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동당은 게시판관리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위원회가 공석인 상태이다.

    그리고 결국 노동당 자유게시판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노동당은 자유게시판을 폐쇄조치 했다. 더 이상 악의적인 글은 볼 수 없지만 갱들 또한 SNS에 둥지를 틀고 다른 자유게시판을 찾아 떠났다. 가까운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으로.

    같은 문제에 보다 과감한 조치를 취하는 정의당

    정의당 또한 최근 당게시판에서 격렬한 논쟁 중이다, 근거 없는 허위비방으로 인해 몇몇 당원의 글이 삭제되면서 때 아닌 표현의 자유 논쟁이 벌어졌다.

    노동당의 역사가 그래왔듯, 일부의 문제적 표현도 표현의 자유이며, 글쓰기 금지는 ‘폭력’이라는 주장, 보편적 정서 또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글은 적절히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립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당 역시 그러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은 지나치게 게시판 활동이 빈번하다. 대다수 남을 헐뜯거나 악의적 비난이나 비방을 하지 않는 당원들은 그저 올라온 게시물을 읽을 뿐, 개입하지 않는다. 즉,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이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수 선량한(?) 당원들 중 표현의 자유가 타인으로부터 악의적인 비방을 받지 않을 권리보다 더 높은 가치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는 사이버 폭력이 생각보다 매우 큰 폭력이라는 것이 널리 인지되지 않은 탓으로 볼 수 있다. 악플러로 상처 받아 자살하는 일은 유명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당 홈페이지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필연적으로 현실세계와 맞닿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커뮤니티와 달리 자신에 대한 비방이 매우 구체적인 경우가 농후하다. 또한 이는 향후 개인의 정치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커뮤니티보다 ‘명예훼손’과 관련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의당 게시판에서 게시판 규제와 관련해 논란이 일게 된 원인이야 다양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노동당도 그러했지만-이제는 이 표현도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면 쓰지 않겠다. 앞으로 계속 반복된다) 진보정당으로서 민주적 절차와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중요한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진성당원제인 진보정당에서 당원 개개인의 의견 하나하나가 모두 무시 못할 존재이며, 이들의 물음, 비판에 충실히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 다소 ‘피곤한’ 민주주의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원들의 질문이나 비판은 때때로 과장되거나 음모론 수준일 때도 있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적 공격이나 허위사실로 이어간다.

    현재 게시판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표현을 제약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노동당의 ‘행인’과 같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기 원칙이 명확한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본인 그 스스로가 이해 당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논쟁에서 가장 많이 활약하는 이들은 가장 많이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가장 많이 실수했거나 실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은 이미 앞서 글쓰기 금지를 당한 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유일한 통로인 홈페이지 글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매우 치명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수 선량한 당원들은 당초 문제적인 글을 쓰지 않는다. 다만 다수 선량한 당원들은 게시판이 더욱 난잡해질수록 당 게시판에 가지 않거나, 당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과대 대표된 이들의 글을 보면서 당의 현재의 수준이 그 정도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난 15일 밤 7시 정의당 중앙당에서 열린 홈페이지 운영과 관련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평리’ 당원은 다음 날 토론회 후기로 “당게가 일부 소수인원들이 독점을 하고 있고 너무 집요하게 공격하는 경향들이 있다고 지적을 하면서 이렇게 하다 보면 보는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글에 대한 첫 댓글은 논란의 중심이 됐던 한 당원이 “열려있는 광장에 소수가 독점이란 표현은 왜곡이다. 집요하게 공격이 아니라 신랄한 비판”이라며 “언어를 올바르게 쓰자구요. 조중동이 울고 가겠다”고 반박했다. 그 뒤에 이은 여러 댓글들은 유치한 지경에 이르러 더는 옮겨 적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이 토론회의 또 다른 참석자 ‘이슬기’ 당원은 당 게시판 운영에 관한 3가지 제안 중 ‘당홈페이지 운영위원’에 평당원을 참여시키자고 했다. 하지만 이는 ‘평당원의 오류’다.

    평당원이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고 민주주의 원칙과 부합된다고 믿는 것은 매우 비정치적 발상이다. 자신을 평당원이라고 강조하거나 개개인의 평당원의 주장이 관철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당의 강력한 리더십이나 책임있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이슬기 당원이 그러한 사람이라고 단정짓지는 못한다. 다만 평당원이 당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은 곧 당 간부나 비상근 당직자가 되겠다는 말이고, 거기서부터 평당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다닐 수 없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비상근 당직자를 자처한 평당원들은 자신들이 책임 있는 당직자라는 걸 망각한 채 언제나 평당원주의를 외치며 당 조직 전체를 ‘평당원화’시키려 든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디 그간 진보정당의 역사를 돌이켜봤으면 한다.

    기술적이고 현실적으로도 평당원의 참여는 어렵다. 자기 전업 활동을 하는 평당원이 일상적으로 당 활동에 적극적이고 책임있게 소화해낼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노동당에 게시판관리위가 구성되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당시 토론회에서 한 남성은 당헌당규에 맞지 않는 글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우토반’ 당원은 “법치주의 한계”라며 “정치라는 건 상대적으로 법과 비교해 각 세력들간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것”이라며 규범은 마지막에 다뤄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일정한 ‘기준’에 대해 “통념에 따라야 한다”며 진보의 통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또한 노동당의 역사에서도 그러했지만, 진보의 통념이라는 것은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공격 대상이다. 왜 동성애를 인정해야 하는가? 왜 여성이 소수자인가? 왜 저 사람에게 개새끼라고 하면 안되는가? 이들은 늘 기존 통념에 도전하고 있다.

    이는 자기 신념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게시판 글쓰기에 대한 제재나 징계를 받은 이들이 복수심을 갖고 부러 도전하는 질문들이다. 이것에 여러 선량한 당원들이 답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 수고와 노력을 반복해서 얻는 댓가는 또 다른 도전일 뿐이다.

    다행히도 정의당은 노동당보다 기술적 토대가 좋은 편이다. 자유게시판이 있지만 ‘회원가입’을 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이 한 가지 제약 때문에 자유게시판은 노동당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언제라도 저 공간에서 명예훼손을 당하거나 허위사실로 공격 받는다면 제재를 요청할 수 있고, 정의당은 해당 글을 삭제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영구히 글쓰기 금지를 시킬 수 있다.

    게시물에 대한 임시 조치도 13개 정도로 노동당보다 더 많고 포괄적이다. 현재 중앙당 당직자 5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진 홈페이지 운영위원회 지위와 역할도 분명하게 규정되어있어 이들의 행동력은 ‘짱짱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시판 제재 방안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도 갖고 있으니, 현재 정의당이 게시판 관리를 두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실제로 노동당 자유게시판 폐쇄로 자기 공간을 잃은 노동당의 ‘갱’들은 정의당 게시판에 등장해 노동당 당원들의 신상털기를 자행했지만, 곧 이런 저런 사유로 글쓰기 금지를 당했거나, 본인들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의당에서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아마 정의당은 오랜 경험이 축적된 ‘갱’들을 접할 기회가 없어, 표현의 자유와 게시판 관리 문제의 논쟁이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입당했던 당원들은 게시판 관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당원들은 얼마나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면 사이버공간에서의, 특히 진보진영의 담론은 영구히 소멸될지도 모른다.

    보수의 일베화, 진보의 게토화

    적어도 진보진영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일베의 진화나 그들의 활약이 아니다. 그들이 미치는 청소년의 악영향 등등을 걱정해줄 사람들은 매우 많다.

    문제는 정치영역에서 소수 집단 중에서도 소수로 전락한 진보진영의 담론의 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 어떤 진보정당 게시판도 진보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흥미롭고 심도 있는 주제의 토론이 없는 상황이다.

    누가 진보진영이 어떠한 핵심 쟁점으로 어느 세력들이 어떻게 다투고 또 어떻게 합의점을 찾았는지 인터넷 검색으로 알 수 있는가? 없다. 진보 바깥에서 진보가 궁금한 이들은 어디로 가면 진보라는 사람들이 뭘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나? 찾기가 쉽지 않다. 주변부로 몰락한 진보진영에 대한 정보는 파편화되어 있고, 형성된 담론도 없다.

    물론 한 군데 있다. 바로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에 가입해 많은 진보정당 당원들과 친구를 맺으면 보다 효과적으로 이쪽 사정을 알 수 있게 된다. 당게시판에서 볼 수 없는 흥미진진하고도 깊이 있는 여러 논쟁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대충 알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다수와 친구를 맺을 수 있어도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비공개 그룹에는 가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쟁점은 다 그 안에서만 논의되고 유통될 뿐이다.

    결국 진보진영은 점차 폐쇄적인 공간에서 담론을 쌓고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외부의 지적도, 외부의 비판도 없는 곳에서 죽어라고 그들 내부에서 진창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서 개싸움을 하느니 조용히 남들 모르게 싸우는 게 더 나을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당 홈페이지에서 폐쇄적인 그룹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홈페이지 운영에 대한 적절한 정책을 만들면 될 일이다. 표현의 자유 원칙 때문에 방기하다 결국 대중들 모르게(심지어 당원 대다수 모르게) 은밀한 곳에서 논쟁하는 것은 여러모로 당에 이로울 것이 없다.

    정의당은 현재의 수준에서 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갖추고 있는 여러 시스템들이 그 자정과 정정의 역할을 제대로 하거나 강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반면 노동당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기관지 등의 사업에도 불구하고 당원들간 소통 구조는 과거보다 더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방법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당초 ‘키보드 좌파’가 되자고 제안한 진중권은 진보 바깥에서의 좌우를 뒤흔드는 논객이 됐지만 정작 ‘키보드 배틀’로 보수진영과 싸워 이겨낼 진보진영의 논객은 없고 그 안에서 ‘키워질’하는 논객만 남았다. 이제 그 ‘키워질 논객’ 또는 갱들도 끝없는 도전 끝에 자기 설 자리를 잃었지만 역시 진보진영의 다수 선량한 논객들도 자기 거취를 잃어갈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레디앙 독자. 노동당 당원

    페이스북 댓글